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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12일 07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13일 14시 12분 KST

대쪽 같은 선비? 아니다

요즘 교육도 변화의 시기이고, 정치도 그런 것 같다. 다들 멋진 명분과 정연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을 자신의 지조를 꺾는 것으로 생각하여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대쪽 같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마치 지난날의 나처럼 말이다.

정광필

이우학교가 2003년에 개교하고 초기 3년 동안 굉장히 시끄러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학교를 떠나고 나서 꼼꼼히 돌아보다가 드디어 깨달은 것이 있다. 그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

대안학교냐, 공교육 개혁 모델이냐?

이우학교는 전교생 420명이 분당 인근에서 통학하는 학교다. 흔히들 이우학교를 정규 대안학교라 부른다. 공교육 개혁의 모델을 만들고 싶었는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 바로 체험학습과 인성 교육을 중시하는 특성화 (고등)학교, 이른바 정규 대안학교였다. 그래서 이우학교는 대안학교이자, 인문계 특성화 고등학교이며, 초기 혁신학교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성격이 중첩되어 있다 보니까, 개교 초기엔 학교의 정체성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대안학교에서 가치를 내면화하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데, 수업이나 학업 쪽을 너무 중시하는 것 아니냐?"

"가치 지향만이 아니라 수업이나 교육과정에서도 대안이 되어야 공교육 개혁에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입시 명문으로 가는 것 아닌가?"

"우리가 지향하는 길은 변두리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만드는 게 아니다. 주류로 뚫고 들어가 안으로부터 주류 문화를 바꿀, 뜻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농부도 되고 목수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사회의 엘리트 쪽으로만 생각하는가?"

"우리의 과제는 '도시에서 공동체적 삶을 일궈내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도시화된 삶 속에 우리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상당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학교가 지역과 함께 공동체 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선생님들의 관심이 부족한 것 아닌가?"

"우리 역량이 부족하다. 먼저 학교가 자리를 잡고, 이어서 지역사업으로 확대할 수 있다."

나는 그때 최선을 다해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7년 동안 학교 설립을 준비하면서 궁리한 것도 많았고, 석사학위 논문을 학교 설립 기획안으로 준비했으니 나름 논리도 있었다. 좋은 뜻으로 모인 관계에서 '어느 입장이 옳은가?'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성심성의껏 회의 자리에서, 술자리에서, 기회만 되면 그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진심으로 설득하려 했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 선생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그 선생님의 귀가 꽉 막힌 것으로 보였고, 거의 모든 자리에서 나와 부딪히는 그가 미워졌으리라.

오가는 이야기는 선명한 두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이우학교의 상징과 같은, 특성화 교과를 책임진 선생님이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껏 그 빈 틈이 메워지지 않아 이우학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우리 교육 현장이 지난 몇 10년 동안 참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타협하면서 흔들리고 결국은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을 견디기 위해 '선비'처럼 일관되게 소신을 지키는 사람들을 높이 샀다. 세월이 흐를수록 소신파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전투적이게 됐다. 그래서 학교에서 소수파로 산다는 것은 지조 있는 선비의 길에 가까웠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보니 다들 힘들어 했다. 분란은 많고, 늘 시끄럽고.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들은 진이 빠져 점점 이런 자리에 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소수파는 점점 더 다른 이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결국 다들 소모적인 '감정노동'에 지쳐갔다. 사실 학교만이 아니라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이 100이라면 30%는 접는다는 마음으로!"

교장 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눈을 감고 곰곰 생각해보니, 교장 시절 내 표정이 그려진다. 진지하고, 엄숙하게, 단호하게 내 생각을 말하는. 새삼 부끄럽다. 2012년 서울교육청에서 일할 때는 그 일을 반성한 후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흔히 딱딱하고 권위적이라 얘기되는 교육청의 간부들과도 '30%는 양보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표정도 부드럽게 바뀌면서, '당신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자!'는 마음이 우러났다. 전에는 의견이 다른 사람의 발언을 들으면 반박할 논리만 준비하기 급급했는데,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과 맥락, 속뜻을 차분히 묻게 되었다. 내가 귀담아 들으려 하는 만큼, 상대의 눈빛과 어조도 누그러졌다. 옆에서 지며보던 사람들도 한두 마디씩 말을 거들 수 있게 되었다.

학교컨설팅이나 교사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다. 몇 달 후 다시 만난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말씀.

"회의에서 제각각 자기주장이 늘어질 때 '30% 양보!'를 외치고 나면 험악한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신기하게도 의견이 모아져요."

선비가 아니라 '일꾼'이

요즘 교육도 변화의 시기이고, 정치도 그런 것 같다. 다들 멋진 명분과 정연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을 자신의 지조를 꺾는 것으로 생각하여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대쪽 같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마치 지난날의 나처럼 말이다. 그러나 조직의 문화를 바꾸고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선 '나부터 조금 양보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수 있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결국 뜻한 일을 해낼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대쪽 같은 선비보다는 처지와 경험, 신념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허심(虛心)과 큰 귀를 지닌 '일꾼'이 필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