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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5일 12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5일 14시 12분 KST

시인 이산하, 펜으로 북을 치다

4·3과 필화사건에 관한 행적은 뒷이야기로 다루어질 뿐이다. 희한하게도 우리 현대사에서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다가 오랜 수형생활과 고초를 겪은 분들의 저서는 일상생활과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경우가 많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신영복의 <청구회 추억>,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와 더불어 시인 이산하의 <양철북>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산하 / 한겨레

내가 시인 이산하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내가 결코 몰라서는 안 될 이름이 이산하이며, 동학혁명이나 4·19 못지않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제주 4·3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두산 백과사전 인용)이다.

공식적인 집계로만 무려 1만 4천명의 민중이 희생된 이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발생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사건임이 분명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민중들의 억울함과 보상이 현재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3 사건의 애통함을 절규한 장시(長詩) <한라산>을 잡지 <녹두서평>에 '목숨을 걸고' 발표한 이후 시인 이산하는 기나긴 수배생활을 해야 했고 결국 체포되어 긴 수감생활을 겪었다. 체포된 그를 취조한 검사가 바로 현 국무총리인 황교안이며 '악질 빨갱이'로 낙인 찍힌 그를 위해 '뉴욕의 지성' 수잔 손택이 구명활동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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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성장소설 <양철북>을 냈다. 그가 살아온 행적을 생각하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되는데 의외로 그의 치열한 투쟁과 고난보다는 법운 스님과 만행을 함께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세상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4·3과 필화사건에 관한 행적은 뒷이야기로 다루어질 뿐이다. 희한하게도 우리 현대사에서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다가 오랜 수형생활과 고초를 겪은 분들의 저서는 일상생활과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경우가 많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신영복의 <청구회 추억>,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와 더불어 시인 이산하의 <양철북>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가 어린 시절 탐독한 책과 가족들과의 추억 그리고 그의 멘토 역할을 한 법운 스님과의 선문답이 눈여겨 볼 만하다. 아니다. 오히려 그의 성장소설 <양철북>은 아픈 현대사의 질곡보다는 차라리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만담이 눈에 더 띈다.

그러니까 사람 피 빨아묵는 모기는 다 새끼 밴 암논들이라서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건 이 법전에도 나와있고 <경국대전>에도 나와 있고, 또 저 머나먼 기원전 1750년 바빌로니아 왕국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정한 인류 최초의 함무라비 법전 제 283조에도 분맹히 명시돼 있는데, 니는 우찌 무식하게 고것도 모르노?

그러니까 <양철북>은 독자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읽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성장 독서기로, 해학과 풍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버금가는 추억담으로, 불교와 선문답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쉽고 재미난 선문답 집으로 읽기에 충분하다. <양철북>에는 성장기에 읽어야 할 좋은 많은 책들(데미안, 죄와벌, 감자, 이병주의 지리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겨울공화국, 어느 돌멩이의 외침, 광장, 자기 앞의 생,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민족경제론,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사상계, 씨알의 소리)이 소개되고, 혼자 피식 웃게 만드는 해학이 가득하며, 평이하지만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선문답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남은 페이지를 헤아려가며 아껴 읽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나는 왜 한라산을 쓰게 되었는가? "나는 왜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시인 이산하의 대답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