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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4일 11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4일 14시 12분 KST

꽃보다 피디 | 나영석 피디 인터뷰

"언젠가 윤여정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너는 지금이 제일 위험한 때라고. 빨리 실패를 해야 한다고. 실패하기도 무서워질 순간이 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 나를 만들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가볍게 실패 할 수 있는 피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상 즐기면서도 조심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데 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패하는 일이 너무 늦어질까 걱정입니다."

씨네21 오계옥

손미나의 INTERVIEW | 나영석 피디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만의 향기가 있다. 어떤 사람의 것은 유독 짙거나 독특하다. 또 어떤 이의 향은 아주 평범하기도 하다. 그런데 간혹 아주 은은하고 개성 있는 향을 지녀서 만남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멀리 있어도 그 향이 전해져오는 이들이 있는데 나영석 피디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를 KBS 아나운서 시절 만났다. 영석이는(내가 이런 호칭을 쓰는 것을 나영석 피디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공식적인 직함이나 예의를 한껏 갖춘 호칭보다 누나야, 영석아, 하는 것이 좋으니 어쩌랴.)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신입 피디였는데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같이 일해보면 할수록 좋은 친구였다. 보통 예능 피디라고 하면 연예인만큼이나 끼도 있고 성격도 외향적인 경우가 많은데 나영석 피디는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조용했으며 상당히 내성적인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일에서 만큼은 다른 어떤 피디들보다 민첩했고 프로근성이 강해서 큰 믿음을 주는 프로듀서였다. 무엇보다 그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시청자에 대한 생각이나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흔히 말하는 '진정성'을 잃지 않는 인간적 피디. 그래서 내심 '언젠가 저 친구 큰 일을 내겠군!'이라고 종종 생각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두고 얼마 후, 역시나 영석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히트 프로그램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영석'이라는 이름 석자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나영석이 만들었으니 믿고 본다'는 말까지 생겨나고 웬만한 스타 못지 않게 인기도 있다. KBS를 나와 tvN으로 옮겨간 후에는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방송뿐 아니라 여행업계의 판도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스타 피디여서가 아니라, 방송국에 갓 입사한 시절부터 눈여겨 보아 온 후배이기에, 프로다운 모습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매력 덩어리 남자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대견한 후배인 그가 보고 싶었다. 차 한 잔 앞에 두고 허심탄회한 얘기나 할까 하여 데이트를 신청했고 그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11월의 어느 아침,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우리. 카페에 도착해 자리를 잡자마자 저 멀리서 수수한 차림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걸어오는 나영석 피디가 보였다. 인터뷰에 사진 촬영까지 한다고 말했지만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털털한 차림과 밤샘 일을 하고 늦잠을 잔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에게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인간미가 풀풀 넘쳤다. 올빼미처럼 밤마다 일에 열을 올리는 방송국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우리도 몽롱한 정신을 깨워줄 진한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너랑 나랑 이렇게 차 한 잔 하는 게 몇년 만이구나. 오다 가다 잠깐씩 얼굴은 봤지만 내가 후배를 너무 못 챙긴 것 같아 미안하네.... 회사 그만 둔 얘기부터 좀 해봐. 자세한 사연은 못 들은 것 같아."

