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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9일 10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9일 14시 12분 KST

난 의경 출신이다

한겨레

난 의경 출신이다. 2008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서울에 소재한 중대에서 복무를 했다. 자대를 가서 처음 겪은 시위는 끝날 무렵의 광우병 촛불시위였다. 일상에서 유리되어 있던 정치적 이슈가 내 일상 속으로 급작스럽게 파고 들어온 것이다. 평택 쌍용자동차, 화물노조 파업 등을 거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위는 2009년, 대전 법동에서 있었던 시위였다. 말 그대로 죽창이 머리 위로 날아들고 중대가 박살나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서있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마 그 시위 전에 자살한 노조원이 있었고, 그를 기리고 하는 과정에서 시위가 격화된 모양이라 이해가 갔다. 나도 친구나 동지가 그리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겠지.

각설하고 그날의 시위는 만여 명 정도가 참여했다. 만 명이 모인 만큼 군상들도 다양했다. 의경들을 일으키고 보호하는 시위대 아저씨도 있었고, 죽창을 내려치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 내는 목소리도 다양하고 시위대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런 다양성은 필연적이다.

만여 명이 모여도 이럴진대 이번 민중총궐기 같은 10만 이상의 대규모 시위라면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목소리가 다 터져 나온다. 언론에서는 일부 있었던 폭력적인 모습이나 이석기 석방 같은 걸 물고 늘어지며 '불법폭력집회'임을 강조하는 모양새지만 시위현장에 있다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느끼기 힘들다. 순간을 포착한 몇 장의 사진, 짧은 동영상, 법 규정을 들이대며 '평화적으로 하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댄다. 객관적인 사실 아니냐 하며 그쪽에서 좋아하는 팩트 중심주의를 펼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팩트가 아니다. 취사선택된 사진과 동영상이 있을 뿐. 선동이라 말하지만 뭐가 더 선동적인지도 자명하다. 제대로 판단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시위가 던지려는 메시지보다는 방식과 외면에만 천착한다.

불법이니 합법이니 하며 법만 따지는 모습이 어제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엔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없다. 외치고자 하는 자와 입을 막으려 하는 자만 있다. 정부까지 나서서 불법시위 엄단 같은 단어를 남발하며 겁을 준다. 하지만 애초에 10여만 명이 모인 집회시위 과정에서 쇠파이프나 종북적 메시지는 필연적으로 따라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10만 명이 모두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리 조직된 움직임이 아닌 자발적으로 움직인 시민의 모임이기 때문에, 다양한 주장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 폭력적 모습이 일부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데 집착해서 시위 자체가 갖는 메시지를 왜곡하고 비틀어선 안 된다. 폭력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폭력은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며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시위 중에 일어나는 폭력,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그 '폭력'에 매몰되어 10만 명이 모인 집회의 본질과 의미를 보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번 시위의 요구조항은 다양했지만 기본적으로 국정교과서 이슈와 노동개혁에 대한 것들이 큰 줄기를 차지한다. 이것들이 갖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너네 맘대로만 하지 말고, 우리 얘기 좀 하자' 작금의 정국을 보면 대체 여론수렴은 언제하시고 소통은 언제하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청와대가 여론수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슈는 선물 받은 진돗개 이름 짓기 정도였던 것 같다. 시위가 갖는 메시지와 왜 그런 메시지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지 10만명 중 일부가 보인 모습에 천착하는 것은 사람을 무슨 제품으로 보는 듯해서 불편하다. 불량 시민이라는 계급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사람은 자유가 제일 중요한 동물이다. 십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위를 한다는 건 그 자유의 상징이다.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그런 현장에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직격으로 쏘아대는 모습이 과거가 아닌 현실이다.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 하겠지만 현장에선 대규모 집단끼리 충돌한다. 누가 먼저 때렸느냐 같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형사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여기에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군중이 모이면 군중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 목소리를 한 올 한 올 따다가 종북, 빨갱이, 불법시위라 규정하는 건 새치 한 가닥 나왔다고 넌 흰머리가 되었다 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지금 13만명이 '왜' 모였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 헌법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는 있지만 요즘 흔히 말하는 '오빠가 좋아하는 페미니즘' 같다. 집회, 결사라는 건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인데 그것조차도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규의 테두리 안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면, 우리는 이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 소통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자유라는 옷을 입히고 넌 자유롭다고 말하는 건 분명히 잘못되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무색하다. 참담한 건 난 그 시간에 술 마시며 놀고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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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다.

가끔 보면 '공권력'이라는 힘에 대해 저항하는 것 자체가 범죄이며, 법 테두리 안에서 뭐든 해결해야 한다는 분들이 계신다. 법을 지켜가며 집회, 시위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겪어왔던 시위는 생활 속으로 갑자기 찾아드는 불행에서 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불쑥 찾아드는 인력구조조정, 갑자기 일어난 의료사고, 재개발 과정에서의 퇴거조치 등등... 물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는 것, 중요하다. 해결방식에 권위와 강제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 해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술했듯 급작스럽게 찾아드는 일들은 해결의 타이밍도 굉장히 중요하다. 말 그대로 법은 멀다. 법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능교육, 홈플러스를 지켜보며 약자에게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약자는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지쳐간다. 내구성이 떨어지고, 쓰러졌을 때 일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불법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낼 때, '왜 그러는가' '어떤 소리인가'를 되짚어 보는 것이 불법 행위 여부를 따지는 논쟁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며, 공익에 보탬이 된다는 말이다.

불행과 슬픔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게 되면, 당신은 소리지르지 않고 차분할 자신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아니다. 집회와 시위는 그런 '소리'를 내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