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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6일 06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6일 14시 12분 KST

히어로를 완성시키는 진정한 주연 | 로빈부터 할리 퀸까지 다양한 사이드킥의 세계


히어로를 완성시키는 진정한 주연

─로빈부터 할리 퀸까지 다양한 사이드킥의 세계



다이내믹 듀오를 결성해 배트맨과는 세상 둘도 없을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기적의 소년 로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웅 캡틴 아메리카와 함께 나치의 소굴을 깨부수며 맹활약을 펼친 연합군의 마스코트 버키 반스. 아버지 빅 대디가 저격총을 들고 지원하는 가운데 칼을 들고 액션 활극을 선보이던 무서운 소녀 힛 걸. 이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사이드킥. 슈퍼 히어로의 조수다. 슈퍼 히어로의 세계에는 수많은 사이드킥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소년 소녀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친구이거나 연인, 혹은 가족일 수도, 심지어 동물이나 외계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가 히어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사이드킥의 원조 로빈의 탄생


그렇다면 사이드킥의 원조는 과연 누구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배트맨의 사이드킥 로빈이다. 배트맨의 탄생 초기에 작가진은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바로 대화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둠의 기사라는 특성 때문인지, 배트맨은 악당의 본거지에 잠입할 때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상황을 설명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작가들은 배트맨에게 짝을 하나 붙여서 대화를, 때론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려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이 일명 '기적의 소년(the Boy Wonder)' 로빈이다.

로빈의 탄생은 놀라운 결과를 일구어 내었다. 판매 부수가 갑자기 두 배로 껑충 뛴 것이다. 소년 독자가 같은 또래인 로빈을 배트맨보다 훨씬 가깝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소년 사이드킥은 슈퍼 히어로 만화에 등장한지 불과 1년여 만에 대 유행을 불러온다. 사이드킥은 히어로에게 그야말로 필수 조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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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사이드킥, 기적의 소년 로빈의 첫 등장. 《디텍티브 코믹스》 38호 표지.

(사진 제공: 세미콜론)



소년들에게 동질감을 안긴 소년 히어로


개중에는 소년 사이드킥과 성인 히어로의 조합을 절묘하게 뒤틀어 성공한 사례도 있었다. 1919년 창립된 미국 포셋 코믹스(Fawcett Comics)의 히어로, 캡틴 마블의 경우에서는 소년 빌리 뱃슨이 "샤잠"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치면 성인인 캡틴 마블로 변신한다. 소년 팬들은 빌리 뱃슨에게 로빈 이상의 동질감을 느꼈고, 실제로 캡틴 마블의 판매량이 당시 최고의 만화였던 슈퍼맨을 뛰어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위협을 느낀 DC에서는 캡틴 마블이 슈퍼맨을 모방한 캐릭터라며 소송을 걸었다. 소송이 장기화되고 1950년대 만화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출판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포셋이 캡틴 마블을 포기하면서 이 분쟁은 마무리되었다. 이후 1972년 DC는 캡틴 마블의 사용 허가를 받지만,(1994년에는 판권까지 구입한다.) 이미 1960년대 후반 마블 코믹스가 '캡틴 마블'의 상표를 사들였던 탓에 '샤잠'이란 이름을 새롭게 얻게 된다.

국내에 출판된 그래픽 노블 중에서는 『샤잠, 희망의 힘』이 캡틴 마블의 탄생기를 비롯해 그가 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 히어로인지 그리고 있으며, 『킹덤 컴』에서는 슈퍼맨과 인상적인 대결을 펼치고 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노년의 슈퍼맨과 배트맨을 그려 낸 프랭크 밀러는 후속작 『다크 나이트 스트라이크 어게인』에서 플래시 등 다른 저스티스 리그 멤버의 노년 버전과 함께 영원히 소년으로 살아갈 줄 알았던 빅 레드 치즈(캡틴 마블의 별명)의 노년 버전도 선보이고 있다.



사이드킥을 유혹했다는 누명을 쓴 배트맨


'다이내믹 듀오'라 불리며 히어로-사이드킥 관계의 대표격이었던 배트맨과 로빈은 1950년대에 희한한 누명을 쓰게 된다. 둘이 동거하는 관계이며 같은 침대에서 잠옷을 입고 일어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히어로와 사이드킥이라는 설정이 동성애적 판타지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 탓에 그들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배트우먼과 배트걸이 만들어졌다. 동성 결혼이 미국에서 합헌 판정을 받은 지금을 생각해 보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지만, 오늘날의 배트맨 패밀리는 이렇게 태어났다.

