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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1일 05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31일 14시 12분 KST

정명훈이 서울시향에 남긴 성과를 돌아본다

연합뉴스

정명훈과 서울시향에 대한 갑론을박은 그동안 너무 많이 쏟아졌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정명훈 예술감독은 서울시향과의 관계를 끝내기로 최종 결정했고 2016년에 예정된 콘서트도 모두 취소했다.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버린 정명훈과 서울시향 10년을 간단히라도 되짚어보며 과연 서울시향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연주력을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을지 곰곰 따져보자.



예술감독 정명훈은 악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첫번째로는 정감독이 취임하기 전까지 표를 주고 제발 와 달라고 애원해도 외면받던 서울시향의 객석점유율이 완전 매진이라고 할 정도로 치솟았다는 것.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전곡 연주)에 이어 브람스 교향곡 사이클, 그리고 전세계적인 말러 붐에 동참하여 말러 사이클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꾸준히 레퍼토리를 확장시키며 시즌별로 일관된 스토리를 만들어낸 결과다.

매 시즌 초청되는 객원지휘자들의 면면이 점점 관객들의 기대치를 높여주며 그에 걸맞는 연주력 향상을 보여준 것도 크다.



두번째로는 아시아 오케스트라 중에서는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과 5년간 열장의 음반 녹음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음반산업이 바닥을 치고 대세는 영상 위주의 인터넷 스트리밍인 것은 클래식 분야라고 해서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음반의 영향력은 다른 장르에 비해 굳건하고 그중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선망의 대상인 DG레이블과 음반 발매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국내 한정 유통되는 음반에 DG레이블이 붙는 경우는 그동안 꽤 있었지만 전세계로 발매되어 DG본사에서 유통을 책임지는 인터내셔널 음반은 서울시향을 단숨에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다.

비록 음반을 사는 사람들은 정명훈이라는 이름을 보고 대부분 구입하겠지만 서울시향 이전에 DG에서 발매한 다른 음반들의 오케스트라가 빈필과 필라델피아, 바스티유 오페라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같은 검증된 오케스트라였음을 상기한다면 서울시향을 이끌고 녹음을 했다는 건 그에 준하는 신뢰를 구매자에게 제시한다.



세번째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20세기 이후의 음악과 새로운 신작을 집중 소개하는 '아르스노바' 시리즈를 만든 것이다. 지나치게 고전-낭만 음악에 편중돼 있고 그것도 돈이 별로 안 들어가는 특정 몇 곡만 주구장창 돌려가며 연주하는 게 고작이던 한국의 클래식 음악 공연에 새로운 공기를 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주도로 진행되는 아르스노바 시리즈는 봄과 가을, 실내악 콘서트와 관현악 콘서트로 각각 2회씩 열리는데 세계 초연과 아시아 초연, 대다수가 한국 초연일 정도로 그동안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20세기 이후의 음악들을 선보인다. 덧붙여 한국 작곡가의 신곡을 매 시즌마다 빠짐없이 공개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현대음악 실연을 쉽게 접하기 힘든 한국에서 아르스노바는 드물게 검증된 현대음악 콘서트다. 물론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나 진취성은 늘 아쉬운 부분이지만 저작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보통 콘서트보다 훨씬 크고 곡에 따라 동원되는 악기들의 수급이나 연주자 선정의 까다로운 조건 등등을 생각하면 고군분투 중이다.



네번째로는 한국 오케스트라에 세계 음악계와 동시성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클래식은 오래된 고전을 뜻하는 단어지만 클래식음악은 단순히 옛날 음악이 아니며 늘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고 그 흐름에 발빠르게 동참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뒤처진다.

최근 몇 년간 전세계를 휩쓴 작곡가 말러 열풍도 탄생 150주년, 서거 1백주년,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기념할만한 요소들이 상당수 반영된 결과였고 재작년은 베르디 탄생 2백주년, 작년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탄생 150주년이라는 명목으로 집중해서 곡을 발굴하고 연주하는 콘서트가 줄을 이었다.

정명훈 이전의 서울시향은 말러나 브루크너 교향곡 사이클을 진행할 여력이 없었고 고전/낭만 교향곡은 그럭저럭 소화해도 현재 음악계를 주도하는 후기 낭만과 근대 이후의 대편성 관현악곡들은 엄두를 내기 힘든 수준이었다. 당연히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불가능했다.

현재도 해외 오케스트라들이 적게는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스케줄을 미리 확정짓는 것에 비하면 완전한 동시성을 갖추는 것은 부족한 예산과 오케스트라의 역량문제로 다소 힘에 부치는 상태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감수할 만한 수준이다.



