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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19일 10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19일 14시 12분 KST

위플래쉬 - 다시는 연주자를 무시하지 마라

형. 저 재능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대답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재능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말하는 거다.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서야 재능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반대로 재능이 있다는 건,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비교적은 적다는 걸 말해. 알겠냐? 건방떨지 말고 연습이나 해라. 재능 같은 건 아직 니가 입에 올릴 말이 아니다."

Sony Pictures Classics

오래 전, 기타를 배울 때 일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당시로선 꽤 잘나가는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 선배가 있었다. 나도 기타를 잘 치고 싶어, 그 형에게 레슨을 잠깐 받았다. 락 기타의 교과서로 불리는 딥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는 지금도 까먹지 않는 첫 연습곡 이었다. 나는 내가 잘 못 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었다. 형. 저 재능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대답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재능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말하는 거다.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서야 재능이 없다플ㄹ고 할 수 있겠지. 반대로 재능이 있다는 건,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는 걸 말해. 알겠냐? 건방떨지 말고 연습이나 해라. 재능 같은 건 아직 니가 입에 올릴 말이 아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악기를 배우면 겸손해진다고들 한다. 악기는 정말이지 들이는 시간만큼의 실력을 보장한다. 요령도 꼼수도 없다.

<위플래쉬>는 그 빌어먹을 재능을 어떻게 꺼내 놓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인 셰이퍼 음악학교(는 가상의 학교다.). 그곳에서도, 압도적인 팀을 꾸리는 것으로 유명한 테렌스 플레처(J.K 시몬스)가 있다. 그의 눈에, 밤늦게 혼자 연습하고 있던 앤드류 네이먼(마일스 텔러)가 들어 온다. 그는 교내 1군 팀 '스튜디오 밴드'에 그를 영입하고, 기존의 연주자를 보조로 강등까지 시키며 메인 드러머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물론 앤드류는 기뻐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에게 펼쳐진 건 다름아닌 지옥이다.

플레처가 펼쳐놓은 지옥은 물리적, 정신적인 폭력을 동반한 것이며 또한 '시간'을 쥐어짜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앤드류의 뺨을 후려치기도 하고, 심한 모욕을 주기도 한다. 그가 하는 이 모든 행동은 단 한 마디로 정의된다. "제대로 해!" 하지만 무엇이 '제대로'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앤드류는 포기하지 않는다. 메인 드러머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그는 스스로 그 자리에 어울리는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플레처의 폭력과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괴로움. 같은 내용을 가진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지옥. 그리고 그 교집합 속에서 앤드류는 거의 미쳐버린다. 꼬이고 꼬인 어느 날 닥친 사고를 통해 기어코 시야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달려든다. 이 분노는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자의 절규다. 왜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갔느냐. '그곳'은 어쩌면, 로버트 존슨이 악마를 만났던 삼거리. 아마도 그쯤 아니었을까? 하지만 플레처는 인성이 망가졌을 지언정 어쨌든 멀쩡한 사람이다. 악마는, 진정한 연주자가 되고자 마음과 이를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했던 앤드류의 기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악마의 다른 이름은, 어쩌면 '재능'이다.

<위플래쉬>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영어로 된 가장 쓸모 없는 단어는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이다." 일 것이다. 플레처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대사는 그 폭력성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결국 굉장한 연주로 (어쨌든)스승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이는 모습에서 증명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 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위플래쉬>가 그런 플레처의 훈육방식에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면 앤드류가 음악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고, 그 자리에 이미 탑 클래스 연주자가 된 그의 음악여정을 채웠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근육이란 단기간 주입되는 터질 것 같은 텐션이 아닌, 삶의 질곡 속에 이루어지는 수축-이완을 통해 완성되는 것. 뛰어난 '재능'이란 강박과 폭력 앞에 선 개인이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순간적으로 도약하는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시간과 감정이 쌓이고 이를 통해 연주를 대하는 본인의 태도가 '완벽'을 넘어선 '자유'에 기대게 될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것. <위플래쉬>를 보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오로지 과정만이 존재한다. 앤드류는 링컨 센터에 들어갔을까? 글쎄. 이젠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