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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03일 05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03일 14시 12분 KST

프로방스 힐링캠프

여행은 단순한 소비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잠시잠깐의 휴식을 넘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를 용서하게 될 수도 있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모든 걸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희망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손미나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 1- 프로방스 힐링캠프

온 천지에서 봄꽃들이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마음이 술렁이고 엉덩이가 들썩인다. 어디론가,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봄.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여행은 프랑스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도시, 마르세유에서 시작되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지중해의 비현실적 바다색을 분명히 느낄 수 있어요."

코트 다쥐르 (Côte d'Azur)의 끝없는 해안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Notre Dame de la Garde) 전망대에 선 승준이가 짙푸른 바닷바람을 머금은 얼굴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두 눈이 아닌 온몸으로 프랑스를 느꼈고 가슴 가득 프로방스의 향기를 채웠다. 그는 프로방스 무료 여행에 초대받은 열명 중 한명이었다.

성당에서 나온 우리는 지중해의 역사를 한자리에 모아 놓은 박물관을 관람하고, 마르세이유의 구시가를 거닐다 수제 비누 공장에서 직접 비누를 만들어 보았다. 참가자들은 여전히 어색한 표정으로 각자 손에 들린 카메라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 되어 미슐랑 가이드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최고의 부야베스(*프로방스식 해산물 스프)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에는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이미 허물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의 두번째 밤을 맞았을 때, 우리는 촛불을 밝힌 채 서로의 속깊은 이야기를 쏟아놓기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외교관을 꿈꾸는 고3 학생 승아가 말문을 열었다. 남해의 작은 섬 조도에서 온 승아는 한나절 이상 배를 타지 않고는 학용품 하나도 구하기 힘든 환경에 산다. 그러니 외교관의 꿈은 참으로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 승아의 생애 첫 여행지가 서울도 아니고 프로방스였다니!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dreams come true'인 셈이다.

다음으로는 민우가 사연을 털어 놓았다. 어릴적부터 백혈병을 앓았고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을때는 발목에 낭종이 생기고 척추에도 이상이 왔다. 항암치료 중에는 친구들의 놀림으로 집단 따돌림도 당했다. 사실 민우는 처음부터 가장 눈에 띄는 참가자였다. 얼굴을 많이 가리는 헤어스타일과 안경, 약간은 구부정한 어깨에 자신감 없는 걸음으로 무리에서 항상 한발짝 멀리 떨어져 있곤 했기 때문이다. 소심한 성격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윤정이는 5살 때 갑작스런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둘이 미국으로 갔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연으로 얼룩진 미국 생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어느날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용기내어 아빠를 찾아가 보았지만 무정한 새엄마의 학대를 못 이겨 다시 집을 나왔고 홀로 새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고등학교를 마친 당찬 열아홉의 아가씨는 지난 수능에서 한남대학교 전체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런가하면 나영이는 한창 결혼의 꿈에 부풀어 있던 꽃다운 20대 후반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천성이 당차고 밝은 그녀는 아픔을 잘 이겨내고 지난 겨울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생후 50일만에 불의의 사고로 병석에 누워버린 아기 때문에 2년도 넘는 시간동안 집밖을 나올 수 없었다는 유리,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날 의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때문에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살아온 율구, 그리고 어릴적 먹었던 약의 부작용으로 7살 때부터 이미 탈모가 진행되었는데 그 사실을 누가 알새라 여행은 남의 일로만 여겼던 성주... 참가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했다.

끝으로 승준이의 차례였다. 한창 예민할 사춘기에 의료 사고를 당해 시각장애인이 된 승준이는 다른 이들의 사연을 알고 나니 자신은 행운아인 것 같다는 고백을 했다.

"저도 처음엔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자기가 가진 장애나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제 아무리 좋은 다른 조건과 바꾸자 해도 싫다고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저는 지금 남들보다 약간 불편한 것이 있긴 하지만 좋은 점도 많아서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과 바꾸자고 한다면 싫다고 할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사연 앞에서 저는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껏 울었다.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흘렸지만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았다. 왠지 모를 어색함과 멋쩍음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행복함과 끈끈함이 우리 사이를 채우게 된 기적같은 밤이었다. 여행지였기에, 여행 친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우리는 분수의 도시 액상 프로방스로 향했다. 엽서 속의 풍경이 튀어 나온 것마냥 예쁘고 아기자기한 남프랑스 소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열 명의 참가자와 나는 꼭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세상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열정을 불태웠던 대가 폴 세잔의 명작들에 등장하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함께 오르고, 할머니 손맛으로 지어진 프로방스 전통 음식을 먹고, 아비뇽의 교황청에서 역사의 숨결을 가슴 깊이 빨아 들이며 감탄하던 순간, 생 베네제 다리를 건너며 노래를 흥얼거릴 때에도 우리는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 행복했다.

