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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1일 06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2일 14시 12분 KST

포퓰리즘에 진정한 해답은 없다

Mario Anzuoni / Reuters

혹시라도 관심이 있을 사람을 위해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유럽과 서구에서 반민주주의적이고 굉장히 권위주의적이며 우려스러울 정도로 선동적인 요소를 지닌 세력과 본능이 점점 부상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문명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좌와 우에서, 브렉시트 찬성과 반대에서, 트럼프 지지와 반대에서 다 이런 움직임이 있다. 진행 중인 다른 선거와 투표도 그렇다.

너무 오랫동안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우려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이용하는 것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과거에 그런 전략을 여러 번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득을 본 사람은 그런 전략을 쓴 사람들이지, 그들이 돕고 싶다고 말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업 규제 완화와 세계 무역 협정의 대가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삶과 지역 사회에는 그 부가 돌아가지 않는다.

공공 서비스가 줄어들고, 지자체가 돈을 더 많이 빼앗기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줄어들고, 자신과 자녀들의 미래가 더 어두워지는 것만 볼 뿐이다.

어떤 지역 사회들은 노동력이 더 싸고 노동자들이 더 쉽게 착취 당하는 국가들이 이득을 보는 것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산업과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이젠 자신의 기술이 시장에서 필요없어졌기 때문에 쫓겨났지만 새 일자리는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지역 사회들이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사람들의 감정은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어야 했던 사람들과 기관들, 즉 정치인, 정치 체제, 매체, 금융 부문 등에 대한 불신과 합쳐졌다.

바로 이런 기관들이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사람들에 의해 털렸다는 공포가 가세했다.

민주주의 기관들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없는 껍데기만 남았다는 공포.

진실성이 있고 여기에 대해 손을 써보겠다는 진정한 욕구가 있는 여러 좋은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에 대처하려 나섰다.

동시에, 이런 감정은 민주주의의 기관들을 개선하거나 자신이 대변해야 할 민주주의의 원칙에 다시 힘을 불어넣을 의도는 없는 사람들이 이용해 먹기에도 적절하다. 그들이 보기엔 '평범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로 포장해서 자기 자신의 이득을 취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전체 정치 기득권층이 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이른바 '중도'로 몰렸던 것은 여러 정당들과 지지층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단절시킨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정책들은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한편으로는 국내에서는 엄청난 불평등과 체계적 불안정을 조장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국제적으로 무시무시한 불확실성과 불안정화를 키우는 정책들이었다.

그래서 정치적 기득권층이 이에 대한 어떤 의미 있는 대답도 주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포퓰리즘으로의 이동을 목격하고 있다.

포퓰리즘에는 진정한 해답은 없다. 강한 감정을 이용해 먹으려는 시도만 있을 뿐이다.

포퓰리즘에 항거하면 포퓰리즘의 공허한 수사는 붕괴한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이성적 의논과 사려깊은 토론을 막으려 애쓴다. 질문과 조사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매력과 힘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문명화된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선동의 위협과 공격을 부른다. 특정한 일부만이 아닌 사람들 전체의 의지를 진정 대변하고, 공평하고 균형잡힌 언론이 있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고, 법치를 고수하고, 효과적인 야당이 존재하고, 집회와 결사의 권리가 보장되고, 우리가 진정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치있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가진 정치 체제가 문명화된 민주주의다.

물론 서구 기득권층이 이제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점은 포퓰리즘과 선동이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애초에 만들어 준 것이 민주주의의 틈에서 자란 약점과 부패라는 사실이다.

문명이 이렇게 무너지고, 제국이 이렇게 끝이 난다.

그걸 막으려면 사람들의 실제 우려에 대처할 뿐 아니라, 가능한 어떤 수단이라도 써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의미있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아무리 불완전하다 해도 말이다.

위험할 수 있다 해도.

그래서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장 시급한 일은 그런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계속 부상한다 해도, 현존하는 대안들은 효과가 없으며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변신하거나, 완전히 뒤처지거나 둘 중 하나다.

부를 만들어내는 것뿐 아니라 책임과 혁신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경제를 장려할 대안이 필요하다.

부를 보다 평등하게 나눌 대안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든든히 느끼고,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에 개방된 지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좋은 교육, 안정적인 직장, 편안한 집을 가질 기회가 있게 하는 대안이어야 한다.

이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쉬웠다면 이미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음...

행동은 말보다 더 강하고, 결국 언행일치가 이뤄져야 한다. 관심이 있다면 최소한 시도라도 해야 한다. 실패한다 해도 말이다. 노력해봐야 한다. 당신이 무얼 모르는지, 당신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시작해야 한다.

귀를 기울이고 잘 들으려 애써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좌파 우파 같은 건 버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지 알아 보라.

당신의 가치를 고수하라.

공정함을 지지하라.

정의.

친절함.

이런 가치의 적들에 맞서라.

득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

사람들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든, 뭐라고 매도하든 그 말에 진실이 없다면 상관하지 말라.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라.

당신의 자아를 무자비하게 대하라.

가끔은 당신의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당신 자신일 수 있다는 걸 알라.

그리고 당신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전진하라.

당신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시도는 했다.

어디서든 시작은 해야 한다.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UK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