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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2일 09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2일 14시 12분 KST

찰스 디킨스의 작품세계 | 빅토리아 영국의 전도사

charles dickens

찰스 디킨스의 작품세계: 빅토리아 영국의 전도사

20세기 독자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국 작가는 찰스 디킨스이다. 그의 필명은 21세기 들어서도 시들지 않고 있다. 생전 그는 20대에 이미 광범한 독자층을 확보했고 죽을 때까지 명성이 손상되지 않았다. 사후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상징하는 문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예술성과 상업성, 양자를 성공적으로 결합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19세기 이후 문학의 총아로 등장한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때쯤 해서 교육의 확대로 독서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저작권에 대한 법적보호가 이루어진 것도 성공의 배경이 되었다.

디킨스의 명성은 대영제국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편승했다. 디킨스는 런던의 전도사였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빅토리아 대영제국 수도 런던이 변방국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가 아메리카를 두 차례 여행한 숨은 이유 중의 하나도 미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무단 출간된 데 대한 항의와 단속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은 런던이 무대다. 「어려운 시절」(Hard Times) 한 작품을 제하고는 모두 수도 런던이 무대이다. 당시 런던의 골목과 건물, 그 어느 하나도 디킨스의 펜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다시피 했다. 디킨스로 인하여 런던은 명실 공히 세계의 수도가 되었고, 디킨스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영화의 자리에서 물러나갔다. 디킨스가 죽은 지 백여 년 후, 런던을 방문한 러시아 '페레스트로이카'의 전도사,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어린 시절, 어른들의 노변정담을 통해 '유리구슬 사탕' (glass candy)을 먹을 수 있는 동화 속의 도시를 찾은 감격을 토로했다.

찰스 디킨스는 1812년 2월 7일 잉글랜드 서해안의 군항 포츠머스에서 해군의 하급 문관으로 근무하던 존 디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향적이며 낭비벽이 심했고 어머니는 인자했으나 생활의 지혜가 모자라는 편이었다. 후일 그는 작품 속에 부모를 투영시켰다.1)

디킨스 가족은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잠시 런던으로 옮겼다가 다섯 살부터 열 살 사이에 Kent지방 Rochester 인근의 소읍 채텀(Chatham)에 거주했다 가족이 함께 살던 이 시기 5년이 자신의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후일 회고했다. 어머니에게서 글을 배워 아버지의 작은 서재에 몰입하여 세르반테스, 데포, 스몰렛, 필딩 등 고전을 탐독하여 평생의 자산으로 삼았다. 이 시절에 몇 차례 셰익스피어 공연을 관람했고 평생 열렬한 연극애호가로 살았다. 만년에 그는 스스로 아마추어 배우로도 활약했다. 첫 번째 소설, 「피크위크 유람기」는 순진무구한 인간성과 목가적 풍광이 지배하던 소년 시절의 기억을 재생하였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행복한 장면들은 유년시절 자신의 놀이무대와 같은 지리적 장소에서 벌어진다.

채텀에서 런던으로 되돌아 온 후에 디킨스가족은 극심한 재정문제로 고난의 날을 보냈다. 런던 북쪽 교외 캠던타운의 빈민촌으로 내몰렸고 열두살 소년 디킨스는 학교를 중단하고 잡일로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한 때는 구두약 공장에 일하면서 거친 또래들의 괴롭힘을 겪었다. 아버지 존은 한동안 마샬시 (Marshalsea) 채무자 감옥에 투옥되었다. 존은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소액의 유산으로 몇 달 만에 석방되었지만 평생 하층민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 소년 디킨스가 체험한 고립감은 평생토록 깊은 상처를 남긴 동시에 문학적 자신이 되었다고 후일 친구에게 고백했다. 많은 작품 속에 이 시기의 경험에 투영되어 있다. 가난의 피해자에 대한 연민, 감옥과 금전에 대한 환상, 신사 신분을 획득, 유지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 범죄의 소굴인 동시에 생의 활기로 가득 찬 도시 런던에 대한 찬미, 이 모든 것이 소년기 동안 생성되었다. 무력한 부모에 의지할 수 없는 열두 살 소년의 마음속에는 강한 자립의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스스로의 세계를 이룩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디킨스의 강한 집념과 때로는 야비할 정도로 이익에 민감하다는 평판도 이러한 소년시절의 체험에서 얻은 생활철학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냉혹한 세상을 경험하면 자라서 범죄자 아니면 반골이 되기 십상이다. 디킨스의 작가적 상상 속에는 양자가 함께 공존한다. 분노가 작가를 만든다. 작가 디킨스의 분노의 대상은 사회였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행한 아이지만 부모를 탓할 수 없는 분노가 사회제도에 과녁이 맞추어져 있다. 「음산한 집」'(Bleak House)에서는 법제도에 의해 유린당하는 개인, 「어려운 시절」(Hard Times)에서는 산업에 의해 체포된 인간,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에서는 신사 신분이라는 환상에 체포된 인간이 사회의 표상이다. 사회제도는 괴물이자 작가의 적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는 노동교화소(workhouse)가, 「니클라우스 니클비」에서는 도티보이 홀 (Dotheboy Hall)이, 「마틴 처즐위트」 (Martin Chuzzlewit)에서는 아메리카가, 「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에서는 미스터 머드스톤 (Mr. Murdstone)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제도의 상징이다.2)

