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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30일 06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30일 14시 12분 KST

계속 지시받을 것인가?

학교 조직을 바꾸어야 한다. 기존 조직은 교육청의 지시와 공문을 처리하기 좋게 구성돼 있다. 이제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원하기 좋게 학년팀과 업무지원팀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교육청에서 학교 정상화를 위한 업무체계 개편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그에 대한 예고와 준비는 충분한 만큼 이제는 과감히 추진할 때다.

연합뉴스

교육은 동네북이다. 명절에 친척들이 둘러앉아 나라 걱정부터 젊은 애들의 버르장머리까지 한바탕 이야기를 하고 나면, 대체로 '교육이 엉망이라서'로 결론이 나기 십상이다. 백이면 백 사람 모두 교육에 관한 한 자신이 얼마간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 또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겪었던 일들을 일반화해서 교육문제의 해법을 내놓는다. 가만히 보면 토론은 없다. 각자 목청을 돋울 뿐이다.

만일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이 장면과 비슷하다면 다소 걱정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제도교육의 안을 들여다보면 학교의 회의시간은 이런 정도의 시끄러움조차도 보기 드물다. 학교라는 담장 안에서는 관리자는 교사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지시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시를 받으면 일이 하기 싫어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다.

학교는 도대체 어디서 변화의 실마리를 끌어낼 수 있을까? 다행히 얼마 전부터 학교에 새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혁신학교를 비롯해서 적어도 전국의 100개 이상의 학교에서는 구성원들이 우리 학교에서 어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교과 수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에 대해 함께 궁리해서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널리 확산되기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교사가 수업 및 생활교육 등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공문을 줄이는 것과 함께 전시행정과 소수의 이권사업과 다름없는 교육부·교육청의 정책사업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예산도 절감되고, 능력 있는 교사들이 학교교육의 진정한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학교 조직을 바꾸어야 한다. 기존 조직은 교육청의 지시와 공문을 처리하기 좋게 구성돼 있다. 이제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원하기 좋게 학년팀과 업무지원팀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교육청에서 학교 정상화를 위한 업무체계 개편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그에 대한 예고와 준비는 충분한 만큼 이제는 과감히 추진할 때다.

그런데 세상사가 다 그렇듯 건강한 토론 문화를 조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의 마음이다. 멍석을 깐다고 사람들이 쉽게 의기투합하지는 않는다. 많은 학교의 교사들은 교장을 탓하고, 교장은 뒤에서 불평만 하는 일부 교사를 탓한다. 이렇듯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소신을 100%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돌아봐도 교장 시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를 꺾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설령 의견을 절충했다 하더라도 어느 시점엔가 같은 논쟁을 되풀이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수없는 소모전을 치르고 나서야 내 생각의 30%는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30%는 양보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의에 임하자 신기하게도 대립하는 견해의 합리적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쉽게 합의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비하면 요즈음은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하기가 쉬워졌다. 그동안 교육 정상화의 발목을 잡았던 교육청이 오히려 밀어주는 경우도 많고, 인근에서 모범 사례를 찾기도 쉬워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를 편 가르지 않고, 함께 학교 변화의 주체가 되는 일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신념을 모든 상황에서 대쪽같이 견지하는 '선비'보다는 진짜 '일꾼들'이 필요한 때다. 여러 좌절과 타협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학교 혁신의 분명한 비전을 긴 호흡으로 실현해 나가는 '일꾼들'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