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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9일 12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9일 14시 12분 KST

제주도의 재발견

제주도를 첫 번째 촬영지로 선택한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옛 모습을 급격히 잃어가는 다급함 때문이리라. 그래서 임재천의 제주도 사진이 더욱 귀하고 절박하다. 사진집 <제주도>를 펼치면 제주도의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주도의 속살 겹겹이 스며있는 우리 이웃의 삶의 현장이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 책을 따돌림과 억누름을 받으면서도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그리고 인문지리지 대동지지를 편찬한 이 나라 지리 연구의 외로운 선구가 고산자 김정호 선생에게 바칩니다"

지금은 사라진 뿌리깊은나무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시리즈의 첫 장을 넘기면 나오는 말이다. 군사정권의 절정기에 소외되고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한 이 출판사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문화와 지리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의도와 '택리지' 이래로 최대의 인문지리서를 내놓겠다는 목표로 1983년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총 11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각 시도의 풍물과 문화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많은 사진 자료와 함께 담은 시대의 역작이다.

한편 월간지 <뿌리깊은나무>가 이 땅의 소외된 민중을 집중 조명하여 군사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어 핍박을 받으며 고분 분투하던 1978년, 미국의 저명한 포토저널리스트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자 전 세계에서 성자로까지 추앙받던 사람이다. 슈바이처 박사마저 성자가 아닌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담고자 자신의 안락한 커리어를 보장하는 거대 매체라는 보금자리를 내팽개친 인물이다. 대신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객관적 시선으로 거대권력의 희생양이 된 평범한 인간들의 삶과 고통을 조명하는 사진을 찍고자 외로운 가시밭길을 택했다. 〈미나마타 Minamata〉(1975)의 작가 유진 스미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2015년 5월, 고산자 김정호와 30년 전 <한국의 발견>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하고, 유진 스미스의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닮은 임재천의 <제주도>가 세상에 나왔다. 사진집 <제주도>는 9년간 한국의 5개 도와 4개 시를 총 9권에 담는다는 기획인 한국의 발견 시리즈 제 1권이다. 이 거대 프로젝트가 오로지 임재천이라는 사진가 한 명에 의해서 주도되고 실행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국내 최초로 50명의 후원자들이 1점씩 사진을 예약 구매하는 형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진의 객관성을 지키고 이 땅의 가장 낮은 사람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인문지리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유진 스미스가 그러했듯이 사진가 임재천은 그 어떤 거대 매체나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사진집 <제주도>를 몇 장만 넘겨봐도 임재천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풍광 뒤에는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치게 풍경만을 과장한다든지, 위압적인 산업의 발전상을 내세우는 사진을 그는 담지 않는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기만 한 우리네 삼천리강산이 사실은 민중들의 고달픈 삶의 현장임과 동시에 고단한 노동의 터전임을 알리는 사진이 많다.

따돌림과 억눌림을 감내하면서 걸어서 한반도를 실측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밟았던 그 길을 사진가 임재천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문지리서를 펴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걷는다. 2000년부터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좋다"라는 한 시인의 절규에 동의하며 우리나라의 다양한 읍, 면 지역에 자리 잡은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사진으로 재해석하고, 사라지고 변해가는 한국적 풍경에 몰입해온 임재천 작가가 "제주도"를 첫 번째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가장 사랑받는 국내관광지로 주로 알려져 있는 제주도지만 기실 멀게는 유배지였고 가깝게는 많은 양민들이 학살된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아픈 현장과 민중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제주도는 돈벌이 수단인 관광지로 여겨지고, 개발되며 옛 모습을 가파르게 잃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제주도를 첫 번째 촬영지로 선택한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옛 모습을 급격히 잃어가는 다급함 때문이리라. 그래서 임재천의 제주도 사진이 더욱 귀하고 절박하다. 사진집 <제주도>를 펼치면 제주도의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주도의 속살 겹겹이 스며있는 우리 이웃의 삶의 현장이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험난한 노동과 풍습 그리고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냄새로 꾹꾹 눌러 쓴 임재천의 사진은 아름답고 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