열세 살에 다시 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수학한 후에 디킨스는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다. 사환의 일이 성에 차지 않은 그는 속기를 배워 1828년에는 프리랜스 법원출입기자가 된다. 이 기간 동안 법원 휴정기를 십분 활용하여 대영박물관 도서관(The British Museum Library)에서 엄청난 독서로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축적한다. 특히 런던과 영국 각지의 사정에 정통한 지식을 습득한다. 20세에 정식 저널리스트가 되어, 3개 신문사에 순차적으로 근무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는 런던에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의회보도자로서 명성을 높였다.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디킨스도 정규교육은 짧았지만 독자적인 노력을 통해 지식과 경험의 축적에 정진했다. 또한 그는 작가로서의 전 생애를 통해 강한 실험정신에 충만했다. 어떤 주제는 작품 속에 반복하여 제시되면서 깊이와 세련미가 더해지고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담아내었다. 「피크위크 클럽 유람기」(The Pickwick Papers, 1837)에서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테리」(The Mystery of Edwin Drood, 1870)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표적 소설가로서 흔들리지 않는 명성을 쌓았다.

1833년 12월, 디킨스는 월간지, Monthly Magazine에 런던의 풍물과 시민의 삶에 관한 스케치를 게재한다. '보즈'(Boz)라는 필명으로 기고하여 1836년 2월, 스물네 번째 생일에 단행본 「보즈의 스케치」 (Sketch by Boz, 1839)를 출간한다.3) 이 작품은 상업적 성공은 거두었지만 문학적 가치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어서 신문사 동업자의 딸 캐서린 호가스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 열 자녀를 두었고 결혼 22년 후에 영원한 별거에 들어간다.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1837-38)에서는 순진무구한 어린 소년의 경험을 통해 런던의 끔찍한 빈민가와 노동교화소(workhouse)의 상황을 고발하는 작업에 나선다. 이어서 「니콜라스 니클비」 (Nicholas Niclkeby, 1838-39) 에서는 버려진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올리버가 오로지 독지가 브라운로 씨의 배려로 신사 계급에 진입하는 반면 니콜라스는 적극적으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도모한다. 소년교화소, 빈민가, 사교육기관, 이 모두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 서민의 삶을 투영한다. 탈출하는 길은 단 하나, 신사 신분을 획득하는 것이다. 디킨스는 이 점에 특히 민감했다. 주인공에게 신사의 신분을 부여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그렸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소년 핍은 독지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횡재하여 각종 특권만 누릴 뿐 일체의 의무가 면제되는 '신사'가 되어 미인 아내를 맞이한다는 '거창한 꿈'(great expectations)을 꾼다.4) 이 허망한 꿈이 좌절되면서,비로소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실한 일상을 사는 조와 비디가 상징하는 하층민의 인간성에 눈뜬다.

「골동품 가게」 (Old Curiosity Shop, 1840-41)는 대중작가 디킨스의 입지를 더욱 높인다. 작품에서 어린 넬(Little Nell)의 감상적 죽음이 대중의 연민을 자극한다. 여주인공은 대도시 런던을 떠나 목가적인 안정과 평화를 갈구하나 실은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다. 런던은 온갖 악이 성행함에도 불구하고 역동적 에너지의 상징인 반면, 시골은 묘지와 황폐한 교회로 상징되는 폐허의 무덤이다. 디킨스는 철두철미한 도시의 작가였다.

작가 경력 초기에 디킨스는 작품의 핵심주제를 두고 고심했다. 대도시, 감옥, 금전, 범죄, 세속적 성공, 신사, 죽음. 이 주제는 평생을 두고 반복하여 작품에 나타난다. 단시일에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영구미제의 화두들이다.

「바나비 러지」 (Barnaby Rudge, 1841)는 역사소설이다. 1780년에 일어난 실제 사건, 반 가톨릭 폭동을 소재로 하여 사악한 가부장적 권위와 타락한 공적기관의 위선을 고발한다. 양자가 결합하여 사회악을 조장하고 무고한 개인을 유린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의 영향이 짙은 이 작품으로 비로소 그에 필적할만한 지위를 얻었다는 평가가 따랐다.

