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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04일 08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04일 14시 12분 KST

취미로 인생을 바꾼 아홉명의 남자

[잡식성 책장]<남자의 취미> 남우선 지음, 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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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집, 피규어 수집, 사진, 테니스 등을 취미로 삼는 나에게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온라인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나서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갈 때도 들고 갔다. 날이 좋아서 어머니는 해바라기를 하고 나는 곁에서 이 책을 읽었다. 집에 다시 돌아와서도 이 책을 다시 읽으려고 했는데 아뿔싸 이 책을 어머니가 사용하시는 휠체어의 포켓에 두고 와버렸다.

다음날 요양원에 잽싸게 달려가 어머니도 뵙고 이 책도 다시 가져온 기억이 생생하다. <남자의 취미>는 국내외 많은 수상기록을 가진 MBC 다큐멘터리 PD이면서 음반평론가,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배운 바리스타, 오페라 마니아이며, 스쿠버다이버(12년), 오디오와 사진(30년),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미를 가진 '취미환자' 남우선씨가 쓴 책이다. 취미로 존재를 확인하고 취미로 행복해진 아홉 명의 사내(영화배우 최민수, 방송인 김갑수 외)가 걸어가는 길을 소개한다.

정시에 출퇴근하고 중년이 되도록 짤리지 않는 것을 큰 복이라고 여기는 살기 팍팍한 요즘에 남자들이 취미 생활을 누린다는 자체가 호사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한국 남자들이 자동차의 인테리어에 탐닉하는 이유가 오롯이 자기 취향대로 꾸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사진을 취미로 하는 필자만 해도 장비를 하나씩 들여올 때마다 가격에서 0을 하나씩 뺀 가격을 말하고 운 나쁘게 가격이 탄로나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맞을 각오는 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의 취미>에 등장하는 아홉명의 남자는 어찌 보면 행복을 더 이상 미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즘 시대의 용자이자 로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오디오계의 전설 김갑수는 용자 중의 용자다. 오디오를 단지 취미가 아닌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정의한 사람답게 음악과 커피 열 잔 그리고 담배 세 갑을 하루의 주식으로 삼는 취미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오디오 마니아로 유명한 그는 열독가로서의 명성도 만만치 않다. 그의 저작은 주로 음악과 독서에 관한 것이며 그의 글은 독자들의 눈길을 놔주지 않는다. 나만 해도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로부터 시작해 최신작인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에 이르는 전작을 읽고 소장한 팬이다.

김갑수의 절친이자 유명한 사진가인 윤광준과 마찬가지로 김갑수는 감칠맛 나는 글 솜씨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데 굳이 오디오의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그의 기상천외한 취미생활은 흥미진진하다. 그의 은신처이자 작업실인 '줄라이 홀'은 36평 규모인데 오직 음악만을 위한 공사를 거듭한 끝에 10세트가 넘는 스피커와 3만장의 LP판이 찾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10개의 스피커를 10명의 애인으로 여긴다는 김갑수의 '줄라이 홀'은 돈이 남아 돌아서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안 입고 안 먹는 작전의 소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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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남우선이 취재를 허락받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는 할리 데이비슨 애호가 최민수는 명함을 내밀자 대뜸 "야, 너는 처음 보는 여자하고 섹스할 때도 명함을 내미냐?"라고 내뱉으며 기선을 제압했지만 그와 같은 취미 즉 스쿠버 다이빙과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자 "어이 브라더"라며 저자를 친구로 받아들였고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굳이 최민수가 아니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취미"만큼 편안하고 친민감을 느끼게 하는 주제는 드물다. 의사들이 건강검진을 할 때 "취미가 있느냐"고 묻는 이유도 취미가 있으면 인간관계가 폭넓고 정신건강에 도움 되며 그것이 곧 육체적인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리라.

비록 최민수가 '생계형 배우'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책에 실린 그의 손사진을 보면 배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가죽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의 손이라고 해야 할 만큼 거칠다. 최민수는 '바이크 룩' 가죽 공예품을 직접 제작하고 디자인하여 전시회를 가질 만큼 그 방면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취미를 위해 어두운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무두질을 하며 손톱 밑에 새까만 기름때가 생기게 만드는 사람이 배우 최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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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의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폼'나는 바이크 생활을 경계한다. 대신 작은 액세서리 하나라도 자신의 개성을 중요시하며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공을 들인다. 그는 마냥 터프가이가 아니고 바이크 생활에서만큼은 섬세하고 꼼꼼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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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 다이빙을 마음 놓고 하기 위해 고액연봉이 보장되는 전공과 병원을 버리고 시간 내기 편한 병원을 선택한 의사 박건욱은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행복한 삶'을 선택한 남자다. 아파트 한 공간을 오직 스쿠버 다이빙 장비로 채우고 아내에게 적잖이 구박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집한다. 더구나 그는 근무하는 요양병원에서는 누구보다 유능하고 따뜻한 의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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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구두애호가 김보한씨, 수염을 사랑하는 수염동호회 정호성씨, 별을 헤아리며 빗소리를 듣는다는 캠핑 전문가 한형석씨, 골프 치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든다는 요트 마니아 김수곤씨, 자신의 무한대를 시험하는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정세용씨, 그리고 프리 다이빙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는 김효민씨의 취미생활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저자 남우선씨가 취미생활에 빠진 9명의 남자를 취재하고 집필한 것은 그들의 취미가 호사스러워서 이거나 독자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평생 가족을 위해 돈벌이만 몰두하다가 결국은 인생에 제한된 시간을 다 써버리고 죽는 것보다는 자신의 취미에 몰두해서 행복한 삶을 꾸리고 영혼을 구제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일종의 제안이라고 봐야 한다.

저자 스스로 취미환자로서 동료환자 9명의 영혼이 취미를 통해 어떻게 구제되어 가는가를 꼼꼼이 서술한 다큐멘터리적 취재는 흥미를 돋우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