"2001년 KBS에 입사했다가 tvN으로 2013년에 입사했으니 이제 2년이 다 되가네요. 무엇보다 시간을 조금 더 유동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큰 이직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지금 직장으로 오기 전에1박2일이란 프로그램을 5년간 했었어요. 그런데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와 천안함 사건 때 딱2번 방송을 쉰 것이 전부였어요. 즉, 5년 내내 매주 답사를 가고 섭외를 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회의가 들었죠. 두 달 정도만이라도 방송을 하지 않고 준비하는 기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그 기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송을 기획만하고, 또 그 기간이 지나면 기획한 것에 따라 촬영해서 방송하고, 그게 끝나면 다시 기획하고, 그렇게요. 하지만 누나도 잘 아시다시피 방송국이라는 데가 워낙 바쁘고 빡빡하게 돌아가다 보니까 도저히 그럴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죠. 그런 부분들이 KBS를 다니면서 늘 저를 압박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무언가를 생산한다기보다 매주 소모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물론 지금도 바쁘게 살고 있지만 시즌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촬영, 편집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까지 여유 시간이 있어요. 이건 정말 큰 변화입니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이해할 사람이 나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나운서 시절 나 역시 주7일 근무를 5년간 했던 것이다. 라디오 디제이를 할 때는 뮤지션 게스트가 나와서 '이번 방송을 끝으로 한동안 활동을 접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어찌나 부럽던지. '아, 아나운서도 활동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늘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혹시라도 일말의 후회는 없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해서 어느 정도 그의 답이 예측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직장을 옮긴 것에 후회는 없어요. 물론 옮기기 전에는 나름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막상 옮기고 나서는 고민이 사라졌던 것 같아요. 이직 후 그냥 무척 즐거웠어요. 제가 PD잖아요. 크게 보면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인데, 이 일을 잘하고 싶다는 게 사실 저의 가장 큰 욕망이에요. 계속, 길게 오랫동안 잘하고 싶다는 욕망. 그런데 여기에서는, 물론 좋은 성과를 냈을 경우지만,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고, 게다가 좋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니까요. 그런 부분이 즐거워요. 가장 좋았던 것은 제가 여기로 넘어오면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고, 만들고 싶었던 구조가 있었는데 그것을 실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가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만들고 싶던 프로그램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뭐 특별하거나 거창하진 않아요. 단순히 생각해서 1박2일로 국내 여행을 했으니깐 한번쯤 해외를 다니는 프로그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1박2일을 하면서 리얼리티쇼의 가능성을 느꼈고 동시에 한계를 보았다는 거에요. 짧게 하루 이틀 찍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죠. 좀 더 길게 촬영을 하면 출연자들의 내면을 깊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사람을 오랫동안 찍으면 본모습이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찬찬히 사람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알게 된 모습들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러기에 하루 이틀의 국내여행은 뭔가 부족했고, 해외 배낭 여행이 딱 맞는 소재거리였던 거예요."

"그렇구나. 완전히 동감해. 그런데 왜 하필 할아버지들의 배낭 여행이야? 사실 내가 작년에 회사를 만들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게 50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혼자 배낭여행 하는 법을 가르치는 거였거든. 여행도 인생을 좀 알아야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되기 때문에 난 어린 학생들의 여행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진짜 배낭여행을 했으면 좋겠거든. 우리 여기서도 또 통했나?"

"하하. 그런가 누나? 이유는 간단해요. 젊고 예쁜 애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는 건 너무 뻔하잖아요. 할아버지들을 배낭여행에 대입해 봤더니 너무 재밌을 것 같았고 심지어는 감동까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행이라는 틀을 활용하면 내가 가장 원하는 '사람을 깊이 들여다 보는 일'이 가능해질 텐데 그렇다면 누구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게 된 거죠. 그리고는 할아버지들을 떠올린 거예요. 대신에 여행지는 가장 뻔하고 흔한 곳으로 정하고 싶었어요. 파리는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저 할아버지들도 몇 번씩은 가본 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끌어내고 싶었어요. 많이 가본 곳이지만, 직접 배낭을 메고 두 발로 방황하며 여행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많은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꽃보다 시리즈를 보면서 그가 이 프로그램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나영석 피디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던 것이다.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아니라 마치 자연스럽게 합류한 여행자의 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그렇다면 그는 실제로 배낭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느 곳들을 다녀왔는지 궁금해졌다.

"여행이요? 전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에요. KBS 다닐 때 1박2일이 끝나고 아이슬랜드에 잠깐 갔던 것 말고는 거의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여행 전문가쯤으로 알고 있더라구요. 실제로 여행 관련 강의 요청도 많이 받아요. 하하. 그렇다고 여행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구요. 여행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근데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여행을 좋아하셨어요. 어릴적엔 자연스럽게 아버지한테 끌려다니며 여행을 했고 저도 모르게 여행의 정취나 경험들을 얻게 되긴 한 것 같아요."

여행 경험도 별로 없고 즐기지도 않는다면서 나영석 피디는 아이슬랜드로 혼자 훌쩍 떠났고 여행기까지 냈다. 그의 아일랜드 여행책 서평에 보면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적혀있는데 과연 그 때의 여행에서 답을 찾긴 했을까.

"답을 찾았다기보다는 이 질문 자체가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평소에는 이 질문을 여유롭게 던질 시간도 없었어요. 답을 찾았다기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 자체가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거기에 대해 대답도 해보면서 내 생각의 추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 그 자체가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딱 뭔가 해답을 내렸다기보다는."

"그나저나 책에 보니까 마흔이 되면 콧수염을 기르고 술집을 열겠다고 했던데 진짜야? 왜?"

"하하하하(이 부분에서 나 피디는 좀처럼 드물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당시에 일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KBS는 그만두고 싶고, 이직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고 여러가지 고민들로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죠. 그래서 아무것도 안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물론 술집 일이란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때는 어떤 조직에서 남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의지로 살고 있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망해도 내가 망하는 그런 삶 말이에요. 콧수염을 기르겠다고 한 건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생각해도 우습네요..."