이와 함께 만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배트맨과 로빈은 슈퍼 악당을 추적하는 대신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든지, 꿈나라나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하는 등 우스꽝스러운 모험자로 모습을 바꾸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어둡고 묵직한 다크 나이트가 아니라 화려한 무대 위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뛰어노는 코미디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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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검열을 피하기 위한 안쓰러운 시도. 1950년대의 배트 패밀리.

(사진 출처:http://batman.wikia.com/wiki/Batman_Family?file=449px-Batman_Family_002.jpg)



로빈 VS 당대 최고의 사이드킥 이소룡


그러한 1950년대의 설정을 이어받은 것이 1966년 시작된 배트맨 TV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는 리들러, 조커, 캣우먼 같은 악당도 화려한 복장과 개성 넘치는 표정을 하고 등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배트맨 드라마가 인기를 얻던 중에 또 다른 히어로물 하나가 (같은 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바로 2011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던 '그린 호넷'이다. 이소룡이 홍콩으로 돌아가 「당산대형」을 찍기 전, 그린 호넷의 만능 사이드킥인 '케이토' 역을 멋지게 소화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멋진 자동차를 탄 영웅 콤비가 뒷골목의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던 두 쇼는 한때 크로스오버를 단행하기도 했다. 배트맨 드라마에 그린 호넷이 출연한 것이다. 지금이야 우스울 뿐이지만, 어쨌든 배트맨 대 그린호넷, 로빈 대 케이토, 아니 이소룡의 역사적인 대결이 텔레비전에서 펼쳐졌다.


배트맨 드라마에 나온 그린 호넷의 영웅(?)들.

혼자 다른 영화를 찍고 있는 이소룡의 모습에 주목하자.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OI5ZIZhuqSc



사이드킥의 비극


하지만 이런 흐름은 1970년대 이후 히어로를 성인 취향에 맞춰 어두운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며 변하게 된다. 이것은 만화의 주요 소비층이 이제 예전에 로빈 또래였고, 로빈을 좋아하면서 배트맨을 좋아했던 소년 팬이 아니라 배트맨 정도로 나이 먹은 성인 팬인 까닭이 컸다. 신규 팬 중에는 여전히 로빈과 사이드킥을 좋아할 이들이 있었지만, 올드 팬에게 로빈은 이제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DC가 택한 대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이드킥을 성장시키는 것. 그래서 1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은 성인 히어로 나이트윙으로 배트맨에게서 독립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연재글 1회에서 다루었듯)사이드킥을 아예 죽이거나 활동 불능으로 만드는 것으로, 잔인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히어로는 대부분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배트맨처럼) 비극적인 내력을 지니고 있고, 그를 계기로 범죄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영웅 활동으로 마음속 어둠을 극복한 히어로를 다시 되돌릴 방법은 그들에게 또 한 번의 상실의 고통, 제2의 탄생 설화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가장 소중한 존재인 사이드킥을 빼앗는 것이다.

덕분에 히어로의 성장을 위해 사이드킥들은 숱한 비극을 겪었다. 2대 로빈 제이슨 토드가 조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뿐인가. 1대 배트걸 바버라 고든은 『킬링 조크』에서 조커의 총에 불구가 된 후 결국 오라클이라는 보조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슈퍼맨 패밀리의 소년 소녀 영웅 중 슈퍼걸은 『무한 지구의 위기』에서, 슈퍼보이는 『인피닛 크라이시스』에서 모두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랜트 모리슨의 『세븐 솔저스 오브 빅토리』 시리즈에서는 가디언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와 함께 '뉴스 보이 아미'라는 소년 그룹을 등장시켜 그 소년 소녀들이 겪은 비극을 그려 낸다.



