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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0일 12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1일 14시 12분 KST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

연합뉴스

선거가 끝났다. 이제 미뤄왔던 세월호, 청년실업, 누리과정, 국정교과서 등의 현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애써 피하는 주제가 있다. '우리 원전은 안전한가?' 나만 하더라도 알고 나면 불편해질 이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미뤄왔다. 그런데 올해 체르노빌 30주년을 맞이하여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었다. 그 책에서 화재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소방관의 아내가 남편을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사산한 후 했던 말이 지금도 뇌리를 떠돈다. "내가 딸을 죽였다, 내가.... 딸이, 나를, 살렸다. 내 딸이 방사선을 모두 끌어모아 나를 살렸다. 나는 그 둘을 다 사랑했다. 사랑으로, 사랑으로 죽이는 게 가능한가?"

소련 핵에너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는 "소련의 원전은 안전해서 크렘린 옆 붉은광장에 세워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에서 과학자들의 실험 도중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사이언스아카데미는 이 사고로 1986년에서 2004년까지 약 100만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원전을 건설하려 했던 덴마크는 1987년 세계 최초로 시민합의회의를 열었으며 그 결과 원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도쿄전력은 "일본 원전은 안전하다. 원전 위로 비행기가 떨어져도 끄떡없고, 가장 강력한 규모 8.0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후쿠시마의 원전 4기가 노후된 순서대로 폭발했다. 1년 뒤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1만5천여명이 사망하고, 47만명이 피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대만 등이 탈핵을 결정하였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어떨까? 2016년 현재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2024년이 되면 총 41개의 원전이 운영될 계획이다. 또 "우리는 어떤 재해에도 안전한 최고의 원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지역에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

후쿠시마와 함께 '안전 일본'의 신화가 무너졌다. 우리는 세월호, 메르스 대처에서 정부 재난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았다. 더구나 원전을 둘러싼 비리와 그 당연한 결과인 잦은 고장 및 정지 사태를 몇 년째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 단 1기의 대형사고로도 전 국민이 방사능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미래의 몇 세대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험을 불사할 만큼 우리나라의 전력 부족은 심각한가? 아니다. 전력이 남아돌아 수요가 적은 새벽에는 약 40%의 전기가 버려진다. 또 재생에너지가 턱없이 비싼가? 그것도 아니다. '유엔미래보고서 2050'에 따르면 2017년에 태양광 발전 단가가 화석에너지 발전 단가보다 낮아진다. 2030년이 되면 거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된다.

이에 전국 80여개 시민·환경 단체들로 구성된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탈핵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 덕분인지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탈핵 기본법 제정, 신규원전 건설 중단,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등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원전을 고수하려는 세력이 워낙 막강하고,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이해도 높지 않다.

이제 시민·환경단체들과 학교가 연대하여 탈핵 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원전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내자. 그리하여 20대 국회에서 탈핵 기본법과 정책을 마련하도록 하자. 태양과 바람의 시대를 여는 일, 그리 멀지만은 않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