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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4일 12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4일 14시 12분 KST

이 겨울 맨발의 소녀가 가스관을 탄다

Shutterstock / dragon_fang

성탄을 앞둔 지난해 말, 인천에서 11살 소녀가 맨발로 가스배관을 타고 2층 빌라를 탈출했다. 굶주림과 학대로 4살 덩치밖에 안 되는 소녀는 동네 슈퍼 아주머니의 신고로 그나마 살아남았다. 그 뒤로도 부모의 학대로 죽어간 아이들의 소식이 겨울 내내 이어졌다. 초등학생의 시신이 훼손된 채로 냉장고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목사 부모가 11개월이나 방치했던 여중생의 주검이 미라 상태로 발견되었다. 어린 딸을 묶어놓고 구타하다 죽자, 그 시신을 암매장한 사건도 일어났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소리없이 사라졌던 어린 영혼들이 앞으로도 속속 드러날 것이다.

모두들 분노했다. 우선 뼈만 남을 때까지 아이를 굶기고 때린 부모에 대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느냐고 화를 냈다. 그다음에는 아이가 사라져도 찾는 시늉만 하다 만 학교와 동네 주민센터, 경찰 등 온통 구멍투성이인 사회안전망에 대해 화를 냈다.

한데 이제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일이 왜 발생했는지 곰곰이 돌아보자. 어렵사리 가정을 이룬 젊은 부부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로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부모와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대가족이나 마을 골목 등 부모의 부족함을 보완해줄 공동체마저 사라졌다. 그 결과 많은 상처를 지닌 아이는 부모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자꾸 저지르고, 이 상황을 참을 수 없는 부모는 아이를 때려서라도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가고, 급기야 물건을 부수다 못해 '다들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는 '괴물'로 변한다. 믿고 의지하던 이웃은 "때리려면 제대로 때려라.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입을 막아서라도 교육시켜라" 따위의 황당한 훈수를 한다. 이렇게 아이와 부모가 함께 망가져가고, 마침내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실종으로 분류된 아이들 중 어딘가 묻혀 있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또 '괴물'이 된 아이들과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 '괴물'이 되기 직전 단계의 아이와 싸우고 있는 부모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정의 아동학대에 대한 대책이 연일 발표된다. 한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를 학대한 부모를 우리와는 별종의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인해 누구나 어느 순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정이 흔들릴 수 있는 현실에서, 아이를 밝고 건강하게 기르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사회문화적 환경이 바뀌어 육아에 관한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가 통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런 만큼 아동을 학대한 부모를 악한으로 몰아세워 엄벌하는 방안이 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분노는 상대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 끓어오른다. 우리 사회도 아동을 학대한 부모를 차분하게 살펴보고, 그들이 건강한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선, 유치원과 학교에서 부모 교육을 강화하고, 학부모회와 협력하여 육아의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코칭하는 게 필요하다. 그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어려움과 분노를 공감해주고, 아이가 왜 '괴물'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런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도 자상하게 알려주자.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마을을 복원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얼마 전 방영을 마친 '응팔'은 마을이 살아 있던 시절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학교를 매개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움직임이 더욱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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