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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16일 06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16일 14시 12분 KST

'밀회'와 드메 커플 -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산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스무 살의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는 김희애가 연기하는 마흔 살의 유부녀 '혜원'에게 푹 빠져 있다. 특히나 8회에서 선보인 첫 베드신이 압권이었다. 일명 '망봐주고 싶은 베드신'이라고 불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지혜와 충만한 정신, 에고를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 같은 너그러움까지 지닌 중년 여성에게 끌리는 젊은 남자와 부과 권력이 있다 해도 사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중년 여성의 결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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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19세기 초반 프랑스에 나이 든 여자들만 골라 사랑하는 드메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열정적이었지만 사회적 관습에 부딪혀 언제나 보답받지 못했다. 어느날 청년이 천재적인 지성과 마성에 가까운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쇼팽의 연상의 여인으로 유명한 그녀의 별명은 '쇼팽을 말려 죽인 늙은 암여우'였다)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사랑이 어디에 있기에 나에게 이토록 멀기만 한 겁니까?" 그녀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무심하게 "혹시 우물 속에 있을지 모르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드메는 사랑을 찾기 위해 당장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드메라는 청년은 금지된 사랑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을 향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졌고, 사람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남자가 사랑하는 것을 '드메 커플'이라고 불렀다.

요즘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JTBC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유아인 커플 얘기다. 드메의 우물 투신사를 연상케 할 만큼 유아인이 연기하는 스무 살의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는 김희애가 연기하는 마흔 살의 유부녀 '혜원'에게 푹 빠져 있다. 특히나 8회에서 선보인 첫 베드신이 압권이었다. 일명 '망봐주고 싶은 베드신'이라고 불리는...

남루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청년의 아파트에서 청년의 니트를 입고 있는 중년의 여자에게 청년이 홀릴 듯 말한다. "겁나 섹시해요."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 무섭도록 솔직한 청년의 말이다. 여자도 이제 1백퍼센트 그 진심인 청년의 마음에 기꺼이 무너지고 싶은 모양이다. 살짝 나무라 듯 "그런데 그러고 서 있어?" 묻는다. 매우 시적인 움직임으로 카메라가 천천히 청년의 방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동안 카메라 저 뒤편에서 목소리만 들려온다. "저 잘 못할 수도 있어요." "내가 너보다 못할지도 몰라." "그건 내가 판단해요."

삼십 대 중반부터였을 거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의 섹슈얼리티에 느닷없이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 게. 물론 그건 정확히 어린 남자를 통해 성숙한 여자가 경험했을 열락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겠지만. 여하튼 그때부터 나이 든 연상녀와 그보다 한참 어린 연하남(거의 소년에 가까운)의 '러브 어페어'를 다룬 영화들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청춘>이나 <쿵후 마스터>, <피아니스트>, <이투마마>, <알피>, <사랑니>, <책 읽어 주는 여자> 같은 영화들.

그 중 특별히 좋아했던 영화가 있다. 제인 버킨이 나오는 <쿵푸 마스터>로 국내에서는 <아무도 모르게>라는 제목으로 출시됐던 영화다. 한마디로 30대 중반의 이혼녀가 사춘기 딸의 남자 친구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딸의 남자 친구에게 푹 빠진 제인 버킨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영화. 심지어 버킨의 친딸인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엄마의 연적으로 출연하는 영화. 제인 버킨이 어린 딸에게 '솔베이지의 노래'를 나직하게 불러주는 장면(중학생 남자 아이마저도 친구 엄마에게 반하게 되는 장면).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문제 많은 이 커플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무인도로 도피 여행을 떠났을 때도 생각난다. 버킨이 미끌거리는 바다 미역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후, 14살 애인한테 묻는다. "나 예뻐?"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떨린다. 제인 버킨의 그 순진한 사랑스러움에.

제인 버킨이 사랑한 상대는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였다. 좀 외롭고 조숙한 아이. 쿵푸 마스터라는 비디오 게임을 즐겨하고, 콘돔에 물을 부어 아이들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장난꾸러기 중학생. 슬프게도 녀석이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할 무렵에는 그들의 사랑도 끝나게 되는데, 영화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녀석이 담배를 꼬나물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어떤 돈 많은 여자를 사귀었는데 말야. 가슴도 납작하고 늙어서 차 버렸어." 애통한 마음마저 들었다. 저 어린 것이 벌써 정복과 복종이라는 남성적 질서 안에 편입되어 사랑을 비루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구나, 하고 말이다.

소년이 오직 사랑을 위한 순수한 존재일 수 있는 건, 래퍼 에미넴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니스는 짧아지고 고환이 커지기 직전'까지 일뿐이다. 그리고 나면 책임과 권위의 족쇄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그는 앞뒤 안 가리고 순수하게 사랑만 할 수 있는 열정적인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여자는 언제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여자의 전 생애를 아우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걸 깜빡 했던 거다. 언제나 사랑을 원했지만, 악마의 속삭임에 돈과 지위와 서열과 스펙에 따랐던 그 이율배반적인 면 때문에 여자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짓과 기만에 찬 것이 되고 말았다. 많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의사와 변호사를 선택하고, 그리고 매우 부유한 여자들조차 자신보다 돈이 더 많고 지위도 더 높은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너무도 당연한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을, 사랑의 순수를 원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그 순수한 기쁨을 되찾고 싶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자가 두려운 것은 세상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랑에 대한 배신이니까.

근대 성 이론은 소년들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랑의 감정에 대해 강박적이고 감정적으로 절제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지혜와 충만한 정신, 에고를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 같은 너그러움까지 지닌 중년 여성에게 끌리는 젊은 남자와 부과 권력이 있다 해도 사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중년 여성의 결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글은 경향신문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