그는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러한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겪은 끝에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바와 이상을 적절히 조화한 삶을 얻어낸 것처럼 보였다. 술집 사장도 아니고 콧수염도 안 길렀지만 그 이상의 변화가 분명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나영석에게 힘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근데 누나, 그 얘기 조금 더 하자면, 아이슬랜드 여행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많이 생각했던 여행이었어요. 사람들은 참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이요.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은 정말 아무 의미도 소득도 없는데 말이에요.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더라구요. 내 행위의 당위성을 나 자신에게 부여해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으니깐 계속 나를 속여왔던 거죠. 그런데 아이슬랜드에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면서 깨달은 것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괴롭지만 그래도 내게는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솔직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던 것이죠."

그는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떠나는 것, 그리고 한 발 떨어져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말하듯 '촌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참 다행스럽지 않나. 촌놈 나영석 피디 같은 이가 있어서 우리 시청자들은 방송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으니. '1박2일'과 '꽃보다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새롭게 시작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역시 익숙한 도심이 아닌 시골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떠나고 머물고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는 그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웃고 눈물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은 크게 '시골'과 '밥'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시골이라는 곳에서 자연의 시간에 맞게 생활하는 거죠. 제가 시골을 좋아했던 것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가장 큰 이유예요. 물론 시골에서 살라고 하면 살지 못하겠죠. 하지만 가끔씩 내려가서 머물다 오는 시골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서 시골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은 마치 여행과도 비슷한 거예요. 도시의 일상에 젖은 사람들을 전혀 다른 공간인 시골에 놓아두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에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들이에요.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시골의 느릿느릿한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하나 이런 변수를 보는 게 재밌을 것 같았죠. 그런데 완전히 시골에서 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하드코어한 것 같았어요. 제가 보려고 하는 그림은 여행으로서의 시골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주말 여행컨셉이 딱 좋겠다 싶었죠. 억지스러운 시골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를 보며 든 생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다는 것이었다. 팡팡 튀는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 재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나오면 비슷한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이 시대에 그는 항상 새로운 길을 걸어왔다. 대체 그 창의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결국 모든 일의 해답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그렇게 크레이티브한 사람은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냥 직장인이잖아요. 애초에 예술가도 아니고, 창의력이라는 자질로 뽑혀온 사람들도 아니에요. 근데 신기한 건 사람이 여럿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요. 일종의 집단 창작 같은 거죠. 스티브 잡스처럼 한 명의 천재는 없을지 몰라도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다 보면 거기에서 창의성이 도출되곤 하더라구요. 10년 동안 이 일을 하다보니 사람에 대한 그런 확신이 생겼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어요. 2014년의 시청자들은 절대로 즐거움이나 웃음만을 재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시대의 재미는 웃음, 공감, 의미, 감동 등 총체적이고 공감각적인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예능은 아무 생각 없이 웃기기만 하면 된다'라는 자세로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부단히 의미를 원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능수능란한 MC가 끌어내는 이야기들도 좋겠지만, 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일상이나 행동에서 끄집어내는 이야기들에 더 큰 울림이 있다고 믿어요."

이렇게 남들이 볼 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는 어떤 고민이 있을까.

"언젠가 윤여정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너는 지금이 제일 위험한 때라고. 빨리 실패를 해야 한다고. 실패하기도 무서워질 순간이 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 나를 만들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가볍게 실패 할 수 있는 피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피디 일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만든 방송을 사람들이 즐겨주고 좋아해준다는 것이거든요. 좋든 싫든 누군가가 나에게 반응을 준다는 것. 이거 정말 두근두근해요. 마치 마약 같아요. 살아 있는 느낌이 들죠. 그런 면에서 피디는 권력자일 수 있어요. 대중에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강요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항상 즐기면서도 조심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데 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패하는 일이 너무 늦어질까 걱정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송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대중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웃기고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주는 일. 그러면서도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시청률 싸움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이 여러가지를 모두 해 내려면 그 직종이 피디이든 아나운서이든 상관없이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과 머리를 맞대어야 하고 사람을 위해 나를 내주어야 한다. 오랜 친구이자 후배, 좋아하는 피디인 나영석은 그런 면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 곁에 있어줄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또 한번 갖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채널은 많아졌는데 볼 만한 방송은 줄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십년 이상 방송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일말의 책임감과 씁쓸함을 떨치기 힘든 요즘.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에 진실된 감동을 전해줄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나영석 피디와의 만남은 다행스러움마저 안겨주었다. 실패를 피해가고 싶은 욕망 대신 겸허한 자세로 실패를 준비하는 성공한 젊은 프로듀서의 미래가 한없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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