1842년 디킨스 부부는 미국 여행길에 나선다. 그 결과로 두 권의 작품이 탄생한다. 『아메리카 단상』(American Notes)(1842)이라는 풍물여행기다. 소설, 「마틴 처즐위트」 (Martin Chuzzlewit)(1843-44)는 각종 이기적 인간과 위선적 인간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도덕적 중심에 서려는 인간의 노력을 부각시켰다.

「돔비 상사」 (Domby and Son, 1846-48)의 주제는 자부심이다. 부를 바탕으로 한 권력과 지위가 주는 자부심이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돔비씨의 비인간적인 자만심은 가족의 불행으로 서서히 붕괴된다. 외아들이 죽고, 아내는 종업원과 눈이 맞아 도망가자 그의 상업왕국도 붕괴된다. 상업적 권력이 붕괴하는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산업권력이 들어선다. 이 소설을 계기로 디킨스는 완숙한 작가로 입지를 굳힌다.

단순한 희학적 언어의 유희 대신 심오한 풍자의 단계로 승화시켰고, 작품의 구성도 더욱 치밀해졌다.

여덟 번 째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 1849-50)은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의 초년 고행을 밑거름으로 삼아 성공된 성인의 삶을 누리는 모습은 디킨스 자신의 생애를 투영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일인칭 화자의 입으로 주인공의 내면적 교육과 성장 과정이 그려져 있다.

「어려운 시절」 (Hard Times, 1854)는 디킨스 작품 중에 지리적 무대가 런던이 아닌 유일한 소설이다. '코크타운'(Coketown)이라는 가상적 산업도시를 그리면서 도덕적 우화와 현실적 상황을 엮어서 분석한다. 공장과 학교는 편협한 통계에 의존하여 공리주의를 강론하는 영국 정치경제의 시험장이다. 이 소설에서 디킨스는 사회적 감옥의 대안적 공동체로 자유정신과 우애가 만개한 서커스단을 제시한다. 이 소설은 사회비평가로서의 디킨스의 명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널리 불리던 노동가요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딴 작품은 토마스 칼라일의 에세이집 「차티즘」 (Chartism, 1839)의 한 구절대로 '영국의 상황'을 그린 사회소설이었기에 작가는 작품을 칼라일에게 헌정했다. 작가경력이 쌓여갈수록 디킨스는 사회에서 박애의 정신이 인색해지는 모습을 직시하고 개탄한다. 초기에는 거의 무제한적인 찬양의 대상이었던 신사의 공적 미덕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고, 단지 날로 적대적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연민을 표현하는 사적 미덕 정도로 간주될 뿐이다.

이어서 출간한 「작은 도릿」 (Little Dorrit, 1855-57)은 서로 연관된 복합적인 감옥, 탈출구나 대안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고발한다. 최상층에서 최하층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감옥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그 누구도 감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최선의 구원은 에이미 도릿(Amy Dorrit)과 아서 클레넘(Arthur Clennam)사이의 애정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마샬시 채무자감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다.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1860-61)에서도 감옥은 중대한 역할을 한다. 화자인 주인공 핍을 포함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금전과 금전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에 의해 타락했다. 범죄와 가장 극적인 감옥은 타락의 형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신사로 신분상승을 도모하는 소년이라는 초기의 주제를 다시 천착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이러니와 사회적 성찰을 가미한다. 핍의 속물적인 부상은 죄수의 부정한 돈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구원은 정직, 근면의 미덕 속에 있을 뿐이라는 권선징악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우리들 친구」 (Our Mutual Friends, 1864-65)는 완결본으로는 디킨스의 최종 작품으로 전지적 제 3자의 시각으로 오염된 금전을 주제로 다루었다, 다시 한 번 빅토리아 영국 전체를 고발하고 다시 한 번 치유의 힘으로서의 사랑을 강조한다.

디킨스는 마지막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테리」 (the Mystery of Edwin Drood, 1870)를 집필하는 중에 죽었다. 이 작품은 살인의 이중적 성격을 분석하면서 사회보다는 개인 차원의 문제를 다루었다. 도덕적 파탄의 결과 인간의 존엄을 상실한 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도 품위의 가면을 쓸 수 있다는, 마치 도스토에프스키를 연상시키는 메시지가 읽히는 작품이다.

디킨스 문학의 정수는 단연 소설이었지만 그의 문필활동의 무대는 넓고도 다채로웠다. 수많은 신문, 잡지에 기고했고 두 권의 여행기, 수천 편의 편지, 크리스마스 이야기책, 어린이용 영국사를 저술했다. 더하여, 오랜 시일 동안 세 잡지의 편집장으로 왕성하게 일했다.

또한 디킨스는 평생토록 연극에 심취했고 한때는 전문배우의 꿈을 품기도 했다, 아마추어 극단에 희곡을 쓰고 무대감독 역할도 맡았다. 또한 만년에는 자신의 소설 구절을 대중 앞에 공개낭송하기도 했다.

