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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5일 12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5일 14시 12분 KST

아이들은 어떻게 깨어날까?

처음에 교육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을 때 무척 망설였다. 교육의 힘으로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 야심차지만 무모하다고 봤다. 한 달 만에 아이들이 바뀔 수 있을까?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이 치열한 과정이 오락처럼 보이지 않을까도 걱정이었다. <무한도전>이나 <삼시세끼>도 아닌데, 일요일 밤 몇 차례 방영한다고 교육을 흔드는 효과가 있을까 회의도 들었다. 고민 끝에 주변에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교사 네 명을 모았다. 첫 만남에서 네 가지를 결의했다. 우선 비주얼보다는 아이들 내면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자. 여느 학교에서나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 그리고 미래의 학교를 보여주자. 준비하는 우리는 재미있게, 서로의 성장을 자극하며!

연구실도 마련해서 함께 석 달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학교 이름을 뭐라 지을까 고민했다. 한라산 중턱에서 시작하니 '태풍의 학교'가 어떨까 싶었는데,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 낡은 것을 쓸어가는 바람의 의미를 살려서 '바람의 학교'라 짓고는 모두들 흐뭇해했다. 그다음 아이들을 어떻게 깨울까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활동을 함과 동시에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깊이 있게 읽으면서 '그동안 회피해왔던 나의 진실은 무엇인가', '주류적 가치만을 추구하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어떻게 상상할까' 등 아이들의 반성적 사유와 상상력도 북돋우려 고심했다.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만들기를 해보면서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온 미래를 느끼게 해보고 싶었다. 진도가 잘 나가면 제주의 사회적 기업들과 함께 프로젝트도 벌여보려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면면을 보고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아이가 여럿인데다, 몇 년 사이에 유일하게 읽은 책이 <오이디푸스 왕>인 아이들도 있으니, 정말 수업하기 쉽지 않은 구성이었다. 첫날부터 음주, 흡연, 욕설 금지 등의 규칙에 대한 반발로 입학식이 지연되거나 아이들끼리 대판 싸워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된 적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준비한 것을 대폭 걷어내고 프로젝트와 연극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다.

그토록 난리를 치거나 무기력했던 아이들이 막판에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밤낮으로 함께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이 서로 부딪혔다. 그리고 '가시리를 부탁해'나 '제주 바다를 부탁해' 등의 프로젝트, 제주 고등학생들 앞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과제가 계속 주어졌다. 이렇듯 예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 속에서 하루도 조용히 넘어간 날이 없었다. 매일 밤 사범대생으로 구성된 멘토들이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동안 교사들은 자정이 넘도록 대책회의를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깨울까 고민했다. 이런 교사의 노고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한 것은 아이들의 자치회의였다. 갈등상황에서 아이들은 함께 규율을 만들고, 덜 힘든 아이들이 더 힘든 아이들을 챙겼다.

결국 마지막 주에 이르러 아이들은 자신이 극복해야 할 것들을 마주했다. 교사들이 먼저 용기를 냈다. 지난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많은 일들을 함께 겪으면서 형성된 신뢰를 토대로 아이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렀다. 아이들도 용기를 내서 그것을 직시했다. 그날 아이들이 쏟아낸 눈물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렇게 그 이전과 이후는 다른 날들이 되었다.

이렇듯 아이들을 흔들어 깨우긴 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진 못한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하다. 그것은 이제 돌아간 학교와 아이들 자신의 몫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과연 연극을 성공했을까? 모두들 졸업은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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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학교>에서 아이들이 지쳐 잠든 모습.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