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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3일 05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4일 14시 12분 KST

코미디만도 못한 공천쇼

복도 의자에 앉아 공천 면접을 기다리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대학 입시나 입사 시험을 치르려는 대기자를 연상시킨다. 권위는 실추되고 권력만 얻어서 무얼 할까. 당 대표에게도 면접에 응하라고 한다. 학생처럼 취급되는 장면은 후보자의 격을 낮추는 인상밖에 주지 못한다. 후보들은 스스로 학생으로 전락한다. '저, 저 여기요' 라는 초등학생 같은 짓을 하는 의원까지 있다. 국회에서 대통령에게 저 여기 있어요 하는 따위의 치졸한 행태가 초등학교 수준의 국회의원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합뉴스

정당 계파끼리 쌈박질 하는 꼴은 유권자의 봄 마음을 앗아간다. 선거철이 다가왔다. 공천경쟁이 달아 오른다. 세상 일은 거의 매사가 경쟁이니까 평가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평가는 도처에서 이루어진다. 대학 수능과 면접, 입사면접, 전시회, 공연장, 재판정, 정부기관 등등에서 평가는 필수이다. 그런데 평가는 얼마나 공정하고 타당할까. 평가기준만 잘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얼마나 객관적일까. 평가자의 공정성은 믿어도 될까.

평가를 믿지 않고 기준이나 제도 자체를 부인하면 소외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도만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판사를 지낸 저명한 변호사에게 법조인이 소장을 제대로 읽느냐고 한 질문의 답은 '교수는 시험지 일일이 다 읽느냐' 였다. 교수 중에는 시험지 한 장을 3초도 되지 않아 넘기는 경우가 있으니 묻는 사람 얼굴이 붉어진다.

평가 절차가 부실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가의 본질에 있다. 희랍 금언에 '셈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것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숫자화 되면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돌의 무게를 재었을 뿐 모양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실제(reality)가 뭔지 잘 모른다. 스티븐 호킹의 말대로라면 세상 모든 것은 개념(concept-dependent reality)일 뿐이다. 정당, 민주주의, 정의, 평가, 나무, 집 등등 우리가 그렇게 표현하자고 약속한 것이지 실제와는 다르다. 공천 기준으로 당 공헌도, 당선 가능성 등이 있지만 정당에 공헌한 것이 당선일 수도 있고 의정생활에서 법안 제출과 심의를 열심히 한 것을 수도 있지만, 사람과 그 활동의 평가는 진정 '공헌'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허황된 일일 수밖에 없다.

복도 의자에 앉아 공천 면접을 기다리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대학 입시나 입사 시험을 치르려는 대기자를 연상시킨다. 권위는 실추되고 권력만 얻어서 무얼 할까. 당 대표에게도 면접에 응하라고 한다. 학생처럼 취급되는 장면은 후보자의 격을 낮추는 인상밖에 주지 못한다. 후보들은 스스로 학생으로 전락한다. '저, 저 여기요' 라는 초등학생 같은 짓을 하는 의원까지 있다. 국회에서 대통령에게 저 여기 있어요 하는 따위의 치졸한 행태가 초등학교 수준의 국회의원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 대표 면접은 그야말로 넌센스(none sense)이다. 만일 대표가 면접에서 탈락된다면 그 동안 당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될 터인데, 그 책임이 면접관들에게는 없다는 말인가. 면접도 그렇다. 몇 분 동안 오가는 말로 피면접자를 제대로 평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대로 한다면 현상학에서 말하는 심층 대면 접촉(face-to-face contact)을 해야 하고 그래서 주관과 주관이 만나는 간주관(間主觀)이 성립되어야 상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열린우리당 공천심사를 할 때 일이다. 2004년 초 약 두 달 동안 공천 사상 처음으로 공개 심사를 했다. 비례대표를 합해 152명의 의원이 당선되어 오랜만에 여대야소(與大野小)가 되었다. 당시 후보자 전체를 면접하지 않고 경쟁이 심한 곳만 몇 군데 했다. 한 사례는 6명의 후보자 중 학력과 경력이 수월한 제자를 제치고 경쟁력이 꽤 있다 싶은 피면접자 한 사람을 후보로 정했다. 그 후의 행적을 보면 입에 담기 어려운 행태를 보여 면접의 효과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실패 사례로 기록된다.

올초 다보스 회의의 주제대로 지금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지금 거대 패권 세력은 미시권력으로 바뀌어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거대정당은 소수정당으로, 정당은 분파로, 수도는 지방으로, 행정부는 사법부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그라운드스웰 같은 것은 정부를 건너 뛰려고 하는 것이다. 풀뿌리 시민 자원 봉사자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네트워크 민주주의가 고개를 든 지 오래다. 지금의 법과 제도는 패권세력의 확대 재생산에 불과하다고 하버드 법대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는 지적하고 있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과장과 희화는 있지만 우리를 기쁘게 한다. 감동도 주고 되새김질 하게 한다. 세상이 어느 땐데 이 나라 정치는 웃지 못할 쇼만 매일 벌이며 실소만 자아내게 할 건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평가를 전가의 보도로 쓴다.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해 구조조정 하겠다며 윽박지른다. 기재부가 공공기관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순위 때문에 운명은 갈린다. 이들은 승강기에서 내리라는 모이제스 나임(Moises Naim)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른다. 디지털 시대에 약자가 승자를 이기고 있는 줄도 모른다.

지금 같은 면접은 걷어 치워라. 하려면 평소에 깊이 있는 평가를 하라. 면접을 한데도 간주관이 성립될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잡아라. 납세, 범법 등 객관적 기록은 참고하라. 역설적이지만 지금처럼 할 거면 차라리 정확한 공천 알고리즘(algorithm)을 만들어라. 가능한 변수와 자료를 다 넣고 돌리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