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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6일 09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6일 09시 01분 KST

1910년, '철세계'는 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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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SF가 처음 소개되고 일 년 뒤, 이해조(李海朝)에 의해서 또 한편의 SF 소설이 번역(중역)되었다. 쥘 베른(Jule Verne)의 『인도 왕비의 유산(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egum)』(1879)이 원작이었다. 한국의 SF 도입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늦은 것이었지만 (SF가 하나의 장르로 정립되는 것이 1920년대에 들어서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1900년대 초반에 쥘 베른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는 것은 시류에 크게 뒤쳐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국에서 또 다른 SF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1912년에 한 편, 그리고 그로부터는 10여 년이 지나 1925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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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그랬을까? 부국강병을 위한 계몽이라는 목적성을 가지고 야심 차게 도입된 SF가 왜 그렇게 자취를 감췄을까? 단순히 대중 수용성이나 목적의 효용 여부라고 하기엔 소개된 작품의 절대적인 수가 너무 적다. 사실 이 정도면 이렇다 할 시도도 제대로 못해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국강병을 위한 계몽은 왜 이렇게 그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난 것일까? 답은 의외로 싱겁게 나오긴 한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SF 중 하나가(그래 봤자 이제까지 두 편이 소개되었을 뿐이지만) 금서 목록에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이해조 작품으로는 세 권이 금서조치를 당한다. 이 중 그의 창작 『자유종(自由鐘)』은 대화체의 토론형식으로 애국계몽기 가장 정론적인 작품이지만, 나머지 두 편은 번역작품이다. 그중 하나는 미국의 독립영웅 워싱턴 전기를 번역한 『화성돈전』이며, 바로 이 『철세계』가 또 다른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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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문(유철상, 「번역을 통한 '자미'와 '영향'의 재창조」, 『한국 개화기 소설 연구』, 태학사, 2000, 216쪽.)에서와 같이 『철세계(鐵世界)』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시작되면서 금서(禁書) 조치를 당한다. 더 이상 대중들에게 노출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철세계』가 금지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장르로서의 SF를 금서 조치한 거였다면 (『해저여행기담』은 미완결 연재본이라 차치하더라도) 1912년에 김교제의 『비행선』은 어떻게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이해조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이해조(1869~1927)는 「자유종」이나 「화의 혈」과 같은 신소설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본래 19살에 초시에 합격하면서 한학을 했던 학자였는데, 그런 그가 소설을 쓴 이유는 제법 명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소설은 계몽을 위한 도구였다. 때문에 그의 소설은 민족성을 일깨우기 위해 동학농민 운동을 소재로 하거나(「화의 혈」)이나 구습인 미신타파를 주장하며(「구마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유행을 하던 정치소설의 형식을 빌어 온다던가(「자유종」), 추리소설의 형식(「구의산」)을 띠고 있었다. 그가 애국계몽을 위해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것은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서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목적성이 뚜렷한 그의 소설들이 식민지 정책과 충돌하면서 금서 목록에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순수 창작물인 「자유종」이야 작가의 성향 때문에 금지되었다고 하더라도, 번역물까지 금서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더군다나 창작물도 단 한편만 금서로 지정되었다.) 금서 조치를 당한 작품 중 미국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워싱턴의 전기인 『화성돈전(華盛頓傳)』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겠지만 『철세계』는 왜 금서 목록에 포함된 것일까?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철세계』도 그 내용이 문제시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 물음의 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작품을 읽어봐야 한다. 『해저여행기담』이 국한문혼용체로 되어있어서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면, 『철세계』는 다행스럽게도 국문으로만 되어있다. 여기서도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해저여행기담』과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철세계』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발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신소설들이 철저하게 대중의 계몽을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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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탈슈타트의 황소탑에서 거대한 대포를 만들었다