또한 디킨스는 수많은 친인척을 보살폈고 자선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매우 강건했다. 장거리 도보, 승마, 여행, 사교모임 등으로 언제나 분주했고 게임, 마술, 최면술 등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야 하는 그는 누군가와 대등한 차원에서 친교관계를 맺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관여한 사교모임은 언제나 자신이 주도했고 참여자도 고만고만한 수준의 사람들이었다. 그의 지적세계는 실용적 지식과 해학이 주종을 이룰 뿐 결코 당대 일류 지식인 반열에 들 수가 없었다. 그가 상시 교류한 인사들 중에 당대의 일류는 윌키 콜린스 (Wilkie Collins)와 토마스 칼라일 정도였다. 한 예로 여권운동에 앞장섰던 당대의 석학 존 스튜어드 밀(John Stuart Mill)은 1854년 3월, 갓 출간된 '디킨스라는 하찮은 소설가' 의 「음산한 집」을 읽고 여성을 조롱하는 작가의 여성관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글을 자신의 아내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디킨스의 역동적인 활동만큼 사생활은 정돈되지 못했다는 평판이 따랐다. 아일랜드 출신 여배우, 엘렌 터넌 (Ellen Ternan)과의 치정이나 두 처제와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도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작품 속에서는 무고한 어린이들의 가혹한 운명에 독자의 눈물을 유도했지만 현실의 그는 냉담하고 가혹한 아버지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왕성함을 넘는 과도하게 역동적인 활동의 부작용으로 그는 1870년 6월 9일, 58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죽었다. 사망 당시에 그는 부자이자 명성 높은 빅토리아 조 제일의 소설가였다. 죽어서도 웨스터민스터 사원, 시인묘지에 묻히는 영광을 누렸고 이날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백만의 경배를 받고 있다.

디킨스의 법과 법률가

디킨스의 모든 작품에 어떤 형태로든 법과 법률가가 등장한다. 법이 시대의 거울인 점을 감안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디킨스는 소년 시절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특히 형사법의 운용실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5)

디킨스 시대에는 범죄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었다. 사회소설가로서 디킨스는 당대의 중요한 사회적 현안을 작품으로 극화시키는 데 남다른 관심과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특히 그의 작품 활동 초기에 영국은 만연한 범죄에 대한 제동장치는 지극히 취약했다. 이를테면 소매치기는 막강한 조직을 갖춘 산업이었다. 소매치기 행위만으로도 교수형에 처할 수 있었다.(강제노역, 교화소 등 각종 중요한 사회기관도 개입할 수 있었다.) 언제나 무고한 자는 피해를 당하고 약자는 짓밟히고 자유로운 정신이 감금되면서 무력한 폐쇄공포증이 드러난다. 법이 정의를 구현해주지 못하면 사회 그 자체가 감옥으로 변한다. 작가 디킨스가 내는 목소리는 제도 속에 체포된 개인의 목소리이다.

디킨스의 활동기는 형사사법에 중요한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최초의 소설, 「피크위크 클럽 유람기」가 출판된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은 취임 최초의 의회연설에서 형사법전의 개정과 사형의 감소를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영국은 형사사법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획기적인 개혁을 이루었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개정, 경찰제도의 정비, 감옥과 각종 구금시설의 개선, 사형과 기타 신체형의 축소 등등, 실로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870년 디킨스가 사망할 당시의 영국의 형사사법 체계는 현재의 체제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개혁 이전의 영국 형법은 '피의 법전' (Bloody Code) 이라는 별명이 따랐다. 법정형이 사형인 범죄의 종류는 200을 넘었다. 1817년의 통계에 의하면 약 1만 4천명이 사형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중 극소수만이 실제로 사형을 집행되었다. 디킨스는 초기에는 사형의 전면적 폐지를 주장했으나 후반에는 입장을 바꾸었다. 당시 여론도 1860년대에 들어 사형제의 유지와 교도소 내의 강한 감시와 규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피의 법전' 아래서 대표적인 사형대체 수단이 식민지 유배였다. 1837년 의회의 특별위원회 (Select Committee)의 강한 비판이 제기된 이래, 유형지로의 유배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식민지마다 죄수 유입 반대운동이 가속되었고 1852년 이후 사실상 폐지되다시피 했다. 1867년, 마지막 죄수 호송선이 영국을 출발했고 1874년, 악명 높은 지브롤터 감옥이 폐쇄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식민지 대신 국내에 감옥이 대량으로 건설되고 동시에 교화 작업이 병행되었다. 청소년 범죄법 (Juvenile Offense Act 1847), 빈민자녀의 교육을 위한 청소년교화법 (Reformatory School Act 1854)등이 제정되었다. 디킨스는 1842년, 1867-8 2차에 걸친 미국 여행에서도 감옥의 시찰에 특별한 비중을 두었다.

