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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3일 11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3일 14시 12분 KST

나이트크롤러|미친놈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소개합니다

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는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의 불쌍한 처지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그는 야심한 밤 차를 끌고 나가 철조망을 자르고, 구리선을 챙기고, 맨홀 뚜껑을 뽑는 등 공공기물을 무단으로 수거해 고물상에 팔아 근근히 먹고 사는 청년 백수다.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고물상 주인에게 멋진 말빨로 자신을 PR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도둑놈'에게 줄 일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씬을 보면서 한국에서라면 어디든 금방 취직했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이트크롤러>는 '지렁이'라는 뜻이며, '밤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

스스로 반복해 말하듯, 그는 배우는 것이 빠른 사람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는데 들이는 시간을 아깝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무언가 노력하는데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천재라고 부른다. 루 블룸은 어떤 면에서 천재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뉴스 영상 제작 및 판매업에서 단기간에 뛰어난 역량을 보였고, 급기야 방송국에서 그를 하나의 거래처 이상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시종일관 눈을 크게 뜨고 감정이 없는 듯 구는 루의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지만 가장 빈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극도로 과장되어 있는 인물과 사건은 비유로써 작용하고 있다. 허나 그가 좀 더 일반적인 인물에 닿아 있었다면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짜증 났을 것이다.) 언론사에서 짤리고 전세 값은 올려달라고 하고 애들이 유치원을 가네 못가네 마누라는 마트에 일하는데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고 하질 않나...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밤거리에 나서는 한 가족의 수장. 그리고 그가 성공하는 방법...!. 하지만 각본과 감독을 맡은 댄 길로이는 이 이야기를 그저 한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표현하는 언론의 천박함은 꽤 심각하다. 아예 KWLA의 보도책임자 니나(르네 루소)를 통해 루이스 블룸이라는 미친놈을 닮아가는 모습을 그려놨다. 기회만 있다면 충분히 맛이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 그게 댄 길로이가 보는 언론인들이다. 로버트 존슨이 삼거리에서 악마를 만났다면, 니나는 방송국에서 루이스 블룸을 만났다. 그리고 잘 먹고 잘살았답니다? 뭔가 이상하잖아 이거.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되는 거. 그런 거. 근데 예전만큼 이상하거나 화도 나지 않고 그냥 씁쓸하기만 한 거. 그게 지금 세상이라는 거. 비관적이라고? 에이 순진한 척 하시기는. 아니라고? 뭐 그럴 수도 있다. 간접적으로 세상을 점점 더 나빠지도록 하는 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순진함으로 포장되는 무신경함과 먹고사니즘으로 합리화되는 비겁함이다. 어느 쪽에 속하든 우린 모두 일정부분 유죄다. 땅땅.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방송국 KWLA는 LA 최하위 시청률을 자랑하는 방송국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콘텐츠의 종류와 수위는 다른 방송국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다른 방송국이 KWLA보다 낫다면, 그조차도 루 블룸에게 영상을 사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6-7군데의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는 루이스 블룸이라는 미친놈을 통해서 언론 행태의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물상에서도 안 받아주던 이 미친놈이 재능을 인정받고 성장하는 업계다. 뉴스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 언론사는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그 방면의 선수들일 업계 사람들이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나이트크롤러>는 미친놈이 미친놈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다. 아귀가 딱 맞는 당연한 성공담이다. 왠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하지.' 하는 따위의 훈수를 둘 사람이 이 땅에도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