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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11일 06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11일 14시 12분 KST

뮤지션 여섯, 손님 둘, 단골집 하나

남자의 무대가 끝나니 비로소 여자가 코트를 벗고, 핸드백을 내려놓고 혼자 앞으로 나와 노래를 몇 곡 불렀다. 나는 여자의 그 목소리에 넋을 잃어버렸다. 여자의 목소리에 담긴 그 감정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또 다른 공연이 이어졌다. 준비된 공연도 아닌데, 틈도 없이 노래가 이어졌다. 이번엔 호르헤와 또 다른 기타리스트의 합동공연이었다. 분명 손님은 나와 남편 둘밖에 없는데 뮤지션은 어느새 5명이었다. 끝나지 않길 간절히 빌었던 그 겨울의 그 따뜻한 공기를 뚫고 성큼성큼 부산스럽게 한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단골집을 자랑할 때는 꼭 그 단골집에 대한 일화를 곁들인다. 자주 가니까 단골집이다, 라고 말해버리는 건 그 집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이를테면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동네 슈퍼아저씨가 남편을 집까지 태워줬다는 이야기는 단골 안주거리다. 우산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나온 나까지 함께 태워서 데려다 줬다는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그 슈퍼에 가고 싶어한다. 평범한 슈퍼에 이야기가 생긴 것이다. 단골집 일화라면 신미호프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우리 친구들을 위해 잡채와 떡까지 만드시고, 기어이 술값까지 안 받으시려 했다는 이야기도 단골 레파토리다. 신미호프에 단 한 번도 안 가본 친구들도 이 이야기는 수차례 들었다. 우리동네 슈퍼처럼, 신미호프처럼, 적어도 나에겐 단골집이 100% 단골집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결정적인 순간이 필요하다. 물론 지난 번 글에서 그토록 자랑한 리스본의 마르셀로에도, 당연히 결정적 순간이 있다. 마르셀로를 100% 단골집으로 거듭나게 한 바로 그 날 밤의 이야기.

그러니까 그 날 밤, 리스본의 관광지들을 다 둘러보느라 녹초가 된 날 그 밤에도 우리는 마르셀로에 갔다. 어김없이 호르헤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우리는 그 가게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호르헤는 부끄러워하며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독특한 억양의 그 말을 따라 하며 웃었다. 시간이 지나자 옆 테이블도 다른 손님으로 차기 시작했다. 근데 그 손님들, 무례하게도 호르헤의 무대로 비집고 들어왔다. 기타를 잡고 튜닝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각했다.

'꼭 저렇게 기타만 보면 쳐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모든 동아리방에 기타들이 안 버려지는 이유랑 똑같은 거야. 왜 저럴까?'

우리 호르헤의 연주를 가로막다니! 못마땅한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들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우리 둘은 입을 다물었다. 사랑이었다. 이별이었다.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알 수 있었다.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그 남자는 아파하고 있었다. 사랑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좁은 가게 끝부터 끝까지 계속 오가며 남자는 온 몸으로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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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갑자기 일어났다. 코트도 안 벗고 핸드백을 내려놓지도 않고 시종일관 남자의 노래에 관심 없었던 것 같은 여자가, 그러니까 맨날 절절한 사랑 노래만 부르느라 돈은 한 푼도 안 벌어오는 남편에게 이젠 질려버린 부인이라고 말한다면 완벽하게 설명될 것 같았던 표정의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세 하나 바꾸지 않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결국은 그럴 거라고. 그런 게 사랑이라고.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고. 살다 보면 너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다들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아파하라고. 여자의 목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마치, 절망에 빠진 프로도를 구원해주는 엘프, 갈라드리엘의 목소리 같았다. 그 여자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내 눈에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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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호르헤가 알려주었다. 그들이 불렀던 그 음악은 Fado라고. 그제서야 그 순간의 내 눈물이 이해되었다. Fado음악. 포르투갈 민중음악. '숙명'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음악.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이 그렇듯 번역되지도 않는 'Saudade'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 음악. 굳이 번역을 하자면 '애환'이랄까 혹은 '먼 곳을 향한 그리움'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바로 그 감정, 차마 어찌 할 수 없는 슬픔, Saudade를 기반으로 한 음악이 Fado이다. 그러니까 내 눈물은 Fado음악에 대한 예의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공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남자의 무대가 끝나니 비로소 여자가 코트를 벗고, 핸드백을 내려놓고 혼자 앞으로 나와 노래를 몇 곡 불렀다. 나는 여자의 그 목소리에 넋을 잃어버렸다. 여자의 목소리에 담긴 그 감정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또 다른 공연이 이어졌다. 준비된 공연도 아닌데, 틈도 없이 노래가 이어졌다. 이번엔 호르헤와 또 다른 기타리스트의 합동공연이었다. 그 다음엔 호르헤 혼자 몇 곡, 새로운 기타리스트도 혼자 또 몇 곡 불렀다. 길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가게 안을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손님은 나와 남편 둘밖에 없는데 뮤지션은 어느새 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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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길 간절히 빌었던 그 겨울의 그 따뜻한 공기를 뚫고 성큼성큼 부산스럽게 한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가게를 한 번 휙 둘러보더니 그는 말없이 다시 나가버렸다. 그러다 얼마 후 그는 돌아왔다. 자신의 기타를 가지고. 이 남자는 꽤 길게 자신의 소개를 하더니 이번엔 자신의 검은 대륙 쪽으로 순식간에 우릴 데려갔다. 아프리카와 유럽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 음악. 저절로 흥성이게 만드는 그 음악 끝에 호르헤는 급기야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남편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손님인지 누가 뮤지션인지 더 이상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음악처럼 자연스럽기만 해서 시간은 그 틈을 타고 쏜살같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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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새벽 2시가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흑인 가수의 CD도 들려있었고, 그 사람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와인도 한 병 들려있었다. (그가 왜 우리에게 와인을 선물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공연도 끝났고, 너무 울고 웃느라 내 체력도 바닥났다.

그 밤에 그렇게 행운이 갑작스럽게 내 품에 안길 줄이야. 그토록 큰 행운의 시간이 내 눈 앞에 펼쳐질 줄이야. 우리는 얼떨떨했다. 둘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리가 통과한 그 시간이 어이없어서 계속 웃었다.

말해도 안 믿겠지. 나도 안 믿기는데. 당신은 믿겨? 이 시간을 어떻게 설명하겠어. 진짜 미친 시간이었어. 미친 밤이었어. 어떻게 우리 집 바로 옆에 이런 바가 있지? 사랑스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은 이런 바가 우리의 단골집일 수 있지?

마르셀로에 이야기가 더해졌다. 100% 단골집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만의' 마르셀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마르셀로가, 리스본이, 포르투갈이 잊을 수 없는 꿈이 되는 순간이었다. 동전지갑을 들고 마르셀로를 나서며 말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매일 다시 말하고 싶은 그 문장을.

"안녕! 내일 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