추리소설의 요소가 강하게 풍긴6) 디킨스의 범죄소설은 도스토에프스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디킨스의 찬양자였던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심화된 러시아 판 디킨스라는 평가도 있다. 1868년의 사형개정법(Capital Punishment Amendment Act)의 제정으로 공개처형제도가 사라졌다. (디킨스는 20년 전 부터 이를 주장했고 이 개정법에 그의 기여도 상당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있다.) 디킨스는 평생토록 법률가 직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1834년, 아직 기자 시절에 이미 장차 변호사가 될 관심을 표했고, 1839년에는 대표적인 법학원(Inns of Court) 중 하나이던 Middle Temple7)에 두 변호사를 보증인으로 하여 정식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정규회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당시의 법학원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의식은 선배동문들과의 공개회식이다.) 1854년에야 정식으로 탈퇴하였다. 디킨스의 일곱 아들 중 여섯 번째인 헨리(Henry Fielding Dickens)만이 유일하게 변호사가 되었다. 또한 디킨스는 의회에 진출하라는 권고는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판사직에 대한 관심은 평생 지니고 살았다. 한때는 런던 비상임 치안판사가 되기 위해 상당한 로비를 했다. 법조개혁 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8) 초기에는 사형제의 폐지를 주창했으나 만년에는 현실론으로 돌아섰다.

디킨스의 작품에는 범죄와 형사법 이외에도 많은 주제와 현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중 몇몇 작품은 특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

『피크위크 클럽 유람기』에는 디킨스를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도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있다. 유명한 '구혼 씬'이다. 유식한 홀아비 신사 피크위크 씨는 딸 하나 달린 과수댁 바르델 부인의 하숙생이다. 어느 날 그는 조수 샘 웰러를 고용하는데 숙식을 함께 하면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 안주인의 의향을 타진한다. "혼자보다 둘이 함께 살면 비용이 많이 들겠지요?" 그를 흠모하던 과수댁은 이 말을 청혼의 뜻으로 착각하고 갑작스런 포옹으로 답한다, 왜 이제야 속내를 드러내느냐고 힐책하는 듯 "짓궂은 당시이인" 하며 끈적이는 신음소리를 낸다. 당황한 피크위크 씨는 누가 보면 어떡하느냐, 진정하라고 달래지만 갱년기 여인은 막무가내, 더욱 강렬한 포옹으로 휘감아 올 뿐이다. 샘을 포함한 피크위크 클럽 멤버들이 이 장면을 본다. 몇 달 후 바르델 부인이 피크위크 씨를 고소한다. 혼인 약속의 위반 (breach of promise)으로 1천 5백 파운드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재판이 열린다. 구혼장면의 목격자가 원고 측 증인으로 소환된다. 변호사의 능숙한 심문 끝에 "자신의 품속에 안긴 원고의 허리를 껴안은 채" "귀여운 것" "누가 보면" 등 밀어를 한 것이 입증된다. 그뿐 아니라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라는 피크위크 씨의 친필 쪽지 두 개가 증거로 제출되었는데, 하나는 저녁 요리를 어떻게 해 달라는 주문서였고 나머지 하나는 외박 통지 메모였다. 평범한 남의 말에서 엄청난 뜻을 주조해 내는 일을 업으로 삼은 법률가들은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고기다짐은 육체의 밀어며 방을 데울 필요가 없다는 말 또한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은어라고 주장한다.

배심은 피크위크 씨를 사랑의 배신자로 규정하고 판사는 750파운드의 배상을 명한다. 자존심 높은 피크위크 씨는 부당한 판결을 따르려니 차라리 채무자 감옥을 택함으로써 불의에 항거한다. 승자인 과수댁 또한 변호사 비용을 내지 못해 감옥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패소자가 배상금의 지불을 거절하자 변호사는 사건의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청구했고, 150 파운드 거금이 있을 리 없는 가난한 하숙집 안주인은 국가가 경영하는 무료 하숙집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이 소식을 들은 피크위크 씨는 미련스런 바보이기는 하나 사람은 착한 '약혼녀'를 감옥에서 꺼내어 주고, 버림받은 그녀도 나머지 승소금액을 포기하기로 합의한다. 감옥문을 나서면서 피크위크가 허공을 향해 던진 한 마디는 "도둑놈들!"이었다. 디킨스가 그처럼 저주하던 채무벌 제도는 그가 세상을 떠난 1870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 작품이 자유로운 여행, 우정, 목가적 분위기는 살풍경의 런던의 법조타운이나 감옥과 대조된다. 결혼, 유머, 서서히 드러나는 깊은 인간성은 하인 샘 웰러의 등장과 함께 흥미를 더하여 런던 독자의 혼을 빼앗는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지식인이 사회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던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팍팍한 도시의 삶에 인간성의 피폐를 절감하는 현대인들에게 파안(破顔)의 미소를 내 던질 공간을 제공해 준다.