돌아온 사이드킥은 히어로 최강의 적.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번 죽었던 사이드킥이 다시 살아나 히어로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그를 더 깊은 좌절로 몰아넣는 작품들이 있다. 이런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는 앨런 무어의 『미라클맨』이 꼽힌다. 이 작품은 본래 『캡틴 마블』이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영국에서 저작권 분쟁으로 미국의 만화가 중단되자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캡틴 마블의 아류작이자 후속작 같은 만화였다.(이름도 처음엔 '마블맨'이었다.) 이 이야기를 1980년대 앨런 무어가 재탄생시킨 것이 바로 『미라클맨』인데, 그 유명한 『브이 포 벤데타』와 같은 시기에 썼던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폭발 사고로 미라클맨과 키드 미라클맨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후 미라클맨은 기억을 잃은 채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었고, 키드 미라클맨은 기억을 유지한 채 악당으로 성장해 있더라는 설정이다. 기억을 되찾은 미라클맨은 한때 사이드킥이었던 키드 미라클맨이 악의 화신으로 변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와 결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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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보여 주는 미라클맨의 표지들. 원작자간의 저작권 분쟁으로 완전한 모습을 접하기 힘들었던 이 작품은 현재 마블 코믹스에서 판권을 인수하여 리마스터 판을 출간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다.

(사진 출처(왼쪽부터):

L. 밀러 & 선 유한주식회사의 『마블맨』https://en.wikipedia.org/wiki/Marvelman#/media/File:Marvelmanspecial.jpg

이클립스 코믹스의 『미라클맨』https://en.wikipedia.org/wiki/Marvelman#/media/File:Miracle3.png

마블 코믹스의 『미라클맨』/https://en.wikipedia.org/wiki/Marvelman#/media/File:Miracleman01Quesada.jpg)



별난 덩치, 별난 귀여움, 별난 엉뚱함의 사이드킥


한편 슈퍼 히어로 세계에는 소년소녀의 범주를 벗어난 별난 사이드킥도 존재한다. 한 예로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나무 인간 그루트가 있다. 싸움에 돌입하면 괴력을 발휘하면서도 나무와 꽃의 순수한 생명력을 힘으로 쓰는가 하면 앙증맞은 눈망울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의 소유자이다. 힘과 귀여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루트 못지않은 캐릭터로 영화 『빅 히어로』의 폭신폭신 로봇 사이드킥 베이맥스도 있다. 둘 모두 마블 만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DC에는 베이맥스와 같은 로봇 계열 사이드킥으로 '부스터 골드'의 사이드킥인 스키츠가 있다. 부스터 골드는 본래 25세기 미래의 고담에 살던 인물로, 20세기 과거로 거슬러와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로서 활약한다. 허세 작렬하다 은근 허당끼로 웃음을 주는 부스터와 그런 그에게 연신 아부 멘트를 날려대는 스키츠는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콤비로, 이 둘은 국내에도 출판된 DC의 『52』 시리즈의 중심인물로 활약한다.



최고의 사이드킥 자리를 노리는 할리 퀸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히어로만 사이드킥을 거느리란 법이 있나? 당연히, 악당에게도 사이드킥이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역시 DC 최강 악당 조커의 사이드킥 할리 퀸이다. 조커를 미스터 J라 부르면서 졸졸 쫓아다니는 이 말썽꾸러기는 본래 배트맨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에서 등장한 캐릭터로, 애니메이션에서 만화로 이적해 온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할리 퀸은 국내에서는 마블의 데드풀만큼이나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다. 재미있게도 2016년에 할리 퀸이 등장하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마블의 「데드풀」이 모두 개봉하니 그동안 굶주렸던 팬들에겐 이보다 기쁜 소식이 있을까.

어린 독자들을 위한 기획에서 시작되어. 성장담, 성인 히어로로서의 고뇌, 악당의 동료로까지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 오고 있는 사이드킥. 사회 구조와 성역할이 계속해서 바뀌어 나갈 미래에는 과연 어떤 영웅과 조수가 함께하게 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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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영화에서 할리 퀸의 '히어로' 조커와 데드풀의 '사이드킥' 위즐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까? 「수어사이드 스쿼드」 사진.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uicide_Squad#/media/File:Suicide_Squad_in_the_2016_film.jpg)


PS. 흔치 않은 악당 사이드킥 중에서 그나마 할리 퀸 급의 인지도를 누릴 만한 인물이라면 (영화이지만)이 사람도 빼놓을 수 없다. 히어로(?)와 사이드킥의 애절한 사랑가로 유명한 'Just two of us'를 열창한 명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오스틴 파워」의 악당 닥터 이블의 사이드킥, 미니미(Mini-Me)를 어찌 빼놓을 수 있으랴!


기분 나쁘지만 귀여워! 닥터 이블의 사이드킥 미니미.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zvTHhWDjIg)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