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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5일 09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04일 14시 12분 KST

원어민 교사 '세바스찬'은 누구인가

언어학자 노먼 루이스는 거짓말쟁이를 모두 열 가지로 분류했다.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 완벽한 거짓말쟁이, 구제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 상습적인 거짓말쟁이, 타고난 거짓말쟁이, 고질적인 거짓말쟁이, 병적인 거짓말쟁이, 비양심적인 거짓말쟁이, 언변 좋은 거짓말쟁이, 흉악한 거짓말쟁이가 그것들인데 스코틀랜드에서 온 원어민 교사 세바스찬은 저 분류에서 최소한 세 가지의 범주에 포함되고 최소한 '완벽한 거짓말쟁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KBS2

언어학자 노먼 루이스는 거짓말쟁이를 모두 열 가지로 분류했다.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 완벽한 거짓말쟁이, 구제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 상습적인 거짓말쟁이, 타고난 거짓말쟁이, 고질적인 거짓말쟁이, 병적인 거짓말쟁이, 비양심적인 거짓말쟁이, 언변 좋은 거짓말쟁이, 흉악한 거짓말쟁이가 그것들인데 스코틀랜드에서 온 원어민 교사 세바스찬은 저 분류에서 최소한 세 가지의 범주에 포함되고 최소한 '완벽한 거짓말쟁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창밖에 보이는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가 자신을 주목(watching)했었다고 밝혔다. 깜짝 놀란 내가 잉글랜드의 축구팀 스카우터가 널 보러 스코틀랜드까지 왔다는 말이냐고 물었는데 살짝 뒤로 물러서서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나는 축구를 좋아하는 동료에게 지체 없이 알렸고 그 사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 때 선수로 스카우트하려 했던 세바스찬을 전격적으로 콜라와 빵이 각각 22개가 걸린 아이들과의 A매치에 투입했다.

그러나 그는 게임이 마친 후 지갑도 영혼도 탈탈 털렸다. 초점 없는 눈초리로 '개다리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기는 공식으로 투입되었던 세바스찬은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스코틀랜드산 개다리로 판명이 되었고 그 와중에 콜라와 빵은 알뜰히 먹고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축구공을 만진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고 순진한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한참이 지난 후 그 당시 테니스광이었던 나는 명색이 윔블던의 나라 영국에서 온 청년인 그에게 테니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고 목을 가다듬더니 '14살까지 테니스 선수였노라'고 발표를 하였다. 너무나 흥분을 해서 사려 깊은 짐작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전화를 들어 내가 다니는 테니스 코트 사장의 아들을 찾았다. 그놈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데 테니스 선수였다. 4학년까지는 내가 그 아이를 조롱하면서 게임을 하였는데 5학년을 기점으로 그는 처참하게 나를 무너뜨렸다. 6학년이 되자 이제는 나를 하수 취급하면서 게임 중에 이런저런 작전지시까지 내렸고 나의 실수에는 엄한 질책을 했다. 고난과 굴욕의 세월을 청산하고자 그 아이에게 빅매치를 제안했다. 그 아이와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통아저씨'와 꼭 닮았는데 덩치는 1.2배 정도 큰 장학사 아저씨와 한편을 먹고, 나와 세바스찬이 상대편으로 하는 게임이 성사되었다.

그 두 사람의 조합은 평소에는 내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강적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테니스 종주국에서 무려 14살까지 선수생활을 한 세바스찬이 있지 않은가? 주말이 오기를 학수고대했고 당일 나는 우리 팀의 주축선수가 식사를 거르고 장비가 부실해서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그를 데리고 뼈다귀 해장국집에 가서 밥을 먹였고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제공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라켓에 염소 창자로 만든 최고급 줄을 장착해서 건네주었다.

잠시 몸을 풀고 역사적인 게임에 돌입했는데 경기 초반 3분간은 우리 팀이 압도적으로 우세를 보였다. 초딩 6학년 선수 놈은 자신은 알파벳조차 쓸 줄 모르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외국인 선생님에게 누죽이 들었고, 장학사 아저씨는 전날 회식이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더구나 본토에서 선수생활을 한 동료를 등에 업은 나는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테니스는 멘탈 게임이다. 세바스찬이 볼에 손을 댈 기회도 거의 없이 나는 맹활약했고 상대편은 자멸해갔다. 처음 3분간은 말이다. 그런데 세바스찬의 플레이가 본격적으로 나오자 나머지 셋은 당혹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선수생활을 했는지 자신의 서버를 상대편 코트에 보내지를 못했다. 더구나 야구도 아닌데 헛스윙을 했고 볼은 자기 머리에 톡 떨어지는 추태마저 보였다. 그런데 실실 웃는 표정이다. 그 표정은 전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원래는 실력이 좋은데 자신들을 농락하기 위해서 일부러 느슨하게 장난스럽게 게임에 임한다는 생각을 초딩 6학년 현직 테니스 선수와 통아저씨를 닮은 장학사 아저씨는 해버렸고, 금방 분노로 이어졌다. 그 분노는 자연스럽게 테니스 플레이에 대한 '각성'을 하게 했다. 그 이후의 경기 양상은 차마 글로도 표현하기 싫다.

