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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3일 13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3일 14시 12분 KST

눈부시게, 눈물겹게 아름다운

사진가 원덕희의 포토에세이<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는 한국의 사진계에서 매우 특별하면서도 소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사진은 과시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어설픈 감동도 줄 생각도 없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농촌의 풍경은 우리네 모두의 고향의 모습이고, 사진 속의 어르신들은 우리들 모두의 부모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운 것은' 모두 '원덕희 작가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작가가 아닌 농부의 시각으로 담은 그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진으로 나의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사진가 원덕희의 포토에세이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는 한국의 사진계에서 매우 특별하면서도 소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진가 원덕희는 이미 사진으로서 일가를 이뤄냈지만 그의 사진은 '예술'이라는 장벽으로 일반인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는 일반인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거창한 기교도, 아무나 찍을 수 없는 머나먼 타국의 절경도, 예술로 치장한 지고지순한 피사체도 아닌 그저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서민과 낮은 세상에 사는 우리네 이웃을 담기 위한 시도는 여러 작가에 의해서 다양하게 시도되었고 피사체와 '거의 함께 살다시피'한 작가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원덕희 작가처럼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농촌에 직접 살면서 농사를 지어면서 농촌의 일상을 담은 작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의 사진들은 빈 도화지와 같아서 누구나 자신의 어버이에 대한 추억으로 여백을 메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사진은 과시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어설픈 감동도 줄 생각도 없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농촌의 풍경은 우리네 모두의 고향의 모습이고, 사진 속의 어르신들은 우리들 모두의 부모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운 것은' 모두 '원덕희 작가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작가가 아닌 농부의 시각으로 담은 그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진으로 나의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1

어느 해 봄 어머니와 나는 소거름 퇴비를 밭에다 내다 뿌렸다. 시골에서는 버리는 것이 드물다. 도회지에서는 돈을 주고 처리해야만 하는 배설물이지만 농촌에서는 훌륭한 농사 도구가 된다. 어머니와 나는 손수레에 싣고 가면서 길바닥에 간혹 떨어지는 소거름 부서러기들을 안타까워하면서 밭으로 나갔다. 마치 여럿의 자식에게 음식을 골고루 나눠주는 어미처럼 어머니와 나는 소거름을 밭의 이곳저곳에 뿌렸다. 숨이 차서 잠시 거름을 뿌리던 삽을 놓고 한숨을 돌리는데 어머니께서 맨손으로 소거름을 뿌리신다. 순간 어머니의 그 무모함과 당신의 몸을 사리지 않음에 화가 치밀었다. 삽을 던지고 어머니께 쫓아가서 마구 화를 냈다. 더러운 거름을 맨손으로 만지시던 어머니께서는 허망한 표정으로 고스란히 나의 분노를 받아들이셨다. 오늘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를 읽고서야 어머니께서 위생관념이 부족하셨던 것이 아니었고 '어머니는 대지와 가장 친근한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2

병환으로 거동도 거의 못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온 식구들을 모두 밭으로 내몰고서야 다시 자리에 몸져 누우셨다. 매정하신 분이라고 속으로 원망했다. 아버지께서 결국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께서는 혼자서 농사일을 책임지셔야 했다. 학생과 직장인 또는 출가외인이었던 자식들은 그저 도와주는 처지였을 뿐이다. 자식들은 집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아버지 산소를 명당이라고 좋아했지만 들에서 일하시다가 잠시 허리만 펴도 눈에 뛰는 남편의 산소가 그리도 안타깝고 속상하셨다고 한다.

