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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2일 06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3일 14시 12분 KST

4·13 총선 이후 촉각은 청와대로 향할 것이다

연합뉴스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신달자 시 '봄의 금기사항') 4월 13일, 봄의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은밀한 사랑의 고백을 종이 위에 쏟아낸다. 누구를 찍으면 보다 나은 세상에 가까워질까, 가슴마다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선거는 4년마다 돌아오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믿는 사람, 기댈 정당과 함께 밝은 내일을 염원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봄 같지 않다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많은 국민이 투표할 기분이 아니라고들 한다. 찍고 싶은 정당도 찍을 만한 후보도 없다는 것이다. 여태껏 습관처럼 표를 줬던 정당이 후보자 공천을 둘러싸고 벌인 추잡한 행태에 넌더리가 났다고 한다. 선거에 나선 정당과 후보자들은 속이 탈 노릇이다. 그래서 그런지 막판 안간힘을 쓰느라 속 뻔히 보이는 행태를 거듭한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미워도 다시 한 번!' 전래의 구호에 더해 각종 날림 공약과 읍소의 가장무도회가 난무한다. 한껏 공들여 뽑고 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요 선거다. 몇 년에 단 하루의 주권자 행세일지라도 엄연한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선거는 주인이 대신 일할 머슴을 뽑는 공적 행위다. 최선의 머슴을 골라야 하나, 최선(最善)이 없으면 차선(次善), 차선도 없으면 차악(次惡)을 골라야 한다. 개중 최악(最惡)만 피하면 족하다. 모든 후보가 최악이면 차악의 정당이라도 골라야 한다. 그도 저도 아니면 설령 무효표를 던지더라도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투표는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1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르는 선거라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1당이 될 것은 뻔하다. 지역구도와 정치판세로 보아서도 그렇다. 문제는 여당이 얻을 승리의 폭과 질이다. 총선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국민의 관심은 내년 말에 치를 대통령선거로 초점이 이동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지원 없이는 여당 후보가 되기 어렵다. 그동안 국정을 견고하게 거머쥐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악력(握力)이 근래 들어 약간 느슨해진 느낌이다. 새누리당의 급선무는 청와대가 주도한 '배신자 척결' '진실한 사람' 프로젝트가 불러일으킨 여진을 수습하는 일이다. '컷오프'로 억지 무소속이 된 의원들의 당선과 귀환 여부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당권과 대선 후보를 두고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 청와대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야당의 앞날은 더욱 험난하다. '새 정치'를 명분으로 제1야당을 뛰쳐나간 호남의 구정치 세력이 건재를 과시한다. 부침 속에서도 최소한 10%의 국민 지지를 받는 제3당 대표가 갖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선 판도에 따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합당할 것이라는 예측도 전혀 허무맹랑한 가설만은 아니다. 탈당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호남 정치의 심장인 광주를 찾아 꿇어앉고 사죄문을 발표했다. 결연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지원을 얻지 못하면 청와대를 향해 내디딘 발걸음도 거두어야만 한다. 당의 내부 사정이야 어쨌든 그는 선거 막바지에야 자진 출두한 죄인이다. 용서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고도 한다. 그의 석고대죄 행보가 돌아선 호남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이 엇갈린다.

총선이 끝나도 남은 정치 여정이 창창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관점에서든 민주 헌정이 퇴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기본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다수 국민의 눈에 각인된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이끄는 민주적 지도자가 아니다. 오히려 독선과 불통을 소신으로 자처하며 만인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제왕'에 가깝다. '정부와 의회의 분리'라는 헌법 원칙과 민주주의의 상식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당과 국회에 대고 힐난하고 지시하는 대신 여와 야를 함께 아울러 국정의 파트너로 예우하는 대통령을 국민은 보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기존의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남은 임기 동안 매우 힘들 것이다. 국민에게도 대통령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퇴임 후에 국정을 주도한 선례가 없다. 아무리 지지층이 견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를 떠나는 순간, 반세기 전 아버지 대통령이 남겨준 후광마저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아직도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남아있다. 남은 임기 동안이나마 새로 구성될 의회와 협동하여 국정을 이끄는 민주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