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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8일 14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28일 14시 12분 KST

몽골 대초원에서 '큰일'을 보다

몽골 초원에는 화장실이, 없지 않다. 이 이상한 표현은 뭘까? 우리가 생각하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은 없으나, 세상 끝까지 펼쳐진 듯한 초원 자체가 그들에게는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싸는 사람은, 몽골인 중에도 없다. 가급적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는 곳에서 멀리 이동해서 볼일을 본다. 숨을 곳은 없다. 몽골 초원 자체가 나무는 거의 없고 평평하게 깔린 발목에서 무릎 높이의 풀 뿐이다.

최경진

아마도 동트기 직전이었다.

이 시각에 게르에서 잠이 깨면 별 하나 없는 우주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것만 같다. 혹시 내가 죽고 나서 신체는 없이 정신만 살아 있다면 영원히 이런 공간에서 보내지 않을까? 조용히 숙면 호흡을 하는 일행들이 주변에 있음을 느끼지만 내 신체의 일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게르는 암흑의 공간이다.

침상 주변을 손으로 뒤적거리자 손전등이 잡혔다. 간신히 전원을 키고 신발을 신었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일행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게르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해는 이미 지평선 위로 떠올랐고, 두꺼운 나무 기둥에 묶인 두 마리의 말은 얌전히 꼬리를 흔들며 서있다.

난 기지개를 켜고 게르 주변을 살펴 보았다.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늑대 같은 야생동물들이 이 근방에 몰려든단다. 밤에 소변이 마려워도 게르 밖에 나가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옆 게르에서 한 여인이 나왔다. 게르의 안주인이었다. 얼굴만으로는 그녀가 20대인지 30대인지 혹은 40대인지 구분이 안 간다. 힘든 노동 때문인지 그녀의 피부는 수많은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그래도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은 그 어떤 아침 인사보다 반갑다. 배가 슬슬 고픈 시간이었지만, 배가 슬슬 아파왔다. 한국에서 수십년간 매일 아침에 큰 일을 봤으니, 몽골이라고 일련의 행위가 멈출 리 없었다. 난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싼다.

몽골 초원에는 화장실이, 없지 않다. 이 이상한 표현은 뭘까? 우리가 생각하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은 없으나, 세상 끝까지 펼쳐진 듯한 초원 자체가 그들에게는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오줌이든 똥이든 그냥 풀밭에 싸면 된다. 물론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싸는 사람은, 몽골인 중에도 없다. 가급적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는 곳에서 멀리 이동해서 볼일을 본다. 숨을 곳은 없다. 몽골 초원 자체가 나무는 거의 없고 평평하게 깔린 발목에서 무릎 높이의 풀 뿐이다. 가끔 개미들이 만든 듯한 허리 높이의 흙 언덕이 보이지만 그 뒤에 몸을 감추기는 여간해선 쉽지 않다.

몽골 여행 초기엔 누구나 생리 현상을 잘 참는다. 사흘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잘 견딘다. 하지만 먹으면 나와야 하는 게 생명의 근본적인 작동법이지 않는가? 남자건 여자건 어쩔 수 없는 진리이다. 어차피 일행들은 아직 게르 안에서 취침 중이고, 나를 주목하는 녀석은 두 마리의 말뿐이라 큰 일을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게르 주변에서 쌀 수는 없고, 일단 걸었다. 혹시라도 게르에서 나온 사람이 나를 찾아도 쉽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 갔다. 언뜻 봐선 몽골 초원은 부드러운 양탄자 같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거친 잡초와 자갈 무더기가 박혀서 오래 걷기에 좋은 지역이 결코 아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몽골인과 말의 존재가 크게 느껴진다. 심지어 말까지도 나를 보며 '저 놈, 저기서 뭐하나?' 쳐다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몽골인의 시력은 평균 4.0 이상. 난 그들이 안 보여도, 그들은 내가 보인다. 멀리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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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었다. 그러다 낯선 발자국이 보였다. 발자국의 형태를 보고 무슨 동물인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적어도 말이나 양처럼 몽골인들이 기르는 가축은 아니었다. 순간 섬찟했다. 여기서 바지를 까고 큰 일을 보다가 갑자기 늑대가 급습하면 난 그대로 먹이가 되지 않을까? 나중에 사람들이 뼈와 약간의 살가죽만 남은 시체를 발견하면 바지가 벗겨진 모습에 두 번 놀라지 않을까도 싶었다.

혹시 주변에서 이런 나를 주목하고 풀 숲에 몸을 낮춰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TV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면 초식동물을 공격하는 사자나 치타의 모습처럼. 하지만 아랫배가 너무 아파왔다. 더 이상 걷기도 힘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약간의 언덕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

잠시 후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대초원의 공기 속으로 누런(똥냄새에 색깔이 있다면 이런 색이 아닐까?) 향기가 스물스물 밀려왔다. 예상치 못한 아래로부터의 공격에 간신히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급한 큰 덩어리가 빠져 나가자, 엉덩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상당히 부드럽고 상쾌했다.

이것은 한 평도 안 되는 갑갑한 화장실, 그것도 사방을 가려주는 수세식 변기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해방감이었다. 내 몸 속에서 그것이 빠져 나오는 동시에, 자연의 상쾌한 바람이 엉덩이 사이 그곳을 살살 달래주었다. 내 주변에는 각종 개미와 거미 등이 분주하게 돌아다녔지만 아직 뜨끈뜨끈한 변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엉덩이와 자연이 조우한 시간은 끝나고 바지를 올렸다. 초원에 변을 봐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나의 똥은 곤충들의 먹이로, 잡초들의 자양분으로 널리 활용될 것이다. 분명히 자연에 옳은 일을 했다. 그 동안 몽골 초원을 걸을 때마다 무수히 많은 짐승들의 흔적을 보면서 표정을 찡그리며 옆으로 슬쩍 피하곤 했다. 어쩌면 그 중에는 인간의 흔적도 있었으리라. 이제는 그런 흔적이 발견되면 잠시나마 그 자리에 앉아서 자연과 교감하던 인간이나 동물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이후 초원에서 똥누기는 익숙해졌다, 오히려 간혹 화장실을 발견해도 시설이 열악하고 냄새 나는 그곳보다는 자연을 이용했다. 대초원에서 똥누기에 진정으로 맛들이면, 당신은 이곳이 다시 그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