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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9일 11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28일 14시 12분 KST

'군도 : 민란의 시대'에 대한 불평

하정우랑 이성민이랑 마동석이랑 윤지혜랑 하여간 괜찮은 배우들이 '군도'라는 이름 아래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고 외치며 말을 타고 달리는데,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음악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멍청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겐 <놈,놈,놈>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윤종빈 감독의 신작 <군도 : 민란의 시대>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있다곤 하지만, 흥행에 있어서는 쾌속질주를 하는 모양새다. 7월 23일에 개봉하고 5일 만인 28일 300만을 돌파했으니, 무서운 관객동원이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보여줬던 흥미로운 연출과 배우 하정우와의 궁합을 기대하는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에 기대를 한 사람이 이에 못지않게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시절이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기대가 폭발적으로 부딪혀 현재의 스코어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고편부터 리즈 오르톨라니의 그 유명한 스코어 "I Giorni Dell'ira"를 깔며 시원한 '액션활극'으로 스스로 정체성을 선언했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토니노 발레리(<무숙자>로 유명한)의 동명 타이틀 영화의 주제곡이자 최근에 제작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격자>의 ost에도 수록되었던 이 곡은 스파게티(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을 대표하는, 인트로만으로도 그냥 그 시간과 공간에 당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절대 음악 중 한 곡이다.

그러니까, 하정우랑 이성민이랑 마동석이랑 윤지혜랑 하여간 괜찮은 배우들이 '군도'라는 이름 아래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고 외치며 말을 타고 달리는데,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음악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멍청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겐 <놈,놈,놈>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misunderstood'를 틀어 놓고 만주 벌판을 시원하게 질주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만주 웨스턴'의 명맥을 대놓고 잇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실패한 기획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윤종빈이 이제 와서 그런 일을 또 벌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군도 : 민란의 시대>는 아예 대놓고 마카로니 웨스턴을 가져오겠다고 선언을 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에서의 <장고>는 도치(하정우)이지만, 감독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은 조윤(강동원)인 것 같다. 민란은! 화끈한 반란은! 다 어디간거여!

영화를 본 당시에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서 제대로 생각을 못했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과 감독이 필시 강동원의 미모에 홀려 조윤의 비중이 이렇게 커진 것이 분명하다며 혼자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만약 이 영화에서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를 빼고 생각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영화는 훨씬 그럴듯하다. '군도'라는 말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떼를 지어 도둑질을 하는 무리'라는 뜻이다. 이 영화에 군도는 지리산 패거리 외에 또 한 패가 등장한다. 바로 탐관오리들이다. 권력에 기대 민초의 등골을 빼먹는 그들 역시 군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민란'이라는 키워드를 굳이 전면에 박지 않았다면 이런 썩은 세상에서 억울함을 겪은 두 남자의 운명적 대결을 다룬 것으로, 이야기를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나처럼 이 영화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런 비슷한 감상에서 나온 느낌이 아닐까 싶다. 굳이 '민란의 시대'라는 제목이 붙어(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영화의 초점을 흩트려 놓은 것은 아닌가? 만약 이 부제가 나중에 붙여진 것이라면 악수였다고 평하고 싶다.

시절이 하수상하다보니 기대하는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영화가 뭐 크게 대단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의 만듦새는 좀 정신이 없는 편이다. 이야기는 얼기설기 엮여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낭비된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곳곳에 정말이지 촘촘하게 박혀있는 좋은 배우들의 얼굴에 놀랐는데, 그중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김성균의 배역이 그렇다. 이 배역에 왜 김성균이 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김성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도치가 주축이 된 새로운 군도에 김성균을 새 멤버로 추천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이 아닐까 추측하였지만 뭐 그런 거 없었다. 아 물론 감독이 캐스팅을 하는 거에 이래라저래라 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점에 조금 관대해진다면, 충분히 즐길만한 꽤 괜찮은 액션 사극임에는 분명하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으면서(특히 <장고>에서 꽤 많은 것들을 가져왔다.)도 동료와 함께 적과 맞서는 어드벤쳐 무비의 성격과 무지한 한 인물이 영웅으로 커가는 성장영화의 플롯을 가져다 잘 비볐다. 게다가 엄청 멋진 악역까지. 천만관객까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볼만한 여지는 분명히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인가 보다. 글을 쓰면서도 계속 '왜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인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윤종빈 감독님, 어차피 아직 임기도 좀 남았는데 2년쯤 후에 2편 만들어서 그때는 진짜 불 한번 질러주시죠. 감히 청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