3

어린 시절 어쩌다 강아지를 들이기라도 하면 가장 극렬히 반대한 분은 어머니셨다. 그러나 정작 강아지를 챙기고, 똥을 치우고 건사하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몫이셨다.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시면 찬물을 들이키기도 전에 '말 못하는 짐승들이 얼마나 배가 고플까'시며 소여물과 개 밥을 챙기고 나서야 당신의 허기를 채우셨다. 어머니께서 모내기철 이른 새벽에 들에서 쓰러지셨을 때 어머니 주위를 맴돌면서 맹렬히 짖어서 동네 사람을 불러 모았고 마침내 응급실로 향하게 한 것은 어머니와 일상을 함께 한 잡종견이었다.

4

고등학생 시절 나는 십리밖에 있는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했다. 야간자습에 참석하기 위해서 저녁을 먹고 또 다시 학교로 향했다. 저녁간식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라면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파를 숭숭 썰어서 큰 냄비에 가득 삶아주셨다. 그런데 철없는 자식은 어머니께 라면을 권해본 적이 없이 빈 그릇만 남긴 채 학교로 내달았다.

5

여름날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께서는 모기가 자꾸 문다며 힘들어하셨다. 자식들은 낮에 웬 모기냐고 타박을 하였다. 어머니께서 자신의 온 몸에 직접 에프킬라를 뿌려대셨을 때 자식들은 화들짝 놀랐고 비로소 어머니의 고통을 실감하였다.

6

농사를 지은 고추며 마늘을 수십리 밖의 외지로 팔러 나가시면 대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돌아오시자마자 하시는 일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일이었는데 곧이어 늦은 점심식사를 하셨다. 이른 새벽에 나가 늦은 오후가 되도록 시장에서 고추와 마늘을 시장 모퉁이에 앉아 파시다가 미처 다 팔지 못한 것은 도매상에 넘기셨는데 어머니께서는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그 흔한 사이다 한 병도 사드시지 않으셨다. 간혹 반찬거리로 자반고등어를 사오셨을 뿐이다.

7

어린 시절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온 면민들의 잔치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일 년에 서너 번 있을 뿐인 외출중의 하나가 나의 운동회 날이었다. 아랫목에 삭혀서 달달한 감과 고구마를 삶아서 운동회 구경을 오셨다. 그러나 운동신경이 둔한 아들이 달리기에서 꼴찌하는 모습만을 보셨고 속상해 하셨다.

8

우리 집 감나무는 모두 고목이었다. 여름날 온 식구가 총 동원되어서 농약 살포 작업에 동원되었는데 하늘을 향해서 농약을 뿌리면 그중 절반은 다시 우리의 얼굴로 떨어지는 듯했다. 가을이 되어서 거둬드리는 일도 만만찮았다. 아버지께서는 고목 높이 위태롭게 오르셨고 우리는 긴 장대로 무수히 달린 감을 하나하나 따야했다. 곶감을 만들 어서 처마 밑에 오밀 조밀 매달아 놓으면 간혹 새벽녘에 부모님 몰래 한두 개씩 빼내서 먹곤 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께서 곶감을 여유롭게 간식으로 드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9

단 한 번도 어머니께서 내리는 눈을 보고 우둑커니 하릴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눈이 내려도 농촌의 일상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일거리가 늘어날 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회지로 전학을 가는 날 아궁이에서 무심히 불을 지피면서 옆에 쪼그리고 있는 내게 묻는 듯 혼자말인 듯 말씀하셨다. "균호야! 너는 나를 못 보더라도 내가 보고 싶지 않지?" 철없는 자식은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속으로 타박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집을 떠나있던 긴 시간 동안 아마도 어머니는 일하시다가, 너무 많이 내리는 눈을 어찌하지 못하고 처마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자식 생각을 하시며 우둑커니 눈을 바라본 순간이 있었을 것이리라.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에는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한국의 다큐사진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안도의 탄식을 자아낼 정도로 지난 26년간 오직 다큐 사진에 몰두해온 이규상대표의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산업화로 잃어버린 우리의 소중한 풍경을 담는 작업에 몰두해온 국내에 유일하다시피 한 사진전문출판사의 집념이 평범한 농촌풍경을 담은 이 사진집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