원작인 『인도 왕비의 유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사라쟁(Sarrasin)은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프랑스빌(Franceville)이란 도시를 건설한다. 또 다른 상속자였던 슐츠(Schultze)는 사라쟁으로부터 건네받은 절반의 유산을 가지고서 슈탈슈타트(Stahlstadt)를 건설한다. 의학을 기본으로 발달하여 지금으로 말하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제공하며 생명연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빌과 달리 슈탈슈타트는 도시가 철저하게 기계화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부속화, 부품화 되어있는 가운데 발달된 기계화 시설로 병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특히 황소탑에서 발사하는 대포는 도시 하나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위력적인 것이었다. 또한 슈탈슈타트의 긍국적인 목적인 프랑스빌을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슈탈슈타트가 가장 이상적인 도시로서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슐츠의 논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슈탈슈타트의 계획은 그곳에 잠입한 마르셀에 의해서 밝혀지고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탈슈타트의 멸망으로 인해, 프랑스빌은 가장 이상적인 도시로 인정을 받게 되고, 자주적인 독립까지도 이룩해 낸다.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 작품은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빌과 기술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부속처럼 여기며 전쟁을 일삼는 슈탈슈타트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것은 1870년 당시 있었던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Franco-Prussian War)으로 인해서 생긴 프랑스와 독일의 국가 간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작품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전체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슈탈슈타트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슈탈슈타트의 모습이 부각되어 '철세계'라는 제목으로 명명되는 이해조의 번안소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라쟁과 슐츠는 각각 좌선과 인비로, 프랑스빌과 슈탈슈타트는 장수촌과 연철촌으로 다르게 호명되고 분량면에의 축약이 있을 뿐, 중심 내용에 대한 편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제목을 '철세계'라고 명명한 것은 슈탈슈타트가 가지고 있었던 기계화된 문명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는 그 시대에 과학(科學)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시절에 동양권에서 과학이란 언표는 기술을 뜻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존시키는 것보다는 주변 환경을 개조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이해조가 중역한 중국어 번역본이 (모리다 시겐(森田思軒)이 1887년 처음 『불만이학사 이야기』라고 번역을 했고, 이를 중국의 포천소(包天笑)가 1903년 『철세계』라는 제목으로 중역했다. 그리고 이해조는 포천소의 중역본을 다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본이 아니라 중국어본을 번역한 것은 이해조가 한학자였다는 작가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종방, 「한국 과학소설의 성립과정 연구」, 세종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27~51쪽 참조.) 제목을 '철세계'라고 지칭한 것도 아마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철세계』는 제목과는 다르게 철세계인 연철촌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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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 뒤덮힌 철세계, 슈탈슈타트

이렇게 작품에서 보여준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체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향점에 대한 비판은 일제로서는 불편한 부분이었다. 물론 쥘 베른이 유행을 했던 이유인 기술문명을 만들어서 부국강병에 이르게 되는 이상향은 견지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인도 왕비의 유산』에서 보여준 기술문명이 가지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은 다소간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더욱이 작품 내에서 원작에서보다 좀 더 비중 있는 캐릭터가 되는 마극(원작의 샤프Sharp)의 설정과 활약상은 여러모로 당시 한국의 실정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극의 고향이라고 나오는 아이사사는 프랑스의 알샤스의 음역어인데, 이는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독일 제국에게 할양한 땅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원작에서도 드러난 바 있고, 중역본 『철세계』에서도 다름 아니었다.

제국주의와 기계화, 근대화된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힘에 의해서 영토를 빼앗긴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이 그리고 있는 제국주의의 완성과 그 이후 식민지 확장에 대한 청사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인식들이 대중들에게까지 퍼지는 건 당시 근대화의 (이 논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완성을 기치로 내걸며 식민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던 일제에겐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철세계』가 보여준 것들은 단순히 서구의 문물에 대한 계몽이 아니라, 맹목적인 근대화와 제국주의가 가지고 오는 폐해에 대한 계몽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결국엔 이러한 제국주의와 기계화된 문명을 파훼하고 프랑스빌이 그 유용함을 입증하며, 자주적으로 독립을 이루는 과정은 식민지의 폐해를 고발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립의 가능성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일제의 입장에서 이 작품에 대한 금서조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국민들이 이러한 '진실'들을 알아선 안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적인 계몽성에 대해 이해조가 파악하고 이 작품은 번역했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해조의 다른 창작 소설들을 볼 때, 『철세계』역시 신소설 특유의 권선징악(勸善懲惡)적인 요소들이 뚜렷했고,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기술로 인해서 변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개의 의미에 좀 더 중점을 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설의 발표 연도가 1908년이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라고 했을 때 이러한 가정은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소설은 금서조치를 당했고 이렇게 경색된 분위기에서 이례적으로 김교제가 2년 뒤 대중성을 강조한 『비행선』을 내어놓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로 조국을 계몽시켜 근대화된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포부를 가지고 도입되었던 SF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1925년이 되어서였다. 그것도 일제가 1920년 이후 문화정책이라는 명목하게 형식적인 출판의 자유를 허락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언제나 공허하지만 만약 우리가 일제 식민지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번역된 작품이『철세계』와 같이 당시의 시대상황과 부합하는 작품이 아니었다면, 애국계몽운동을 하던 이해조가 번역한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금서 조치되지 않고 꾸준하게 대중들에게 작품이 노출되었다면 한국의 SF는, 그리고 장르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인식들은 그 시작을 조금 달리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