마지막 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이젠 정말 용기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혼의 치유를 받아 부정적인 기운을 몰아냈기 때문이었을까? 단 1주일만에 참가자들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있었다. 수심 가득하던 얼굴들에 웃음꽃이 피었고 특히 언제나 무리 밖에 머무르던 민우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음이 한눈에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안경을 벗고 어깨를 반듯하게 편 채 당당히 걸었으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가장 뒤에 혹은 가장자리에 어색하게 서 있는 대신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 활짝 웃고 있었다. 아마도 이 청년에게 일어난 변화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인 바람과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리라.

아나운서 옷을 벗고 길 위의 세상으로 뛰쳐 나온지 어느새 6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트북만 펼치면 시공을 초월해 어디든 직장이 되기에 한곳에 정착하는 대신 길 위에서 살았다. 말하자면 그 사이 내 삶은 마치 조화가 생화로 변하듯 생명력을 얻었다. 한층 다채롭고 역동적이며 생생한 감동으로 채워졌고 매일 한뼘씩 성장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은 여전히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낯설 정도로 많이 변했지만 동시에 달라진 게 별로 없는 듯도 하다. 눈에 띄는 한가지 현상이라면 온갖 힐링이 난무한다는 사실이다. 힐링 푸드, 힐링 음악, 힐링 도서, 힐링 콘서트, 힐링 스파, 힐링 요가, 힐링 캠프... 왜 그런지 대한민국은 너무도 간절히 '치유'를 갈구하고 있다.

사실 힐링을 논하자면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은 단순한 소비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잠시잠깐의 휴식을 넘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를 용서하게 될 수도 있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모든 걸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희망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어쩌면 힐링이 절실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유약은 여행이 아닐런지. 성공을 향한 집착 때문에 쉼 없이 달려가느라 영혼의 치유가 필요해진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굳이 성공에 대한 집착을 하지 않아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여행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이유로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초대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지만 이거야 말로 현실성 없는 '꿈'에 가깝지 않은가. 내가 무슨 능력으로 사람들을 여행에 초대한다는 것인지... 그런데 어느날 아주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사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내 말에 몇몇 지인들이 선뜻 도움을 주기로 자청했던 것이다. 일단 시작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풀려나갔다. 단 몇일 만에 이 자선여행에 도움을 주실 모든 분들이 정해져버렸다. 몇번이고 다시 확인해볼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주한 프랑스 관광청(Atout France)과 프로방스 각 지역 관광청, 그리고 여행사 '여행박사'에서 항공권과 현지 숙소, 음식, 관광지 방문 허가와 안내를 책임지고 사진작가와 현지 관광 가이드들을 비롯한 스태프들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재능기부를 해 주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러한 기운 덕분인지 인터넷 상으로 공고를 하자마자 전국에서 수많은 사연이 쏟아져 들어왔다. 천 통에 가까운 사연을 읽고 수없이 고민하여 이 행운을 거머쥘 참가자들을 선발했다. <여권만 들고 오세요, 함께 프로방스로 가요>라는 로고처럼, 빳빳한 새 여권을 손에 든 여행친구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여행에 대한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은 채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한 것은 지난 1월 7일 오전 11시.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는 나의 꿈을 용기내어 입밖으로 내뱉은 지 딱 두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떠났고 생애 최고의 선물을 가슴에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실현될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번 프로방스 투어를 통해 삶이 변화한 것은 비단 참가자들 뿐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던 나 자신이야 말로 최고의 수혜자였다고 장담할 수 있다. 프로방스 여행을 마치고 난 지금, 나는 이 '꿈으로 끝날 뻔한 추억'을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닌다. 이유는 딱 하나다. 이런 여행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얻기 위해. 그 열명의 삶과 그들 주변의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목격한 이상 이 일을 멈출 수가 없기에. 우리의 첫 참가자들이 어려운 형편에 마련한 비상금을 모아 '다음에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데리고 여행가실 때 보태주세요'라며 꼬깃한 봉투에 넣어 전해준 돈을 반드시 의미있게 써야 하기 때문에.

허핑턴포스트 코리아가 문을 연 지 한달 남짓 되었다. 우리 에디터들은 사회의 선한 에너지가 집결되는 장을 만들자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충격적이거나 도발적인 뉴스 뿐만 아니라 이름없는 누군가의 삶을 잠시 빛나게 만든 소식들까지도 우리는 전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1월의 프로방스 여행처럼 소박한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전할 잔잔한 파도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부디 이러한 '참되고 선한 의지'를 지닌 많은 독지가들의 도움이 이어지기를, 반드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지면을 통해 제2, 제3의 프로방스 자선여행 소식을 전할 수 있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