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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4일 09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04일 14시 12분 KST

섹시한 인왕산

센트럴파크는 속치마까지 얌전하게 챙겨 입고 레이스 달린 양말까지 신고 앉아 자연이라고 뻐기는 모습이라면, 인왕산은 팬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유롭게 누워 있는 모습 같았다. 왁자지껄 부산스러운 세상사에 시달리고, 키재기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인왕산이 벌거벗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모든 일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창피해지기도 했다.

대학시절 3년간이나 인왕산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청운동에서 자취생활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인왕산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오십 살 넘어 다시 인왕산 자락에 살게 되면서 내 눈에 자꾸 인왕산만 들어온다. 참 신기하다. 인왕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말이다.

미국에서 살 때였다. 하루는 꿈 속에서 둥근 지구의 이쪽 편에 살고 있는 내 눈에, 지구의 저쪽 편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였다. 한국이 내가 사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저 멀리 지구 저쪽 나라로 객관적으로 보인 거다. 일어나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구 저쪽 나라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예전의 자연과 도시와 사람들이 모두 새롭게 보였다. 저쪽 나라로 여행 온 듯한 느낌. 산에 둘러싸인 서울이라는 도시도 그랬다. 뉴욕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풍광이었다. 북한산, 관악산은 제쳐 두고라도 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이 바로 코앞에 있는 모습은 뭐랄까...꼭 원시림이 도시 속에 쑥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센트럴파크가 있지만, 순전히 인공적인 공원이다. 자연이라기에는 너무 세련됐다. 센트럴파크는 속치마까지 얌전하게 챙겨 입고 레이스 달린 양말까지 신고 앉아 자연이라고 뻐기는 모습이라면, 인왕산은 팬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유롭게 누워 있는 모습 같았다. 왁자지껄 부산스러운 세상사에 시달리고, 키재기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인왕산이 벌거벗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모든 일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창피해지기도 했다. 날씨 좋은 날 인왕산 자태를 보다가 혼자 괜히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잦다. 진짜 벌거벗고 누워 "빨리 너도 벗어~!" 하는 것 같다.

* 이 그림을 그리면서 정말 인왕산이 섹시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