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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12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3일 14시 12분 KST

내부자들 | 원작엔 없지만 영화엔 있는 것

쇼박스

누가 윤태호를 싫어할까. 뛰어난 작가다. 꽉 짜인 이야기와 명확한 캐릭터, 그리고 굉장하다 싶을 만큼의 취재가 바탕이 된 묘사들. 그는 그 동안 여러 군상들의 욕망이 관계를 타고 어떻게 인간을 지배해가는지를 탐구해왔다. 초기작 <야후>에서부터 얼마 전 연재가 끝난 <파인>까지 그의 작품은 나쁜 놈과 나쁜 일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미생>은 예외다.)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 <내부자들>은 야심이 가장 컸던 작품이다. 정치, 언론 그리고 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공생하는지,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보려 했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완결 짓지 못했다. 73회로 중단된 웹툰을 두고 윤태호는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자문에 대답할 수 없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악취 나는 인간들의 더러운 이전투구를 다룬 이 작품에 딱 보면 누군지 알 만한 사람들의 얼굴과 심볼들이 마구 등장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점점 더 커져갔고, 조금만 오독을 해도 이건 무엇인가(혹은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2012년 8월이라는 절묘한 중단 시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압이 있다는 추측(하지만 윤태호 작가는 외압이 없었음을 밝혔다.)을 하게 했다.

이런 아이템을 집어 드는 것은, 특히나 요즘과 같은 시국에 어쩌면 모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은 최고의 배우와 모자람 없는 각본으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어쩌면, 영화를 본 누군가는 원작이 가졌던 깊이를 영화가 옮기지 못했다고도 말할 것이다. 캐릭터가 달라졌다고도 할 것이며 아예 이건 이름만 빌려다 쓴 다른 영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우민호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한 <내부자들>이 꽤 마음에 든다. 위의 지적들을 모두 수용하고 나서도 그렇다. 원작에 없으나 영화에는 있는 것이 있다. 분노다. 영화는 등장하는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위해 원작이 가지고 있던 많은 미덕들을 제거한다.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세계는 얕아졌다. 하지만 나쁜 놈들이 왜 나쁜 놈이고, 그들이 큰 틀에서 어떻게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해악을 입히는지에 대해서만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말 열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직 이 부분만이 영화가 현실을 담보로 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개봉 전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등장하는 많은 묘사들이 현실과 오버랩되며 짜증을 유발하기도 또 시원하게도 만든다. 특히 이강희가 안상구(이병헌)에게 당한 물리적인 복수는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 안에 본 어떤 영화의 복수 중에서도 가장 통쾌한 것이었다.

"대중은 개, 돼지 입니다. 왜 개, 돼지가 짖는 소리에 신경을 쓰십니까? 가만 두면 알아서 사라질 소리입니다."

극 중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가 미래모터스 회장 오현수(김홍파)에게 하는 대사다. 그리고 그 들에게 덤비는 개, 돼지 중 독한 두 놈이 아주 크게 짖는다. 나는 이 영화가 한국의 2015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스스로도 몰랐지만, 이런 이야기가 보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윤태호가 중단했고, 또(만약 이어졌다 해도) 가지 않았을 길을 우민호 감독이 갔고, 이는 <내부자들>의 다른 판본으로서 꽤 좋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