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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31일 07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01일 14시 12분 KST

조선의 변경, 강화도를 렌즈에 담다

'변경의 역사'의 주인공이 돈대이긴 하나 그의 사진의 피사체는 돈대가 아니고 돈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건물보다는, 부석사에서 바라본 소백산 풍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상엽 작가는 돈대를 주 피사체로 삼음으로써 돈대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던 조선 민중들의 아픔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초병들의 시각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보았던 강화도의 풍경과 민중들의 고난을 이해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럽지 않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1871년에 발생한 신미양요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아픔의 역사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는 단 몇 줄로 기술되어 있고, '서양 오랑캐'를 '물리쳤다'라고 결론지어져 있으며 대다수의 한국인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매우 다르다.

신미양요는 1871년에 발생한 조선과 미국의 전쟁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올라가는 물자의 통로이자 한양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요충지인 강화도를 미국이 점령했다. 불과 3일간의 교전으로 조선군은 사령관격인 어재연을 비롯해서 240여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였으며, 20명이 포로로 잡혔다. 반면 미군 측은 병사 3명이 전사하고 10명이 부상한 말이 전쟁이지 거의 학살이나 다름없는 조선군의 대패로 마감된 전쟁이다.

남북전쟁으로 습득한 경험과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미군에 맞선 조선군을 지켜줄 것은 아홉 겹으로 솜을 두른 갑옷뿐이었고 사냥꾼이 포함된 조선군은 죽는 순간까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적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지금도 강화도를 탐방하는 일반인들이나 소풍을 가는 학생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가 바로 그 당시 역사의 현장 돈대다.

그 옛날 서양의 무시무시한 화력에 맞서 싸운 조선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기대를 하고 찾지만, 막상 '볼 것이' 없어서 금방 발길을 돌리는 곳이기도 하다. 웬만한 역사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유심히 지켜보고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돌려 보기 힘든 곳이 바로 강화도의 돈대다. 돈대란 요즘의 해양 경비 초소쯤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맞는데 소대 병력 정도의 병사가 주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화도에 설치된 돈대는 총 54곳이었으며 숙종 때 관병과 승려 1만 5천 명을 동원해서 겨우 80일 만에 축조되었다. 신미양요까지 갈 필요 없이 축조 당시에도 이미 민중의 피눈물이 배어있는 아픔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미 '이상한 숲 DMZ'라는 이 땅의 민중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변경을 담는 작업을 해온 사진가 이상엽이 조선의 변경 강화도를 주목하고 렌즈에 담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미 본래의 모습이 상당 부분 훼손된 강화도의 돈대이니만큼 그의 사진은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경외감을 준다든가 극적인 놀라움을 주는 사진은 아니다. 그러나 유명무실해진 돈대와 변방지대를 두루 살피고 사진으로 기록한 그의 이번 작업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 그의 다큐 사진의 매력이자 존재의 이유이다. 사진보다는 텍스트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책을 주로 낸 이상엽 작가가 예외적으로 사진을 중심으로 한 <변경의 역사>를 내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사진집은 시각보다는 생각에 치중하도록 의도됐다고 본다.

<변경의 역사>의 주인공이 돈대이긴 하나 그의 사진의 피사체는 돈대가 아니고 돈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건물보다는, 부석사에서 바라본 소백산 풍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상엽 작가는 돈대를 주 피사체로 삼음으로써 돈대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던 조선 민중들의 아픔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초병들의 시각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보았던 강화도의 풍경과 민중들의 고난을 이해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Photo gallery 변경의 역사 See Gallery

그래서 돈대에서 바라본 역사의 흔적을 바라보려 한 이상엽 작가의 시선은 매우 옳다. 돈대라는 시설물을 담는다는 것은 민중의 시선이 아니고, 민중들을 핍박한 지배층의 시선이 아니겠는가? 수백 명의 조선군을 살해하고 자랑스럽게 기념사진을 남긴 미군의 시선에 가깝기도 하다.

이상엽 작가가 1871년 그날의 흔적을 빌려 온 것도 그 당시 미군의 승리를 기록하고자 동행한 사진가의 필름이라는 것은 어쩌면 아직 우리에게 대물려진 역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변경의 역사>에 수록된 신미양요의 생생한 흔적을 담은 사진들은 미국의 시선으로 본 '정복의 현장'이라는 것이 현재의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변경의 역사>는 장정이라든가, 사진집의 앞표지와 뒷표지의 이미지를 이상엽 작가가 찍은 사진 위에 강홍구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남다른 훌륭한 자랑거리가 있지만, 신미양요와 조선의 관문 강화도라는 아픈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작업이다. 사진집의 장정과 디자인에 관해서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정보나 지식을 담는 책과는 달리 사진이라는 예술을 담는 사진집은 그 만듦새가 예술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간 국내 사진집은 마치 학위논문집처럼 다소 딱딱하고 투박하게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변경의 역사>의 경우에는 사진집다운 예술적이고 단아하며 독특한 만듦새가 맘에 든다. 잘 만든 사진집이라기보다는 잘 지은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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