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4년 10월 01일 05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1일 14시 12분 KST

찹쌀만 먹여서 키운 닭이 있다면

주말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가급적 찾아뵙는다. 그때마다 뭔가 간식거리를 사 가는데 매번 뭘 사갈까 잠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군 생활 27개월을 통틀어 훈련소 퇴소식 때 단 한 번 면회를 오셨다.

한겨레

주말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가급적 찾아뵙는다. 그때마다 뭔가 간식거리를 사 가는데 매번 뭘 사갈까 잠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종부로서 떡을 만들어왔는데 지겹지도 않으신지 떡을 참 좋아하신다.

떡을 사자면 동네 빵가게나 과일을 사는 것 보단 좀 더 수고를 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수고랄 것도 없고 조금 더 운전하고 조금 더 번잡한 시장엘 들르면 된다. 그래도 게을러서 떡 보단 과일이나 빵을 자주 들고 간다. 내가 입대를 할 나이가 되자 어머니께서는 네 친구들은 다 가는데 왜 너는 아직 군대를 안가느냐?고 하셨고 심지어는 사람이 편하게만 살 수는 없고 군대와 같은 어려움도 겪어 봐야 한다고 강조를 하면서 군대 가기를 부추기셨다. 다행히 나도 군대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자원입대지원을 했고 198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에 입대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군 생활 27개월을 통틀어 훈련소 퇴소식때 단 한 번 면회를 오셨다. 군 입대를 하기 전에 사귄 여자 친구도 없었으니 심지어는 동료들이 '넌 주워온 자식이냐?'는 농담까지 들었는데 기실 나도 섭섭한 마음이 많았다. 게다가 군대생활까지 꼬여서 입대한 지 무려 14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군대 생활의 반 이상을 하고서야 고향에 다시 발길을 들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집에 도착하니, 역시 어머니는 야단스러운 환영은 없었다. 인사를 드리고 한숨을 돌리는데 어머니께서 나지막하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균호야! 내가 널 군대에 보내고 지금까지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시기에 과연 어머니께서 그 험악한 군대생활을 하는 아들을 걱정은 하셨구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말을 잠시 끊은 어머니의 말씀은 나의 예상을 뒤엎었다. "네가 군대생활을 못 버티고 집으로 쫓겨올까봐 엄청 걱정했다"

20대 초반의 어리석은 식견으로는 대체 이분이 나에게 왜 이러실까? 왜 다른 집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이리도 자식을 험하게(?) 키우시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마저도 가졌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데 어머니께서 큰 냄비를 가져오셨고 뚜껑을 여셨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좀 먹어보란다. 냄비 안에는 닭백숙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닭은 이미 어렸을 적부터 많이 자주 먹으면서 자란 터라 큰 감흥 없이 냄비를 비웠다.

보름간의 휴가를 마치고 복귀준비를 하는데 여동생이 넌지시 한마디 한다. "오빠, 엄마가 해준 닭백숙 있잖아. 그거 엄마가 오빠 휴가 오면 해주려고 키워왔던 닭인데 딴 거는 안 먹이고 '찹쌀'로 키웠어" 찹쌀이라면 아무리 쌀이 흔한 시골이지만 떡을 해먹을 때만 꺼내는 귀한 몸이다. 장독에 넣어두고 제사나 중요한 집안의 행사 때만 조금씩 꺼내어 먹던 찹쌀로 닭을 키우다니! 그러니까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면서 귀한 찹쌀로만 모이로 주면서 닭을 키우고 계셨던 것이다.그제서야 나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시는지와 군대생활을 하는 나를 얼마나 애달프게 생각하셨는지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