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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7일 13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9일 14시 12분 KST

상여소리꾼 김 아무개 씨의 이야기

인근에서 최연소 상여 소리꾼에 취임한 그는 그로부터 근 50년간 무수한 망자를 구성진 목소리로 달래 저승길로 데려다 주었다. 불행하게도 김 아무개 씨가 반백년 동안 상여 소리꾼 노릇을 할 때 그 자리를 탐내는 젊은이가 전혀 없었고,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에 타동네에서 소리꾼을 초빙할 여유가 없었다. 김 아무개 씨가 망자들과 함께 거닌 마을 골목골목을 거쳐서 마침 내 장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승길을 위로한 것은 상여 귀퉁이에 매달린 일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녹음 소리였다.

한겨레

내 친구의 부친인 김 아무개 씨는 소작농의 자식으로서 온갖 고생은 다 겪었다. 김 아무개 씨의 부친은 마을에서 처음으로 단발령을 받아들여 상투 대신 성인 남자의 보편적인 헤어스타일 하이칼라를 선보일 정도로 신문명에 관심이 많았지만 타고난 가난은 어쩌지 못하고 김 아무개 씨에게 가난을 대물림했다.

김아무개 씨는 정규교육은 거의 못 받고 온갖 농사일에 시달렸는데 마을의 대소사에도 일찍이 부친 대신 동원되었다. 그가 가장 힘겨워한 일은 상여 매기였다. 어렸던 그는 어른들과 키가 맞지 않아서 어떨 땐 상여를 지탱하는 끈이 허공으로 다녔고, 또 어떨 땐 상여의 무게가 그의 얄팍한 어깨로 집중되어 몸이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신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여를 끈으로 매고 온몸으로 버텨야 하는 상여꾼을 비웃기라도하듯 상여 소리꾼은 맨몸으로 설렁설렁 걷기만 할 뿐 그 어떤 힘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상여 소리라는 것이 두고두고 쓰지, 변하거나 망자에 따라서 다르게 할 필 요가 없으니 한 번만 익혀서 소리꾼이 된다면 평생 편하게 상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흥이 나면 상여에 올라타고 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뿐더러, 어느 순간 상여를 멈추게 하고 상주들로부터 절을 받거나 망자의 노잣돈이라는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것 역시 소리꾼의 몫이었다. 이를 본 김 아무개 씨는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상여 소리를 배우려고 했지만 그 동네의 소리꾼은 그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르쳐 달라는 소리는 가르쳐주지 않고 버럭 화만 내면서 김 아무개 씨를 쫓아낼 뿐이었다.

김 아무개 씨는 잠시 낙심했지만 다른 동네에도 소리꾼이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인근의 여러 마을을 헤맨 끝에 그는 마침내 소리를 가르쳐주겠다는 스승을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궁색한 살림에서 훔친 콩 두어 되로 수업료를 지불해가며 그는 상여 소리를 배울 수 있었다.

본래 목청이 좋고 상여 소리에 대한 동기 부여가 남달랐던 김 아무개씨는곧 상여꾼과상주들을 애달프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상여 소리를 갖추게 되었다. 김 아무개 씨가 특별히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수십년간 상여 소리꾼 노릇을 한 할배가 바람을 맞아서 유명을 달리했고 김 아무개 씨는 냉큼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근에서 최연소 상여 소리꾼에 취임한 그는 그로부터 근 50년간 무수한 망자를 구성진 목소리로 달래 저승길로 데려다 주었다.

그 무수한 망자 중에는 나의 조부모와 아버지도 포함되었다. 그의 상여 소리는 마치 망자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읊는 신세 한탄과도 같았다. 그는 나의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김 아무개 씨는 무수한 망자를 음택으로 인도했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사람도 있는 법인데 마을에서는 점점 아이 우는 소리가 들 리지 않게 되었고, 그가 마침내 유명을 달리했을 때 그의 상여를 든 이들은 자기 몸조차 가누기 힘겨워 보이는 열댓 명의 노인들이었다. 문상을 온 김 아무개 씨의 아들 친구들이 대신 상여꾼이 되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장지는 김 아무개 씨의 집에서 멀지 않은 나지막한 산 아래였다. 불행하게도 김 아무개 씨가 반백년 동안 상여 소리꾼 노릇을 할 때 그 자리를 탐내는 젊은이가 전혀 없었고,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에 타동네에서 소리꾼을 초빙할 여유가 없었다.

김 아무개 씨가 망자들과 함께 거닌 마을 골목골목을 거쳐서 마침 내 장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승길을 위로한 것은 상여 귀퉁이에 매달린 일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녹음 소리였다.

* 이 글은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바이북스, 2014)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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