다섯번째로는 그나마 전공생이 많은 현악파트, 그중 바이올린에 편중된 국내 오케스트라의 열악한 형편에 미래지향적인 마스터클래스를 꾸준히 진행해 왔고 특히 세계 수준의 기량을 기대하기 힘든 관악파트의 연주자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향의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는 뭐든 줄세우기 좋아하는 한국사람들 취향에 맞게 설명하자면 3대 수퍼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베를린 필, 빈 필, 로열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RCO) 중 RCO의 트럼펫 수석을 역임했던 세계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다. 바로 그 바티가 직접 주관하는 트럼펫 마스터 클래스가 현재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정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이런 마스터클래스들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외국인 단원들의 거취도 그렇고 수석연주자들이 진행했던 경우라도 어쨌든 다 돈이 들어가는데 매년 깎여나가는 예산으로 감당하기 힘들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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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의 운영에는 어떤 나라, 어떤 도시든 공적인 세금이 투입된다. 미국은 몰라도 적어도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세금으로 유지되거나 재정의 큰 부분을 의존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시 소속이 아니라 탄생부터 민간 오케스트라였고 현재 가장 튼튼한 재정을 갖고 있는 부자 악단이지만 그래도 베를린 시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다. 민간이든 정부 소속이든 오케스트라는 공적인 성격을 띄는 단체일 수밖에 없고 베를린 필도 시 정부로부터 매년 지원받는 세금으로 학생들에게 티켓값을 깎아주고 어린이를 위한 가족콘서트를 연다. 무료에 가까운 콘서트를 연다고 해서 아무나 내세워서 얼렁뚱땅 연주하지도 않는다. 어떤 공연이라도 베를린필의 단원들과 초청된 일류 지휘자들이 나서는데 이 모든 비용이 다 세금이거나 후원해주는 도이치 은행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과 스물다섯 나이에 영국의 소도시 버밍햄의 쇠락한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취임해서 18년간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명문 악단으로 키워낸 사이먼 래틀의 사례는 단지 그가 남다른 천재성과 추진력을 가진 뛰어난 지휘자이기도 하지만 그 젊은 지휘자의 요구에 발맞춰 버밍햄 시가 예산을 대폭 지원하고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을 최고의 음향조건을 갖춘 버밍햄심포니 콘서트홀을 지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작은 산업도시에 불과했던 버밍햄은 20년만에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음악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콘서트홀이 지어져서 사이먼 래틀에게 무슨 개인적인 이득이 돌아갔을까? 그가 공로를 인정받아 베를린 필의 예술감독으로 옮기는데 상당한 가산점은 됐을 것이다. 래틀은 버밍햄을 떠났지만 버밍햄심포니는 여전히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 심포니홀은 뛰어난 음향을 자랑하는 콘서트홀로 평가된다.



서울시향은 정기공연 외에도 한해 소화하는 행사가 굉장히 많다. 동네마다 찾아가는 무료음악회나 크고 작은 정부 행사에 동원되는 횟수도 만만치 않은데 구경하는 데 무료라고 해서 진짜 무료일 수는 없다. 어떤 경우든 연주자가 동원되고 시간을 들여 행사에 투입된다면 그 자체가 돈이고 서울시향에 매년 지원되는 서울시의 예산은 그런 곳에 주로 쓰인다.

비록 아직도 정명훈이라는 이름값으로 해외 투어나 페스티벌의 초청이 들어오고 음반 녹음 계약이 이루어지지만 서울시향의 역량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들이다. 단원들의 체질개선을 이루는데 많은 잡음과 논란이 뒤따랐지만 오케스트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력있는 단원들을 끊임없이 영입해야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은 베를린 필 같은 초 특급 오케스트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예술감독인 래틀이나 그 전임자인 아바도의 재임기간 동안 상당수의 단원들이 퇴직하며 물갈이 됐고 정년이 보장된 정단원이라도 실력을 꾸준히 향상시키고 유지하지 않으면 스스로 버틸 수 없는 세계다.

지난 십년간 그 파고를 견디며 살아남은 현재의 서울시향 단원들이 아직도 정명훈 감독이 꼭 필요하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정감독이 떠나기로 결정된 후 마지막 공연이 된 12월 30일의 합창교향곡 공연 전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로비에서 관객들에게 입장호소문을 돌렸는데 이들이 과연 자기들 밥그릇에만 집착해서 아둥바둥하는 것일까.



냉정히 말해서 정감독이 서울시향의 예술감독을 사임하고 한국을 떠나도 당장 서울시향의 위상에 뚜렷한 변화는 없다. 정감독을 대체할 인물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찾아보면 꽤 있다. 문제는 예의 '연봉 20억' 이상을 줘도 변방의 불확실한 도시까지 굳이 찾아와서 예술감독직을 하겠다는 지휘자는 없다는 것이다.