디킨스 법률소설의 대명사로 불리는 「음산한 집」 (Bleak House, 1853)은 종합적 사회 비판서의 전형이기도 하다. 영국 정의와 형평의 상징이라는 형평법원(High Court of Chancery)의 운영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풍자적인 고발이다.9) 초판 서문에서 디킨스는 이 소설이 실제사건을 소재로 한 것임을 밝혔는데, 1789년에 유언 없이 죽은 버밍햄의 한 부호의 유산을 둘러싸고 수십 년 동안 계속된 한 소송사건과 유사하다고 후세인은 추적했다. 작가는 형평법원과 법질서의 혼란을 사회 전체의 혼란의 은유로 사용한다. 비효율적인 법, 빈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부족, 비위생적 환경. 법적 부정의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그 자체의 문제이다.10) 등장인물도 귀족가문 데드록 (Dedlock)에서 거리의 청소부 조(Joe)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을 망라한다. 이에 더하여 전지적인 제 3자 화자에 더하여 작중 인물, 에스터 (Esther)가 화자로 참여하는 이중화법을 사용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축약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문학적 실험이 작가의 명성과 작품의 통합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런던. 마이클 마스 직후... 도저히 대책 없는 11월 날씨. 심한 폭우가 유린하고 지나간 거리는 진흙투성이... 온통 안개천지, 강 위에도 강 아래에도... 눈알 속까지도, 목구멍 깊숙이까지도... 생경한 오후는 더없이 생경하고 짙은 안개는 더없이 짙어... 안개 한복판에 형병법원장 나리는 더없이 근엄한 자세로 앉아 계시다.... "

첫 단어가 런던이다. 하나의 문장이다. 수도 런던이 상징하는 빅토리아 영국이다. 영국 사회가 분해의 대상이다. '법'의 런던이다. 두 번째 문장은 법을 지칭한다. 그 법은 온갖 외형적 불결함을 안고 있다.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진흙은 복리이자처럼 늘어나고 이 소설의 주제인 금전과 법률가의 유착은 날로 견고해진다. 네 번째 문단에서 안개가 템플 바에서 더욱 짙어지고 그 중심에 형평법원장 나리가 앉아 계시다.11)

형평법원이 영국사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되풀이하여 강조된다.

"정말이지 위대한 나라지요, 위대한 나라이고말고요. 형평법은 대단히 위대한 제도입니다. 위대한 제도이고말고요. 우리는 번성한 공동체에요. 미스터 잔다이스, 대단히 번성한 공동체지요. 위대한 나라입니다. 미스터 잔다이스, 우리나라는 정말이지 위대한 나라입니다. 위대한 제도지요. 미스터 잔다이스. 이 위대한 나라가 제대로 된 제도를 구비해야지요. 그렇지요?"12) 제 15장에서 그리들리 (Gridley)는 잔다이스가 이 괴물과도 같은 제도에 의해 부당하게 유린당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긴 대답으로 형평법원 업무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도덕적 책임은 외면하고 그릇된 제도의 탓으로만 돌린다.

제목이 대변하듯이 소설의 분위기는 음산하다. 등장인물도 날씨도 사건의 전망도. 짙은 안개는 문자 그대로 오리무중, 소송의 예측불가능성과 음산함의 상징에 적격이다.

"여기가 바로 형평법원, 나라 구석구석의 모든 썩어 내려앉은 집채와 황폐한 땅을 다스리는 곳, 모든 정신병원에 감금된 병자와 교회 뜰에 묻힌 망령을 보살피는 곳, 송사에 살림을 거덜내고, 아는 사람 모두에게 구걸하여 그나마 뒤축 닳은 구두에 바늘자리 듬성듬성 헌 옷 하나 빌려 입고 나타난 소송당사자를 무한정 감금해 두는 곳, 돈 많은 권력자의 권리는 재빨리 찾아주는 곳, 재물과 인내와 용기와 희망을 너무나도 쉽게 앗기는 곳, 머리가 가슴을 유린하는 곳, 사정이 이럼에도 이곳을 무상출입하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 누구 하나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이곳에 도움을 청하느니 차라리 팔자소관으로 돌리는 편이 낫다'라고 경고해 주는 신사 하나 없는 곳."

