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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1일 09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11일 14시 12분 KST

아내와의 예송논쟁

3차 예송 논쟁은 아내의 건망증 때문에 생겼다. 과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왕'을 상징하는 대추를 쇼핑리스트에서 누락시켰다는 사실을 차례 상을 차릴 때서야 인지한 아내는 우리 집 베란다 앞에 있는 대추나무를 가리켰다. 참고로 1층인 우리 집에 이사를 온 지 12년이 넘었는데 공공재에 대한 양심이 철두철미한 나는 단 한 번도 우리 집 베란다를 침투할 기세로 뻗어오는 대추를 단 한 번도 사사로이 취한 적이 없다. 그런데 종부인 아내는 나보고 차례에 써야 하니 그 대추를 따란다. 나는 12년간 지켜온 공공재에 대한 양심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조상님들께 '훔친' 대추를 바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

아내는 종손인 나에게 시집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실제로 본 일이 없다. 이런 자와 예송논쟁을 벌인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아내는 어쨌든 종부이고 시어른이 부재한 상태에서 오로지 혼자서 차례와 제사준비를 하니 발언권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간혹 아내는 우리 집안의 예법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추석 때 송편과 함께 항상 먹는 걸쭉한 국을 '우리 집사람들만 먹는 이상한 국'이라고 지칭함으써 졸지에 우리 집사람들을 해괴한 음식을 먹는 '기인'으로 몰아붙였다. 송편을 먹다보면 좀 느끼해지지 않는가? 그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서 얼큰한 국을 먹는데 그게 왜 '이상'하단 말인가? 그 국의 레시피야말로 엄연히 우리집안 사람들의 슬기로운 지혜의 결정체인데 말이다. 어쨌든 아내는 추석 때마다 그 국을 잔뜩 끓여서 대접을 하고 있으니 1차 예송논쟁은 나의 승리다.

2차 예송논쟁은 추석 장을 볼 때 발생했다. 떡집으로 송편을 사러 가면서 아내는 뜬금없이 조상님 여덟분 모두에게 각자 송편 그릇을 올린다는 것이 '웃기다는'것이다. 나는 수백 년간 내려온 유구한 우리 집의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아내의 만행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다가 '그럼 다른 집은 대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아내말인즉슨 다른 집은 '큰 대접 하나에 한꺼번에 서빙'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니 조상님들이 단체로 탕수육을 시켜 먹는 것도 아닌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호통을 쳤다. 나의 분노에 아내는 눈도 깜짝거리지 않고 ' 혹시 여덟분의 조상님들이 서로 많이 드시겠다고 싸울까봐' 각각 따로 송편을 대접하느냐는 천인공노할 멘트를 나에게 선사했다.

우리 조상님들을 졸지에 보모가 나눠주는 간식을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유치원생으로 비유하는 아내의 행태에 이성을 잃은 나는 우리 조상님들은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라고 항변을 하는 한편 송편 여덟그릇은 우리집안 예법의 하이라이트니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준비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2차 예송 논쟁은 승리라기보다는 진압에 가까웠다.

3차 예송 논쟁은 아내의 건망증 때문에 생겼다. 과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왕'을 상징하는 대추를 쇼핑리스트에서 누락시켰다는 사실을 차례 상을 차릴 때서야 인지한 아내는 우리 집 베란다 앞에 있는 대추나무를 가리켰다. 참고로 1층인 우리 집에 이사를 온 지 12년이 넘었는데 공공재에 대한 양심이 철두철미한 나는 단 한 번도 우리 집 베란다를 침투할 기세로 뻗어오는 대추를 단 한 번도 사사로이 취한 적이 없다. 그런데 종부인 아내는 나보고 차례에 써야 하니 그 대추를 따란다. 나는 12년간 지켜온 공공재에 대한 양심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조상님들께 '훔친' 대추를 바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양심도 양심이려니와 몇 해 전에 설치한 보안철망의 문을 열 줄을 모른다는 것도 한 이유였는데 아내는 신 내림을 한 여자도 아니면서 '당신, 이 문을 여는 방법을 여태 모르는 거지?'라며 남의 마음을 함부로 훔친 것과 동시에 그 보안철망 문을 열어주었다. 공공재를 사랑하는 나의 공정한 양심의 이유 때문에 망설이는 나를 졸지에 '철망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서 대추를 따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그리고 ' 말라 비틀어져서 먹지도 못하는 대추보다 싱싱한 저 대추가 더 낫지 않냐'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본관은 다르지만 어쨌든 우린 실학파의 거두 박지원 선생과 종씨이지 않는가? 나는 전격적으로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북새통일 것이 분명한 마트에 대추를 사겠다고 갈 생각을 하니 조금 번거롭긴 했다. 겨우 아파트 1층이지만 베란다 난간에 올라가 대추를 따는 일은 만만찮았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아내는 좀 더 실하고, 더 큰 '대추'를 요구했다. 공공재를 도둑질하면서 '품질'까지 가리는 아내의 꼼꼼함과 대범함에 기함을 했지만 어쩌겠는가? 시키는 대로 좀 더 크고 굵은 대추를 7개 수확했다. 3차 예송논쟁은 근소한 아내의 판정승이었다.

4차 예송논쟁은 차례를 모시는 중간에 발생한 우발적 사고였다. 말라 비틀어진 대추 대신에 2시간 전에 수확한 따끈따끈한 신상 대추를 맛보느라 정신없는 조상님께 '이제 그 풋과실은 그만 드시고 앙팡진 송편을 드세요'라며 여덟 그릇의 송편그릇에 젓가락을 얹는 순간 아내가 갑자기 '잠깐'이라며 감히 차례의식을 중단시켰다. '부인! 이 무슨 해괴한 행패인게요?'라고 꾸지람을 내릴 틈도 없이 아내는 큰 대접에 냉수를 가득 담아온다. 조상님들 보기에 창피하여 그게 웬 물그릇이냐고 나지막이 물으니 종부인 아내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차례 상을 가만히 보니 뭔가 마실 것이 없어서 조상님들이 떡을 드시다가 체할 수도 있으니 준비했다'고 한다.

3살짜리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미 돌아가셔서 귀신이 된 분들이 떡을 드시고 체하는 게 말이 되느냐? 고 호통을 칠 정신적 여유마저 상실한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다가 차례를 계속 지냈고 조상님들은 아내가 준비한 물 한 그릇으로 송편 때문에 막힌 목을 편하게 하셨다.

마지막 예송논쟁은 누구의 승리인지는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좋은 건의를 받아들여서 반영한 권력자의 결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