나는 상대편 선수들의 눈에서 나오는 불꽃으로 담뱃불을 붙이라고 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세바스찬의 눈망울은 여자를 유혹하기에 적합하게끔 천진난만한 장난기만 가득했다. 다시는 세바스찬의 말은 믿지 않기로 했다. 그는 거짓말쟁이였다.

그로부터 두어 달 후 쌀쌀한 늦가을에 우리 학교가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단체 줄넘기를 연습하느라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고 대신 나는 세바스찬을 교육시켜 영어문제를 내는 역할을 원만하게 수행하도록 해야 했다. 나의 훈육은 엄격했다. 영어문제야 원어민이니까 잘 수행하겠지만 나는 one more thing을 원했다. 처음에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개인기로 사용하기로 했으나 그의 최대의 장점인 이름을 활용하여 당시 유행하던 개그맨 세바스찬의 유행어를 익히도록 했다.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가? 실명이 세바스찬인 스코틀랜드 영어 교사가 개그맨 세바스찬의 흉내를 내다니 말이다.

그날부터 싸움 잘하고 호전적 이기로 유명한 켈트족의 후예인 세바스찬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졸지에 개그맨 세바스찬의 유행어를 흉내 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하루에 백번 이상 "나가 있어! 불결해. 천한 것들. 불태워 버려. 어디다 눈을 부라려"로 대표되는 개그맨 세바스찬의 말을 암송해야만 했고, 수시로 체크 당했으며 나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무한정 나머지 공부가 뒤따랐다.

그가 혹독했던 나의 훈육에 순순히 복종한 것은 오직 방송출연의 효과로 제2의 '로버트 할리'가 될 수 있다는 나의 꾐 때문이었다. 방송 출연 후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있을지 모르니 미리 구미에 맞는 직장을 생각해 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덩치는 작지만 성격이 급하고, 무시무시한 2년 이상의 군사 문화를 겪은 나는 스코틀랜드 산골짜기에서 체크무늬의 치마를 입고 백파이프만 불다가 온 녀석쯤은 간단히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를 과감하게 통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고 불쌍한 세바스찬은 나의 효과적인 당근과 채찍에 묵묵히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 당시 나의 무시무시한 압제에 신음하던 그는 우리학교에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을 때 보내온 편지에서 다른 영어 선생들을 하나하나 이름을 거명하며 베풀어준 친절에 감사함을 표시하면서도 오로지 나의 이름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나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어쨌든 그는 제2의 로버트 할리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으로 나의 독재를 참아가면서 개그맨 세바스찬이 되어 갔다. 그리고 고향의 가족과 친지에게 부지런히 전화를 걸어서 방송출연을 알렸다. 그리고 촬영당일에는 방송국 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방송국 로고가 꼭 나오게 찍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쌍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바스찬은 개그맨 세바스찬을 흉내도 내기 전에 김보민 아나운서의 옆자리를 물러나야했다. 첫인사와 첫 질문에 대한 반응이 썰렁하여 방송 관계자는 그에게 더 이상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부랴부랴 그를 내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마침 세바스찬을 동료로 보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는 내가 묻지도 않은 진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간 몸담았던 학원을 떠나 '러시아 스포츠 방송 채널'의 아나운서로 일하기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그의 수완과 능력에 감탄을 했다.

그런데 퀴즈 프로그램 방송출연과 관련해서는 결과가 더욱 참혹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원어민 교사로서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인데 아예 통편집을 당했고 그는 방송에서 1초도 등장하지 못했다.

세바스찬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송이 방영될 때는 그가 말한 대로라면 러시아에 있어야 했고 그를 내가 만날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와의 인연은 그대로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가끔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던 어느 날 매서운 겨울 오후에 나는 시립도서관앞에서 딸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는데 저 멀리서 웬 외국인이 걸어온다. 그 외국인의 얼굴보다 까만 진과 남루한 코트가 눈에 금방 띄었다. 그 옷을 본 순간 옷의 주인의 얼굴까지 확인할 필요조차 없이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운전석의 매트 한 구석에는 며칠 전에 떨어뜨린 백원짜리 동전을 주워야 했다. 한참 후에 딸아이가 차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때까지 나는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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