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2월 23일 12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3일 14시 12분 KST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힘은

SBS

지난달 칼럼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깨어날까'를 다루었지만 스포일러를 의식해서 깊이있는 접근을 하지 못했다. <바람의 학교> 4부작 방송이 끝났으니, 이제 과감하게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잠들어 있거나 무기력한 상태로 지낸다. 왜 그럴까? 낮 시간에 늘 잠들어 있는 A는 중학교 때 학원을 억지로 다녀야 했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원래 그래'라며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수업이 재미없다며 자주 투덜대는 B는 한겨울 자신을 업고 두만강을 건넌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런데 학습 결손이 워낙 심해 뭔가 시도를 해보지만 곧 좌절하고 만다. 그러고는 당장의 재미만 좇는 일에 빠져든다. 활력이 넘쳐 온갖 사건을 벌이는 C는 늘 외부 요인을 탓한다. 어려운 가정환경, 학교에서 먼 집, 밤새 놀아주는 친구들, 자신만 야단치는 선생님 등. 매사 남을 탓하니, 자신이 노력할 일도, 변화할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공부 못하고, 사고치고 싶어서 그러는 아이들은 없다.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힘들고, 이제 시작해 보았자 될 것 같지도 않다. 또 학교에서는 사건사고를 일으킬 때를 제외하면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도 부모님께 주로 야단만 듣는다. 끼리끼리 모여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가지만 그때뿐이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 안 보인다.

이 아이들과 우리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얼마 전 어떤 특강에서 한 학부모가 "아이가 사고치고 들어오면 때려주고 싶은데,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했다. "때려주세요. 속마음은 부글거리는데 겉으로 좋게 대해 봐야 아이가 오히려 냉소를 짓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다. 힘든 아이일수록 본능적으로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안다. 바람의 학교 한 달 동안 교사들에게는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거의 4주차가 되어서야 아이들과 의미있는 관계가 형성됐다.

다큐에서는 프로젝트나 연극 등 다양한 활동이 아이들을 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뭘 잘하는지 알 수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다. 또 그것과 연관된 진로를 탐색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 내면에는 여전히 안 좋은 성향이나 습관이 성장의 걸림돌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인문학 수업이다. 아이들은 <오이디푸스 왕>을 천천히 읽으면서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자신의 문제와 연결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중엔 이걸 텍스트로 정한 이유에 대해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 나중에 꿈을 찾을 수 있지 않냐', '자기 정체성을 생각해 보라는 것 같다'고 했다. 이후 프로젝트나 연극을 하면서 교사들은 끈질기게 텍스트가 던진 문제의식을 환기시켰다. 그래서 4주차 집중 면담 과정에서 교사들이 자신에게 던진 쓴소리를 감당하고, 자신의 문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용기를 아이들이 본받은 것이다. 한 달간 우여곡절 끝에 형성된 교사에 대한 신뢰가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많은 활동이 아이들의 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세상을 읽어내는 힘이다. 우리는 인문학을 매개로 그 힘을 기르고자 했다. 원래 구상했던 것을 많이 포기하기는 했지만 <오이디푸스 왕>이란 텍스트가 그 위력을 나름 발휘한 것 같아 흐뭇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