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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5일 11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6일 14시 12분 KST

정치심판과 소크라테스

연합뉴스

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때는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로 이어지는 무렵이고, 장소는 고대 그리스였는데 트라시마쿠스라는 한 인물이 있었다. 소피스트의 하나인 그는 "정의란 어디서나 동일하게 강자의 이익이라고 내리는 결론은 매우 건전하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사상가는 지식을 개인의 주관에 따라 상대적인 것으로 볼 경우 인류는 보편적 진리에 이를 수 없다고 설파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처럼 자신이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첫째로 "너 자신을 알라!"는 잠언을 활용하여 무지를 자각시키는 논박을 행하였고, 둘째로 참다운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창조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그는 사람들의 좋은 삶을 위하여 선(善)을 아는 것과 이를 실천하는 것을 적극 결부시켰다.

때는 2013년에서 2016년으로 이어지던 무렵이고, 장소는 청와대와 국회였는데, 소피스트의 논리로 무장한 일련의 무리가 다시 나타났다. 무리를 이끄는 박근혜 후보는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되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힘을 거머쥔 강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회 내 추종자인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경제 활성화로 조정하여 여전히 경제적 갑 집단을 지원하고 있고, 증세 없이도 복지는 가능하다고 허망하게 손 놓고 있으며, 박대통령의 생각에 부합하는 역사교과서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여겨서 국정화 추진을 결행하였다.

20대 총선거를 앞둔 시점에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선임된 새누리당 이한구의원은 시장 자유주의라는 과거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청와대로 안테나를 세운 채 공천에 임하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 특히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토로한 유승민의원을 겨냥하여 진실하지 않은 정치인으로 낙인을 찍어서 원내대표에서 쫓아냈는데, 이위원장은 그의 출마 기회조차 박탈하려는 꼼수를 두었다. 특히 당 대표를 공천서 찍어내라고 발언한 윤상현의원과 이에서 밀리지 않고자 옥새파동을 결행한 김무성대표, 그리고 공천심사위원회 간에 벌어진 실랑이는 영화에서나 벌어질 만한 막장 드라마였다.

국민은 과연 현실서 벌어진 비열한 정치드라마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누구나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4.13 총선거의 표심으로 개봉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올바름과 진실이라는 도덕적 덕목을 강자인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긴 청와대와 여당에 대해 국민은 소크라테스적 평가를 내리고 만 것이다. 국민은 야권의 분열로 여권의 절대적 압승이 예견되던 상태를 여소야대의 국면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권력적 오만을 단죄한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비판적 화살은 여권만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은 야권에게도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더민주당에게 지역구의원 선출 표를 많이 건네주었지만 비례대표 정당투표는 국민의당으로 일부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민이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한 것임을 나타낼 뿐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은 참담한 편이다. 경제가 정체된 상태에서 사회 양극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고, 비정규직 차별과 청년실업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모처럼 소크라테스의 화살을 쏘았는데, 소크라테스에게는 성찰적 창조라는 또 다른 강력한 해법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각 정당이 해법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국민의 선택은 향후 또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소크라테스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청와대와 여당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에 정부여당은 국민의 질책을 겸손하게 수용하여 일대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2년 남짓 긴 세월이 남아있는 상태를 허송하는 것은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국민에게 사죄하고 그리고 얕은 술수로 강자의 논리를 밀어붙였거나 소신 없이 눈치만 살피는 청와대 참모와 정부 각료의 전원 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이런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 정치사상을 제대로 추슬러서 정책의 일관성을 기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 등 대선 공약 가운데 준수가 가능한 것은 포용하면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일을 올곧게 추진하면서 그 주체로 정직과 청렴, 전문적 식견을 갖춘 인물들을 대거 기용함으로써 새로 도약하기를 권고한다. 물론 야당과의 협치가 요구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선거로 더민주당이 외형상 최대 수혜자가 되었는데,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은 아니다. 과거 반대편에 있던 김종인대표를 영입하여 상황을 주도토록 한 것이 나은 선택이기는 했지만, 오랜 전통의 민주당 역사에서 보면 치욕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속빈강정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향후 민주화를 일구어낸 역사성에 근거하여 당의 정체성을 바르게 정립하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처지에서 벗어나서 사회발전의 창조적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

국민의당 부상은 반가운 일이다. 적대적 공생정치에 안주하던 기득권 양당체제를 일거에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평가할 때 그 안에 희망과 좌절이 함께 버무려져 있음을 보게 된다. 제3의 정치적 돌파구를 연 것은 희망이지만, 새정치의 비전은 여전히 공허하고, 무엇보다도 청산되어야 할 호남의 기득권 세력을 한껏 끌어안고 있는 형세다. 호남의 개혁정치만 포용하는 가운데 제3의 정치적 이념을 찾아 실현코자 한다면 새로운 사회 건설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제20대 총선거에서 보여준 국민의 선택에는 소크라테스적 지혜가 녹아 있음을 본다. 오만한 강자를 심판하고 상대방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영호남이 상대 진영의 좋은 후보를 적게나마 선택한 것은 지역주의 정치를 엷게 하는 여지를 남겼다. 각 정당은 국민이 제공한 새로운 기회를 사회 발전과 성숙의 계기로 삼아 산적한 난제를 합리적이면서 창조적으로 풀어내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