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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7일 08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7일 14시 12분 KST

대도시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영원히 통금 시간이 있는 것과 같다

gettyimagesbank

"너희 페미니스트들은 폭력 이야기하는 게 지겹지도 않니?" 내 지인이 언젠가 물었다.

"응, 정말 지겨워. 폭력 이야기하는 게 정말 짜증나. 하지만 더 나쁜 건 침묵 속에서 고통 받는 거야. 폭력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되면 기쁠 거야. 그리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걸 그만두면 그렇게 될 거야." 나는 화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아즈미나 잡지의 #AgoraÉQueSãoElas (#NowIsTheirTurn 이제 그들의 차례다)와 여성과 페미니스트 집단들의 바모스 훈타스?(같이 걸을까?)의 합작 캠페인 #CarnavalSemAssédio (#HarassmentFreeCarnival 추행 없는 카니발)을 볼 때마다 맥이 풀린다.

씽크 올가가 만든 체가 데 피우 피우(휘파람 소리 이제 그만) 캠페인이 조금 떠오른다.

두 캠페인 모두에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을 개인적으로 일 필요도 없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성들이 폭력이 없는 삶을 살 권리 투쟁을 위한 조직을 만드는 것은 고무적이다. 카니발 때도 그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거리에서 일종의 희롱을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며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다른 많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라는 것에 낙담을 느낀다. 브라질 카니발 중에 여성에 대한 폭력은 흩뿌리는 색종이 조각과 장식 테이프만큼 흔하다.

대도시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영원히 통금 시간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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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캠페인은 내게 작년에 일어났던 일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상파울루 다운타운에서 카니발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다. 날씨와 들뜬 분위기에 적합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시립 극장 근처에서 남성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를 보고 "너는 잡년일수도 있지만, 우린 그래도 너랑 XX할 거야."

이런 때면 카니발의 순수한 즐거움에서 재의 수요일의 가혹한 현실로 순간 이동하게 된다. 나는 언제든 혼자서 다운타운을 걸으면 이런 비밀 집단 멤버 중 하나가 근처를 맴돌며 저 약속을 지킬 기회를 기다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픽업 라인'이 유혹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오직 남성성을 재확인하는 것뿐이라고 늘 생각했다. 나는 여성이 "와, 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남성들이 수작을 거는 게 정말 좋아."라고 말하는 건 단 한 번도 못 들어봤다.

대부분의 픽업 라인들은 순수하지 않다. "미소가 정말 멋지네요! 늘 그런 미소를 지키시길 바라요. 좋은 하루 되세요!" 같은 말은 절대 없다. 그보다는 "괜찮은 보지네.", "네 엉덩이에다 하고 싶어.", "너랑 섹스할 거야." 같은 말에 더 가깝다.

"좋지! 언제 만날까? 와인이라도 좀 가져갈까?" 같은 대답을 기대하는 남성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만족은 수작 건 대상의 반응에서 오는 게 아니다. 남성성의 재확인에서 만족이 오는 것이다. 남성이 길 한가운데에서 "섹시하군!"하고 외칠 때, 그가 한 말은 사실은 "나는 남자고 모두들 그걸 알아야 돼."이다.

자신의 남성성을 재확인해야 하는 이러한 절박한 필요와, 남성에게만 자주성이 허락되는 현실에 대한 여성의 굴복이 합쳐진다는 게 문제다.

어느 남자가 허락 받지 않고 더듬어서 항의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카니발이 원래 이런 거란 거, 몰라?"

이런 형태의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증오의 선언이다. 내가 시립 극장 근처 거리에서 겪었던 것은 여성 혐오였다.

그리고 저열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성희롱이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혼자 걷는 여성에게 농담을 던지는 건 친절한 행동이 아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나 같다. "너 규칙 몰라? 넌 혼자서 거리를 걸으면 안돼. 그럴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리고 나는 너한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할 수 있어."

"난 네 온몸을 핥고 싶어."라는 공격적인 픽업 라인의 진정한 뜻은 "넌 옷을 네 마음대로 아무거나 입으면 안 돼. 넌 여자야."이다.

자기 자신과 자기 정체성의 주장은 다른 사람의 폄하를 수반할 때가 많다. 혹은 최소한 타인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등의 범위를 규정하고, 무슨 옷을 입어도 되는지를 정한다.

대도시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영원히 통금 시간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니발 중에는 희롱은 좀 다른 형태, 보다 창의적이고 시적인 형태를 취한다. 카니발 때 겪었던 다른 사건이 기억난다. 어느 남자가 허락 받지 않고 더듬어서 항의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카니발이 원래 이런 거란 거, 몰라?"

몇 년이 지났고, 다른 카니발도 즐겼지만, 아직도 나는 그 남성의 위협을 잊을 수 없다. 특히 그가 "난 너랑 XX할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고, "우린 너랑 XX할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그는 마치 어떤 단체나 클럽을 대표하는 듯이 말했다. 그 멤버 중 하나가 나를 쓰다듬었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마치 브라질의 거리와 대로를 행진하는 여성 혐오 남성들의 퍼레이드라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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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BR Being A Woman In A Big City Is Like Living Under A Permanent Curfew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