적은 연봉으로도 기꺼이 서울시향으로 오겠다는 지휘자도 있겠지만 단순히 예술감독의 연봉만이 아니라 지금도 매년 깎여나가는 예산이 계속 줄어들다 보면 결국 현재 서울시향이 이룬 성과는 서서히 무너지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수십년에 걸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은 오케스트라도 무너지는데 몇 년도 안 걸린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더 슬픈 것은 한번 무너진 오케스트라를 재건하는데는 그보다 몇 배의 비용이 더 들어가야 하고 현재 한국의 분위기만 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좋은 오케스트라는 정신력이나 열정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일류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그 일류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실력이 되는 단원들을 모아야 하고 그만큼의 높은 연봉을 제시해야 한다. 실력의 격차는 피나는 연습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향의 지난 십년은 단원들의 노력도 있지만 개인적인 커리어를 상당 부분 포기하고 서울시향의 성장에만 집중한 정명훈 감독의 희생이 따른 결과물이다. '그만한 연봉을 챙겼는데 뭐가 희생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유럽이나 북미의 음악계에선 있을 수 없는 조건에서 연봉을 스스로 깎아가면서도 매달렸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희생이다. 사실상 개인이 자신의 몫을 포기해가면서까지 희생해서 유지하는 오케스트라는 비정상이다. 정명훈이 떠나도 그와 비슷한 위치의 지휘자가 얼마든지 올 수 있어야 하고 오케스트라의 단원도 언제든 더 뛰어난 실력의 단원으로 더 많은 연봉을 지불해서 교체할 수 있어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혈세라는 말이 툭하면 튀어나오는데 어차피 오케스트라에는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기왕 들인 혈세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방향을 모색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세계수준의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그에 부합하는 전용홀을 건립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자원, 관광자원이 된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것은 단순한 취미생활의 하나다. 누군가는 아이돌의 노래를 좋아할 수 있고 힙합 뮤지션에 열광하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 감상도 취향이다. 흔히 '돈 많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나 듣는다는 괴상한 편견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아이돌 콘서트 표값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콘서트를 볼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조금만 부지런하면 독일이나 영국의 라디오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어제 저녁 현지에서 연주한 유명 연주자의 실황을 빼어난 음질로 그냥 들을 수 있고 새로 발매한 신보의 음원을 한시적으로 무료공개하는 페이지도 찾아보면 많다. 라디오 음원뿐 아니라 영상도 얼마든지 넘쳐나고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약간의 돈을 내고 유료 콘서트중계(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영국 로열 오페라, 베를린 필하모닉 등)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두에 만족이 안된다면 실황 연주를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가는 것인데 서울시향의 약진은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의 비싼 티켓값을 무리하게 감수하지 않아도 웬만한 오케스트라 못지 않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질 높은 연주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누릴 수 있게 해줬다.

실황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명연주를 방에서 전파를 통해 접하더라도 현장에서 생생한 악기소리들이 공기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진짜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늘 그게 그거 같지만 백년 전의 연주와 십년 전의 연주가 다르고 작년 연주와 오늘의 연주가 미묘하게 다르다. 옛날 음악이라도 박제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다.



서울시향은 근래 한국에서 가장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음악 공급자였다. 한국에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아무 때나 손쉽게 표를 사서 공연장을 찾을 수 있는 오케스트라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대도시마다 두어 개는 있어야겠지만 서울시향이 기폭제가 돼서 다른 오케스트라들도 관객을 모으면 그만큼 발전할 것이고 그 성과는 서울시향에 들어간 세금보다 몇 배의 혜택을 모든 국민에게 되돌려줄 수도 있다.

클래식 음악을 누가 그렇게 듣는다고 그 많은 세금을 쏟아부어 유지해야 하느냐는 소리, 동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으로도 충분하니 서울시향같이 비싼 오케스트라는 어려운 경제를 감안하면 불필요하다는 소리 등이 그간 많았는데 한번 물어보자. 그토록 돈이 아까워서 모든 게 낭비고 쓸데없는 거라면 삶의 의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좋은 옷은 비싼 옷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남 보기 부끄럽지 않은 옷을 사려면 일정액 이상은 부담해야 한다는 걸 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에는 좋은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역시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음악은 좋은 게 필요 없는 것일까? 당신이 오늘 심심해서 아무 거나 눌러보는 음원사이트의 히트곡에는 상상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다. 티비 틀면 나오는 가수들의 의상비와 안무에도 역시 돈이 든다. 그걸 비싼 돈 내고 보느니 차라리 동네 아마추어들이 열심히 연습해서 똑같이 춤추고 노래하면 그 무대에 열광하고 기꺼이 음원을 사줄 것인가.

가수는 사기업이 자본을 갖고 만들어내는 연예산업의 일부이고 그 비용은 수많은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부담하며 간접적으로는 그 가수가 인기를 등에 업고 출연하는 광고의 상품을 소비함으로 더 큰 비용을 십시일반 형성한다.



오케스트라는 일개 기업이 키우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유지비용도 그만큼 높아서 주로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다. 그 대신 일반 관객들에게 생산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티켓값을 제공하고 관객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그 공연을 즐기는 혜택을 받는 것이다. 정 그돈이 아깝다면 안 보면 그만이다. 당신이 낸 세금이 거기에 얼마가 들었는지 몰라도 그리 큰 액수는 아닐 테고 돈 내고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당신과 똑 같은 세금을 냈는데 거기에 티켓값도 내고 그 음악을 듣는 것이다. 행복추구권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누군가는 티비에서 춤추는 아이돌그룹의 무대를 보며 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누리는 게 다를 뿐이다.

그 모든 돈이 아깝다면 공평하게 모든 음악을 금지해야한다. 과연 그게 정당하고 합당한 일인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겠지만 행복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은 있어야한다. 먹고사는 문제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문제는 왜 늘 등가시켜 우선순위를 가려야만 할까. 배가 고파도 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 한소절에 감동받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서울시향의 앞날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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