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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0일 09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30일 14시 12분 KST

분노의 원리 | 인간은 길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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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교양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착한 아이가 될까요? 혹은 못된 아이가 될까요? 라는 것이다. 반대로 못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착한 아이가 될까요? 못된 아이가 될까요? 이러한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착한 아이가 되고, 못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못된 아이가 될 것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옳은 답이 아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기 전에 더 일찍부터 길들여진다.

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못된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착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거나 무엇을 요구하면 다 받아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못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한 대라도 덜 맞으려면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처럼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지는 과정을 조건형성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한 자극과 반응 사이의 연합을 조건형성이라고 하는데, 맛있는 음식을 보면 침을 흘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때 인지적 과정은 개입하지 않는다. 자극이 주어지면 연합된 반응이 무조건적으로 나온다.

인간의 정서도 이러한 조건형성의 법칙에 의해 길들여져 있다.

자극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정서 중에서 분노는 일상 경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사소한 마찰로 인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려는 것이 방해받아 좌절되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욕을 받아서 등 다양한 상황에서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마다 조건형성된 반응이 달라서 동일한 상황에서도 개인마다 다양한 반응을 나타낸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해서 반드시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더 움츠러드는 사람도 있다. 어떤 자극을 받아 화가 났을 때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는 개인이 조건형성된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분노의 표출보다는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화가 났을 때 이를 억압하기보다는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이 이롭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어릴 때 밖에서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오면 부모님들이 '너는 왜 맞고 다니니!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인간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화가 날 때마다 이를 겉으로 표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조절을 통해 내면에 인내의 그릇을 키워 가야 하는데, 화가 날 때마다 이를 표출하다 보면 인내의 그릇이 커지지 않고 작아진다. 작은 그릇에는 조금만 물이 넘쳐도 흘러내리듯이 화가 날 때마다 표출하는 사람들은 인내의 그릇이 작은 사람이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은 인간의 공격성을 담당하는 대뇌 부위로 알려진 편도체가 예민해져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화를 낸다. 이는 배가 부른데도 맛있는 음식만 보면 군침을 흘리는 것과 같이 조그만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화를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노를 느낄 때 마다 이를 즉각적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잘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노를 느낄 때 이를 억압하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한편으로 일리가 있다. 분노를 단순하게 억압하고 순화시키면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분노를 억압하면서 여러 가지 사고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분노를 억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상대방을 비하하게 되고, 화가 난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면서 더욱 더 화를 키운다. 또한 자신이 받은 고통만큼 상대방에게 돌려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의도에 대해 독단적으로 결론내리면서 자신의 분노표출을 합리화시켜간다. 처음에는 작았던 것이 이러한 사고과정을 통해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고 결국 자신도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분노를 잘 통제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관련된 자신의 조건형성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떤 일에 주로 화가 나는지, 어떤 상황에서 발끈하게 되는지를 살펴본 다음 조건형성된 반응을 달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하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하면 어떻게 대응하지? 등 자신이 주로 분노를 느끼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반응을 다시 조건형성 시켜야 한다. 머리로만 '다음에는 이렇게 반응해야지' 라고 하면 안된다. 각각의 상황에서 반응하는 것을 예습해 보고 이를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인지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분노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분노조절의 실패로 범죄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져 가는데 그에 반해 우리들의 삶은 더 피폐해져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편리한 세상에서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늘 시간에 쫓기듯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가는 사람들, 지하철 환승을 빨리 하기 위해 지하철 칸 안에서 이동하는 사람들, 횡단보도에 서서 자동차용 신호등을 바라보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등등 모두들 강박적으로 시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생산성 면에서는 이득이 있다. 많은 일도 순식간에 해내는 놀라운 성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른다. 이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다. 이는 바람이 가득 들어간 풍선을 조금만 건드려도 팅팅하며 반응하듯이, 주변의 자극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누군가와의 가벼운 마찰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좌절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 쉽다. 빵빵한 풍선처럼 자신을 부풀린 사람은 예민한 돌기가 뻗쳐있어 날선 칼날과 같다. 풍선의 바람을 빼듯이 스스로 몸의 바람을 빼고 살아야 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잠시라도 여유를 가지면서 바람을 빼야 한다. 자신이 부풀려지고 있다고 느끼면 버스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천천히 걸어가면서 바람을 빼야 한다. 바람 빠진 풍선은 누군가 건드려도 팅팅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계속적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세상이다. 스스로 바람을 빼며 살아가야 한다.

분노를 느낄 때 이를 즉각적으로 표출하면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푼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거듭되면 자극에 대한 민감화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반응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분노표출의 첫 맛은 달콤하겠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은 오래간다. 점점 각박해져 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분노와 관련된 자신의 조건형성 반응을 살펴본 다음 이를 다시 조건형성시키고, 몸에 가득 들어찬 바람을 빼면서, 내면에 있는 인내의 그릇을 키워가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한국심리학회 웹진 PS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