"사건은 한없이 끌었다. 소송의 전모가 너무나 복잡하여 생존자 중에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변호사들조차도 5분만 이야기 해보면 서로 다른 주장을 펴게 된다. 무수한 아이들이 출생과 동시에, 그리고 무수한 젊은이들이 결혼과 동시에,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왔고, 무수한 노인들이 사망과 동시에 사건에서 빠져나갔다.... 사건이 끝나면 장난감 흔들 목마를 선물 받을 것이라면 희망에 부풀던 어린 원고, 피고는 자라서 진짜 말을 타고 다른 세계로 사라졌다.... 수많은 판사가 자리를 들락날락했고, 산더미 서류가 무의미한 죽음의 종잇조각으로 변신했다. 톰 잔다이스 할아버지가 절망 끝에 챈스리 가의 커피 점에서 권총 자살한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불과 몇, 그래도 사건은 꼬리를 한없이 법원에 걸치고 있었다."

법률소설, 「음산한 집」의 종결은 그야말로 법의 음산함과 불의와 불합리의 극치를 보여준다. 반세기나 끌어온 소송은 마침내 종결되었다. 그러나 대물림한 수많은 원 피고, 그 누구도 승소하지 못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인즉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송의 목적물인 재산이 모두 그동안 발생한 비용에 충당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0년 대 초 링컨 인(Lincoln's Inn)안에 있던 작은 법률서점에 이런 상황을 기막히기 그린 풍자만화를 본 적이 있다. 가발 쓴 판사가 방관하는 가운데 원고에게 뿔을, 피고에게 꼬리를 잡힌 채 네 발로 버티고 있는 암소의 젖을 신명나게 짜는 디킨스 변호사의 모습이다.

이 작품이 디킨스 당대 영국의 법과 사회제도를 은유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빅토리아 중기의 자본주의 전성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자유경쟁에 대한 찬사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13) 그런가 하면 후세 작가 조지 오웰은 사회비평가 디킨스의 신화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디킨스의 표적은 '인간의 본성' 으로서의 사회가 아니다. 그는 한 차례도 사기업이나 사유재산제도 등 경제제도의 핵심을 정면으로 비판 적이 없다"고 오웰은 극언했다.14)

두 도시 이야기

세상을 거대한 감옥으로 보는 디킨스의 관점에 서면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 1859)도 물론 감옥 이야기다. 혁명전 프랑스 사회는 감옥 같은 속성 때문에 붕괴하고 무정부상태로 추락한다. 정치적 종교적 우화의 성격을 구비한 이 소설은 타락한 사회의 재건은 우정, 가족의 사랑, 영웅적인 희생만으로 가능하고, 이 모든 것의 기초이자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전문 문학인들은 이 작품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멜로드라마적 요소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디킨스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하층민에 대한 귀족층의 착취가 폭력혁명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결과로 무정부 상태가 초래되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경찰국가가 등장했다. 명백한 혁명의 실패다. 이것이 디킨스의 역사관이다. '피의 혁명'을 막은 영국의 역사에 자부심을 품었던 많은 지식인들의 정서를 대변했다. 작가는 칼라일의 「'프랑스혁명사」에서 큰 줄기와 세부사항을 옮겼다. 칼라일의 저술은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엄정한 역사서로는 결함이 많다. 그러나 당시의 석학, 존 스튜어드 밀(John Stuart Mill)이나 작가 새커리 (William Makepeace Thackery)의 찬사를 받았고 출판과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디킨스는 이 책을 5백번 이상 읽었다고 서한에서 밝혔다.15) 또한 도서관에서 칼라일이 추천한 자료를 카트 2대 분이나 대출 받았다고 한다. 광범한 문헌조사를 통해 정확한 일자와 함께 사회적 정치적 평가를 가미했다. 바스티유감옥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무기의 종류, 함락 당시 감옥에 있던 간수와 죄수의 숫자 (각각 7명) 등등 여러 곳에서 칼라일을 옮겼다. 서문에 칼라일의 저술을 언급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디킨스는 작품에서 시드니 카턴과 마담 드파르주, 두 허구의 인물을 강렬하게 각인시켜 마치 역사적 인물인양 부각시켰다. 사랑과 헌신, 그리고 구원이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를 승화시킨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고 마담 드파르주를 통해 사적 원한과 공적 폭력의 관계를 이처럼 극적으로 그린 그의 필치에 탄복한다.

영국사회도 피의 혁명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따라서 그 위험을 경고하는 작가의 사명감을 감지할 수 있다. 1830년, 40년대에 노동자들은 차티스트 운동을 일으켰고 실업은 심각한 사회적 위협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850년 대 이후의 경제성장으로 운동이 약화되어 일시 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위험은 상존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1848)의 첫 구절대로 19세기 전반, 유럽 전체가 폭력혁명의 '유령'의 뒤뜰이 되었기에 영국 중산층의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개인적 체험과 사회적 논제로서의 빈곤은 디킨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빈민가에 대한 정부와 자선기관의 역할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디킨스가 영국 내에서 계급혁명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프랑스혁명을 소재로 차용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당시까지 그 어떤 역사적 사건도 프랑스혁명처럼 사람들을 집단적 공포로 몰아넣은 적이 없었다.

