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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4일 10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24일 14시 12분 KST

어머니 수발의 즐거움

남자가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어머니를 손수 간병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특수한 경험인지는 모르나 내가 중풍으로 쓰러지신 어머니를 돌봐보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크다는 것도 영원히 몰랐을 것이고, 손수 씻겨드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2002년에 새벽녘 밭에서 쓰러지시고, 늘 함께 다니던 애완견의 애탄 구조요청 덕분에 간신히 병원으로 옮겨지신 어머니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정확히 12곳의 병원, 요양병원, 거처를 옮겨 다니셨고 그 모든 행선지는 내가 결정하고 함께했다. 내가 12년간 주로 남의 손을 빌려 어머니의 끼니를 봉양했다면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출간한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소장)씨는 치매초기의 어머니의 삼시세끼를 손수 봉양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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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어머니를 손수 간병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특수한 경험인지는 모르나 내가 중풍으로 쓰러지신 어머니를 돌봐보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크다는 것도 영원히 몰랐을 것이고, 손수 씻겨드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2002년에 새벽녘 밭에서 쓰러지시고, 늘 함께 다니던 애완견의 애탄 구조요청 덕분에 간신히 병원으로 옮겨지신 어머니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정확히 12곳의 병원, 요양병원, 거처를 옮겨 다니셨고 그 모든 행선지는 내가 결정하고 함께했다.

어머니가 치료받은 네 번째 병원에서 나의 도움으로 간신히 대변을 해결한 후에 서럽게 우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앞으로 밥은 누가 해줘서 먹을꼬'라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그 죄송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종가집의 종부로 살아오면서 가족과 얼굴도 모르는 시댁의 조상의 제삿밥을 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 어머니가 늘그막에 병이 들어 당신 자신의 밥 걱정을 하셨던 게다. 병세의 호전도 호전이지만 당신께서는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암담하셨던 게다. 종가의 종부로 평생을 살다시피한 어머니께서 말년에 몹쓸 병을 얻었는데 당신자신의 '끼니'를 걱정하게 한 아들의 불효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내가 12년간 주로 남의 손을 빌려 어머니의 끼니를 봉양했다면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출간한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소장)씨는 치매초기의 어머니의 삼시세끼를 손수 봉양해오고 있다. 나 자신도 2년간 직접 우리 집에 모시고 어머니를 돌본 경험으로 비추어 6년 이상 치매 노인을 손수 봉양한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한기호 소장은 홀로 살며, 그 자신도 노년에 치닫는 나이라서 더욱 그렇다.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는 반신불구의 중풍환자를 돌보는 것과 사지는 멀쩡하지만 치매를 앓는 노인을 돌보는 일을 비교하자면 후자가 훨씬 더 힘들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그랬다. 중풍환자인 어머니는 기저귀를 갈아주고, 식사를 챙기고 나면 적어도 3~4시간의 '망중한'을 즐길 수 있지만, 치매 환자는 하루 종일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 중풍환자는 그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환자가 불편한 점을 듣고 해결해줄 수 있지만 치매환자는 본인이 어디가 불편한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한기호 소장이 하는 일이 없어서 어머니에게만 전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한기호 소장은 한국출판사마케팅 연구소 소장으로서 한 달에 3건의 잡지를 펴내고, 단행본을 수시로 낸다. 그뿐인가? 출판계의 쓴소리꾼으로서 열정적으로 각종 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내고, 서평가로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서평 글을 써야 한다.

누구보다 바쁘고 열정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6년간의 어머니 간병일기를 엮어서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펴낸 것이다. 한기호 소장이 존경스러운 것은, 나는 12년 동안 '어머니를 좀 더 잘 치료할 의사, 좀 더 잘 보살펴줄 시설'을 찾는데 주로 골몰을 한 반면, 그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수산시장에 들러, 민어를 사서 어머니를 위해 직접 요리하는 일상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기호 소장은 틈만 나면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원래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 입 밖에 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인 나도 그와 다르지 않다. 아내와 딸아이에게도 사랑한다고 말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낯간지럽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다. 장성한 아들이 늙고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 주는 축복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평생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향한 사랑고백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화장실에 부축을 해서 볼일을 보게 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일은 간병의 괴로움이 아니고 간병의 즐거움에 가깝다고 본다.

나의 경우, 대놓고 '사랑해요'라는 말은 못하고, 어버이날에 꽃을 달아 들이면서 '꽃에 사랑합니다 라고 적혀 있네요'라는 간접화법으로 간신히 말을 했는데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 무엇보다 힘든 것이 간병하는 일이지만,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적게나마 보답하고, 서로의 애정을 주고받는 계기 또한 되는 것이 부모님을 간병하는 일이다.

아파트 위층에서 이사를 가는지 지게차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답답하다며 창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는 지게차에 물건을 오르내리는 소음마저 반가우셨던 것이다.

-128쪽, 지게차 소음과 어머니

나는 주말마다 요양원의 어머니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와 함께 휠체어로 요양원 주위를 산책한다. 마땅한 구경거리가 있을 리가 없다. 요양원에서 키우는 개, 그리고 주위의 들고양이를 유심히, 오랫동안 관찰한다. 어머니의 병환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간병을 하고 어머니를 찾음으로서 단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주변의 일상을 오래 감상하고, 함께 감상을 이야기하는 즐거움도 함께 다가온다.

어머니는 어쩌다 입맛에 맞지 않는 국은 그냥 내버려 두신다. 여름에는 국을 그대로 두면 금방 쉬고 만다. 말씀을 하시면 될 텐데 마음이 약해 그러지 못하시고 이렇게 나마/이나마 속내를 드러내신다. 그럴 때면 나도 조용히 그 마음을 읽고 새로운 찌개나 국을 끓이곤 한다. 이라도 튼튼하면 얼마나 좋을까!

-133쪽, 새 국을 끓이며

남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침대에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만하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지켜보는 일보다, 거의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부실한 치아를 보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 딱딱한 과일이나, 질긴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부실한 치아가 생각나고 문득 죄스러워진다. 나의 치아를 고치겠다고 치과를 찾기도 망설여진다.

오늘도 어머니는 묵묵히 나를 챙겨 주시고 있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에 안쓰러워하시다가 조용히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버튼을 누르실 것이다. 그러고는 밤새 지팡이를 짚고 몇 번이나 거실로 나오실 것이다. 내가 방에 들어가 잠이 들면 이불을 덮어 주시고 창문을 닫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낮에는 하루 종일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실 것이다.

-174쪽, 어머니의 뒷모습

당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은 늘 걱정거리다. 요양원을 찾을 때마다 내 안색을 살피시고 건강을 염려하신다. 지난주에는 내 코에 난 점이 없어지지 않아 걱정이라며 병원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서너 번도 더하고, 나의 다짐을 받고서야 걱정을 거두어들이시겠단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권하고 싶다. 부모님을 좀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머니 생각

이시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