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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4일 13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9일 12시 11분 KST

'칼퇴'라는 말부터 버립시다

요즘 야근문화를 없애려고 대기업들도 "칼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수'마트데이, CJ의 패밀리데이 등은 직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 일찍 퇴근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 '스마트'한 날 직원들이 집에 가는 시간은 '입사 계약서'에 써있는 원래 퇴근 시간이랑 똑같습니다. 6시! 안타깝게도 이 프로그램이 직원들에게 심어주는 메시지는 '6시에 퇴근하는 건 특별하다, 선물이다, 보통이 아니다' 입니다.

한겨레

작년 말 여의도 사무실에서 평일 6시 반쯤에 신입사원인 나는 팀장님께 "팀장님 저 먼저 가볼게요" 라고 말씀드렸다.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으로서 이런 상황에 신경을 안 써도 됐지만 나는 팀장님께 인사하는 기본 예의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팀장님의 답은 "벌써? 칼퇴하는 거야?" 이게 무슨 뜻이죠?

팀장님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6시 반 정도에 퇴근하면 팀장님이 습관적으로 항상 하는 말은 "어디 가니?". 부러워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 가지 말라는 건가? 나를 싫어하는 건가? 등등 오만 가지 생각이 들지만, 바로 잡생각을 접고 팀장님의 눈치를 무시한 채 집에 가버렸습니다.

만약 내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저렇게 쿨하게 떠날 수 있었을까요?

전 이런 상황에 쓰는 '칼퇴'와 당연하게 여기는 '야근'이라는 단어를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우선 6시 반에 퇴근하는 경우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오후 6시 30분이 무슨 칼퇴입니까? 6시 반에 퇴근하는 건 30분 동안 야근하는 거잖아요. 딱 6시에 퇴근하는 건 그냥 퇴근입니다. 한국 조직에서 7시 퇴근은 칼퇴근이 돼버렸고, 9시 퇴근은 보통 퇴근이고, 밤 11시가 넘어야 야근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말뿐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한국사회는 전체적으로 이런 '근무시간'이 무언의 약속처럼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계약서에는 출근과 퇴근 시간이 명백하게 나와있는데 말이죠)

생각해봅시다. 6시 반이나 7시에 퇴근하는 친구 중에 "아 내가 야근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당신의 답은 "7시에 퇴근하는 게 무슨 야근이야"일 겁니다. 야근문화를 바꾸려면 한국사회의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칼퇴' 대신에 그냥 퇴근시간이라고 합시다.

영어로 번역해보면 칼퇴근이라는 단어도 속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단하게 퇴근시간에 집에 가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칼퇴라는 속어는 '빨리 퇴근했다'는 뜻이라고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지만 사무직의 귀에서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칼퇴라는 말을 들으면 "넌 우리를 버리고 갔다", "넌 우리처럼 열심히 일 안 한다", "넌 우리처럼 희생을 안 한다", "넌 게으르다", "너는 회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부러워 or 얄밉다"... 이 많은 말들을 듣는 것입니다. 저런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칼퇴라는 단어를 사무직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근무시간 내에 일을 효율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퇴근 시간에 집에 가는 것을 나쁘게 만드는 "칼퇴"는 피하게 되고, 상사들 눈에 성실하게 보이고 일 잘하게 보이는 (회사 내에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수단인) "야근"을 선호합니다.

요즘 야근문화를 없애려고 대기업들도 "칼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수'마트데이, CJ의 패밀리데이 등은 직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 일찍 퇴근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 '스마트'한 날 직원들이 집에 가는 시간은 '입사 계약서'에 써있는 원래 퇴근 시간이랑 똑같습니다. 6시! 점심 먹고 반차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원래 퇴근 시간에 퇴근시키는 겁니다.

이 회사들은 좋은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시행한 것이지만, 결국 안 좋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그램이 직원들에게 심어주는 메시지는 '6시에 퇴근하는 건 특별하다, 선물이다, 보통이 아니다' 입니다.

여러분은 반대로 "내가 혜택 없이 30분이나 1시간 야근하면 회사한테 선물이다" 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조직문화 중 야근문화를 없애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회사 인사팀이나 매니저가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야근문화는 사회부터 바뀌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한걸음 나아가자면 우리 "칼퇴"라는 단어부터 말하지 맙시다.

마이클 코켄의 블로그 "더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