이 작품에는 프랑스혁명의 폭력성이라는 정치적 주제에 더하여 부활이라는 종교적 주제가 결합되어 있다. 주인공 시드니 카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타적인 죽음을 상징한다. 작가는 기독교의 구원이론을 세속적 차원에서 작품 속에 투영하여 천상의 세계가 아니라 카턴의 친지와 사회적 재생으로 구현시킨다.

이 작품은 '법과 문학' 작업의 중요한 소재를 제공한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법률가의 모습은 법 지식을 무기로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의 대변인이거나 고작해야 자신의 업무를 엄정하게 집행하는 냉정하고 성실한 직업인이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의 재거스가 후자의 전형적인 예다. 대중의 눈에는 이 작품의 스트라이버와 같은 속물변호사가 더욱 익숙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자신을 희생하는 법률가는 상상하기 힘들다. 카턴의 예술가적 천재성은 냉소적인 해학과 파괴적인 음주벽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는 비인간적인 법제도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 숨은 빛은 숙명적인 어둠으로 뒤덮인 유유히 떠도는 구름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탁월한 능력과 착한 감성의 소유자이면서도 그것들을 정당한 행동과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녀의 남편의 생명을 바꾸는 숭고한 희생은 법률가의 차원을 넘어선 행위다. 그러나 목숨을 버림으로써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후손의 영혼을 지배하겠다는 고도의 계산이라면 천재법률가로서는 해봄직한 계산인지도 모른다.

옮긴이가 이 작품(作品)을 처음 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소년소녀 명작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접한 같은 저자의 「이도비화(二都秘話)」라는 작은 책자였다. 일본어 축약본을 옮긴 것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재미가 있었다. 또한 대학 초년 시절, 큰 돈을 들여 평생 처음으로 산 '원서'가 토마스 칼라일의 「프랑스혁명사」였다. 스무 장도 못 읽고 내팽겨 쳤지만 오랜 세월 동안 아련한 향수와 함께 강한 부채의식이 남아있었다. 1980년대 후반 이래 '법과 문학'이라는 지적 작업의 일환으로 디킨스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후에도 이 작품에 특별한 애착이 남아있었다. 혁명과 법은 옮긴이가 평생토록 관심의 끈을 조여 왔던 주제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법률가라는, 지극히 비법률가적인 작가의 발상에 매료되었다. 청년 시절 한때 낭만적 죽음, 이타적 죽음을 동경하던 순수가 남아 있고 우울한 법률가로 보낸 회한이 가슴을 떠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계기는 고교생 딸의 권유 때문이었다. 평소에 자신도 '좀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 아비의 저술활동에 불만이 쌓여 있었던 그였다. 함께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을 관람한 후에는 채근이 따랐다. 이 번역서는 딸의 몫이다.

*이 글은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안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2015.3.) 옮긴이의 말 중 일부를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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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r. Micawber (David Copperfield, 1850)와 Mrs. Nickleby (Nicholas Nickleby, 1839)

2)Philip Hobsbaum, A Reader's Guide to Charles Dickens (Thames and Hudson Ltd., 1972)

3) Sketches by Boz, Illustration of Everyday Life and Every People.

4) 이러한 작품의 주제를 감안하면 '위대한 유산'보다 '거창한 꿈'이 더욱 적절한 것 같다.

5)Philip Collins, Dickens and Crime (Macmillan & Co. Ltd., 1965). 그러나 조지 오웰은 형사사법에 대한 디킨스의 이해가 깊지 않다고 비판했다

6) 디킨스는 친교가 깊었던 Wilkie Collins(1824-1889)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Collins의 소설 The Woman in White (1859-60) The Moonstone (1868) 등.

7) Gray's Inn, Lincoln's Inn, Inner Temple과 함께 '4대 법학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8)"A Truly British Judge" (1848. 8.19) 소액 절도 소년범죄에 대해 채찍 형을 부과할 것인지 여부.

「Letters on Social Questions」 (1846-50).

9)디킨스가 형평법원 절차에 대한 정교한 지식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하는 법률가도 있으나 (1944 (W.P. Williams) (Hawthon,14.)

10) Jeremy Hawthorn, Bleak House: An Introduction to the Variety of Criticism, (MacMillan, 1987), 15.

11) 같은 책, 62.

12) 켄지 (Mr. Kenze)의 말. 제 63장.

13) Jeremy Hawthorn, 위의 책, p.69.

14)) George Orwell, 'Charles Dickens,' in Inside the Whale (London, 1940) repr. in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 ed. Sonia Orwell and , 4. 16) (20쪽)

15) The Letters of Charles Dickens (1880,Chapman and Hall, London) Vol 3. p.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