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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5일 13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6일 14시 12분 KST

힙합의 민족 | 방송이 노인을 사로잡는 방법

JTBC

영화 <헬머니>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참신한 기획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지만, 훅가는 영화가 한 편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김수미X김영옥. 이 조합은 나로선 굉장한 것이었다. 연출자도 <가루지기> , <싸움의 기술>로 나름의 병맛 스토리텔러로서 인정받은 신한솔 감독이었으니 꽤 기대가 됐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영화는, 웃기는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민망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특히 김영옥이라는, 희대의 할매를 데리고 이렇게 낭비하다니. 화까지 났다. 영화 마지막 부분, 아마 시드니 루멧의 <네트워크>에서 빌려온 것 같은, 모두 문을 열고 밖에 욕을 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고 말았었다. 이런 영화는 아예 트로마 같은데서 만들든지 했어야 했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난 원래부터 '할머니'가 소재가 된 유머를 좋아한다. 연원이 어찌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느 정도냐면, 어린 시절 같이 봤던 친구들은 다 재미없다고 하는데도 나 혼자 심형래 주연의 <할매캅>이 재미있는 영화라며 웅변하다가 무시를 당했던 기억이 있을 정도다. 영화청년을 꿈꾸던 20대 중반, 문화센터에서 롤러스케이트를 배우다 본의 아니게 히어로가 되는 할매 히어로 <롤러 할매>라는 각본을 쓰기도 했었다.

문화 컨텐츠 내에서 노인의 소비는 대충 이런 식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나머지 반쪽은, 노인도 사람이다. 노인도 일할 수 있다..는 식의 무거운 담론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당연히 나오는 이야기들이지만, 나로서는 거기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물론 동감을 하면서도 네 그렇죠 근데 저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라는 느낌이 들다가도 그렇지 노인 인권 개선되어야.. 하는 생각도 들고 결과적으로는 그냥 잊고 마는 것이다. 핵심은, 노인을 다룬 컨텐츠를 기획할 때 일반적인 특성, 나이가 많다, 힘이 없다, 불쌍하다, 고생했다 같은 것들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서사는 그저 사모곡으로 변질되고 만다. 재미없는 노릇이다.

예고편에서 P.TYPE은 이런 말을 했다. "힙합이 이제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평균 65세의 할미넴(이라고 방송은 표현한다)들을 모시고 공연을 한다는 아이디어. 내가 이 방송을 한 번 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웃길 것 같아서였다. 할머니라는 존재는 그냥 노인으로만 보기엔 아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면이 있어서 재미난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와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할머니는 언제나 할아버지보다 낫다.

2회까지 본 <힙합의 민족>은 내 예상을 비껴갔다. 이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힙합'이 아니라 '노인'이고, JTBC는 노년층을 겨냥한 예능을 시도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앞서 말한 노년의 일반적인 특성을 최대한 제거하려 하고 있다. 그냥 힙합과는 세대와 거리가 큰 어떤 다른 집단의 인물들이 도전하는 형식을 취한다. <언프리티 랩스타>와 비교해도 구성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가사를 쓰고,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고, 투표를 받는다. 놀랐던 것은, 이 과정의 진지함이었다. 오히려 가볍게 생각하고 '웃기겠지'(물론 웃기긴 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다)라고만 생각한 스스로를 반성할 정도다. "가는 세월 장사 없어도, 무대 위의 시간은 멈춰있어."라는 한 최병주 할머니의 직접 쓴 가사가 뭉클하다.

힙합+노인이라는 기획에서 '힙합'이 아닌 '노인'을, 그리고 '도전하는 한 개인'으로 규정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한 JTBC. 물론 당장 주 타깃 층에 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이 누구를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회가 거듭할수록 반드시 알아줄 거라는 자신감과 믿음이 보인다. 나는 이 시도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