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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4일 07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14일 14시 12분 KST

취미로 인생을 바꾼 여자들의 이야기

사람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여럿이겠지만 나는 취미생활의 여부를 으뜸으로 친다.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닌 한 가지 정도의 열중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닌데 눈빛을 반짝이며 탐닉을 할 수 있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 나는 좋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팍팍한 세상에 한가하게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가 어디 있냐고 항변한다면 굳이 격하게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아주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미개'하다며 '개척'의 대상으로 삼은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하루 4시간 정도에만 생존하기 위한 '일'을 했는데 반해, '문명화'된 현대 미국인들은 8~10시간 정도의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이 사실로 단순히 여가생활의 장단을 확신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분명 숨 가쁜 생존활동을 해야 한다. 빨라야 밤 10시는 되어야 퇴근을 하는 이에게 '너도 사람답게 좀 살아야지'라고 조언을 하는 배짱은 내게 없다. 본인이 누구보다 더 절실히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비극은 '자신만의 시간' 즉 '취미 생활의 부재'가 아닐까? 시골의 종갓집에 시집을 와 평생 농사일과 종부로서의 끝도 없는 의무에 시달려온 내 어머니의 삶을 엿보면 어디 하나 눈물겹지 않은 구석이 있겠느냐마는 평생 남을 위해서만 살고 자신의 취향을 전혀 누려보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깝고 슬프다. 그래서 그런지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어머니를 태워드리고 오는 길에 눈물이 다 나더라.

취미라는 것이 확실히 정도의 차이지만 돈과 시간이 든다. 그렇다고 '내 팔자에 무슨 취미냐'고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취미생활의 즐거움 때문만이 아니라 취미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스스로 기를 쓰고 찾아내고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본다. 현직 방송국 P.D인 남우선씨가 <남자의 취미>에 이어서 낸 <여자의 취미>가 주는 메시지도 그렇다. <여자의 취미>가 소개하는 취미생활은 서핑, 여행, 도자기, 커피, 포토그래픽 아트, 살사댄스, 향수, 영사기, 연기를 망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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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을 하거나, 딴짓을 하는 것이 남자의 본능 중의 하나라며 그나마 좀 관대하게 여겨지지만 여자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은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결혼해서 남편과 자식이 있는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여자의 취미>에 등장하는 여성 취미가들은 비록 취미의 최전선에 있지만 이들 역시 자식이 장성한 50대에 시작하거나, 아예 연애를 포기하고 나서야 취미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9명의 취미 여전사들 또한 시간과 돈이 많아서 한가하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며 그 누구보다 빡센 희생을 하고나서야 시작한 경우가 많았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며 푸념을 할 정도로 '돈지랄'의 힘으로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여자의 취미>의 가장 큰 미덕은 '내 형편에 무슨 취미생활이냐'라며 스스로 포기하는 보통사람들에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는데 있다. 취미라는 것이 '돈'과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의지'와 '열정'이 더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말이다.

<폭풍 속으로>, <소울 서퍼>, <체이싱 매버릭스>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을 않다면 당신은 대단한 영화광이거나 서퍼일 확률이 높다. 서핑애호가 김나은씨는 이 세 영화의 주인공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열정적인 서퍼다. 책에 담긴 그녀의 사진을 보노라면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미녀이지만 실상 그녀의 서핑 생활을 읽어나가다보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서핑에 몰두하는 여전사다. 애초에 남자친구의 취미생활이었고, 질투의 대상이었던 서핑에 빠져서 파도를 무료로 공급되는 마약으로, 파도에 긁힌 상처를 훈장처럼 여기는 악마적 열광을 자랑한다.

바로 앞 편의점으로 달려간 그녀는 사온 생수로 상처를 헹구고 지혈한 뒤 순간접착제를 상처 부위에 짜서 발랐다. 발가락은 이내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해 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접착제를 듬뿍 짜서 이중으로 상처 부위를 접합했다. 발가락을 툭툭 건드려보고 잘 붙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시 바다로 달려 나갔다.

- 본문 20쪽

그녀가 서핑에 몰두하는 것은 유명인사가 되거나, 돈을 번다거나, 멋진 몸매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인생이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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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옥영씨는 봉화의 88칸 고택의 며느리로서 평생을 집안일에 몰두하다가 늘그막에 도예의 매력에 빠졌다. 평생을 남을 위한 삶을 살다가 도예로 자신만의 인생을 빚기 시작했다. 큰오빠의 강권에 가까운 추천으로 결혼까지 했고 온갖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도예라는 취미로 제2의 삶을 살게 된 류옥영씨는 시집살이의 설움으로 가득한 고택을 자신의 작품으로 가득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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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라는 '악마의 음료'에 매료되어서, 마치 수도에 정진하는 스님처럼 쇼커트를 고집하며 '카페인교'의 열렬한 신도로 살아가는 천혜림씨의 취미생활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커피의 상징 포타필터를 문신으로 새겨 넣었고, 로스터기를 스스로 개발하는데 열을 올린다. <여자의 취미>은 각 취미별로 그 취미와 관련된 풍부한 배경지식이 많은데 이 책의 저자 남우선 P.D자신이 열렬한 카페인교의 신도라서 커피에 관한 풍부한 역사, 사회적인 배경지식이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가령 지독한 커피 애호가인 고종이 '커피 맛을 너무 잘 알아서' 암살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 어떤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흥미진진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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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원하던 커피라는 취미를 접했을 때 정말 '자신의 심장과 뇌가 조종당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번 빠지게 되니 점점 깊은 수렁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유쾌해 나오기 싫은 수렁이었다.

- 본문 154쪽

영사기 수집가 임혜순씨의 컬렉션은 그 규모가 실로 방대하다. 필자가 쓴 <수집의 즐거움>에 소개된 영사기 수집가이면서 영상박물관을 운영 중인 김태환씨의 그것보다 규모나 질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50평 규모의 전시공간으로 턱없이 부족해 그녀자신의 주거공간이 모두 영사기로 채워져 있는데, 사실 임혜순씨의 수집의 자랑은 그 방대한 양이 아니고 모든 영상기기가 완벽하게 작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영사기라는 기기의 특성상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까지 그녀의 수집생활은 확대되었는데 수십 년 동안 영사기를 스스로 수리하고 매만져온 정성이 없었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무턱대고 마구잡이로 수집을 할 수 는 있지만 모든 영사기가 온전히 작동될 수 있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 정성은 그녀를 따라올 수집가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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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늙은 들소처럼 느리게 지나갔다. 기름내 나는 작업실은 그녀만의 시네마 천국. 아이들 공부시키고 집안 청소하고, 반찬 만들고... 남는 시간은 촌음을 아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애수' '닥터 지바고'에는 접촉이 좋지 않아 깜박이는 가로등불 같은 희미함이 있다. 어두운 벽에 초점도 맞지 않는 필름을 돌리면 길 잃은 영혼들이 나풀거리며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거다. 나이 오십 줄 넘어 혼자만의 방에서 아무도 의식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그럼으로 다시 일상으로 걸어 나갈 힘을 얻는 것이다.

- 본문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