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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9일 06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9일 14시 12분 KST

'양심적 반대자'의 대체복무 허용 검토를

한겨레

국제사회에서 거듭 듣는 이야기다. 최단 시일에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를 함께 이루어 선진국 문턱에 선 기적의 나라다. 유능한 지도자와 근면하고 강인한 국민성 덕분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1987년 헌법 아래 비로소 꽃 피었다. 군사 독재를 청산한 이 헌법의 진수는 헌법재판소의 탄생이다. 이전의 헌법은 기껏해야 고매한 이상을 미사여구로 치장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박제된 문서를 국민의 삶 속에 생동하는 일상 규범으로 정착시킨 헌재의 공로는 혁혁하다. 1990년대에 들어 체제 전환을 이룬 동구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헌재가 탄생하면서 한 걸음 먼저 내디딘 대한민국 헌재의 비중도 높아졌다. 어느 틈엔가 헌재의 중요한 결정은 국제 뉴스가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법부는 국제적 감각이 매우 취약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헌법관에 반한다는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이 있었다. 우리 헌법은 국제주의를 표방한다. '이 헌법에 따라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제6조 제1항) 우리가 비준한 수많은 국제 인권 조약은 당연히 우리의 법이다.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의 대표적인 예가 세계 인권 선언을 비롯한 각종 국제 인권 규범이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는 국제인권법에 눈과 귀를 닫는다.

또다시 헌재에 국제적 이목이 집중돼 있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 '대체 복무제' 문제다. 절대다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집총 거부를 인정하여 병역을 면제하거나 대체 복무를 허용한다. 미국은 2차 대전 중 '선택적 복무'(Selective Service)법을 제정했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살생을 거부하는 사람도 신체적 장애 때문에 전선에서 싸울 수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강제 집총에서 면제되어야 한다.' 1946년 미국연방대법원 판결문 구절이다.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의 법정 투쟁이 법리의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던 전설적인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1971년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진지한 평화주의자'임을 인정받았다.

우리 헌법 아래서도 마찬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며 국방의 의무를 진다.'(헌법 39조 1항) 두 조문 사이의 조화를 찾으면 된다. 병역법은 '모든 대한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행하여야 한다.'(3조 1항)고 규정하고 '정당한 사유' 없는 입영 기피자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88조 1항) 이 조항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부분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매년 600여명의 청년이 감옥 신세를 진다. 전 세계 수형자의 93%를 한국 법원이 제조한다. 국제사회는 한국 인권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이 문제를 거론한다. 오래전부터 자유권규약위원회, 인권이사회와 같은 유엔 기구는 물론 각종 국제 인권 단체의 시정 권고가 누적되어 있다. 2007년 국방부는 대체 복무의 도입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했으나 슬그머니 백지화됐다. 16대, 17대, 18대 회기마다 국회에 병역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휴면 상태로 마감했다. 내년 초반에 문을 닫을 19대 국회에 계류된 2013년 개정안에는 현역 복무의 1.5배 또는 2배를 대체 복무 기간으로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방의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복무 기간이 늘더라도 총을 잡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의무를 대체해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 하급심 판사는 국제적 추세와 시대정신을 수용하여 무죄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양심적 병역 거부도, 대체 복무도 거부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가 안보, 병역 자원의 부족, 사회 통합의 저해, '양심' 남용의 우려 등등 구태의연한 논거를 댔다. 세 번째 도전이 벌어지고 있다. 2015년 7월 9일 공개 변론이 열렸다. 이번에는 결과가 다를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기대가 높다. 대한민국은 2016년 유엔인권이사회의 의장국이 되었다. 헌재의 한 재판관은 유럽평의회 산하 헌법 자문 기구인 '베니스위원회'의 집행위원에 위촉됐다. 경사에 상응하는 국내 인권 상황의 개선도 기대할 것이다. 대체 복무제의 도입, 한참이나 때가 늦었다. 그동안 국회와 헌재가 서로 미루어 온 셈이다. 선거의 부담이 없는 헌재가 선봉에 나서면 독립된 최고 법원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