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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1일 09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2일 14시 12분 KST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의 일치를 위하여

글 | 신옥주(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근대 자본주의성립과 더불어 미국과 프랑스를 선두로 하여 민주공화국의 시민헌법이 탄생되었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국가의 조직은 각각 분리, 독립되어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자유와 권리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다고 파악되었다. 이러한 근대시민헌법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e Demokratie)를 한 축으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은 시민의 자유, 법 앞의 평등, 법치주의와 국가기구의 구성원리로서 권력분립, 그리고 다수결원칙에 따른 의사결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1918년 바이마르 헌법을 기점으로 전개된 현대 수정자본주의 국가들의 헌법상 특징은 사회국가원칙을 통해 표명되는 사회적 민주주의(soziale Demokratie)이다.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독일의 헌법학자 헤르만 헬러(Hermann Heller)는 그의 사후 1934년 동료들에 의해 출판된 "국가학(Staatslehre)"에서 자본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해지고 자본주의국가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파악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사회분열이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 자유를 향유하기 위한 평등한 조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하는 불평등과 부자유의 문제를 개인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고, 따라서 자유를 실제로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 연대를 하여 일정한 부담을 나눈다는 것이 사상적 기반이다. 이것이 근대헌법과 현대헌법의 분기점을 이루는 사회국가원칙에 대한 핵심이며, 근대 자유주의의 3대 원칙인 사적자치, 사유재산의 절대성, 계약자유에 대한 제한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기본권으로서 사회권의 보장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도입으로 귀결된다.

헌법 제1조에서 천명하는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일관되게 사회국가원칙의 실현을 위한 사회권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매우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 헌법의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현행헌법에서도 광범위한 사회권을 보장하고 경제헌법으로 불리는 제9장 경제의 장에서 제119조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비롯하여 제127조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국가의 경제개입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규범의 규범력은 그다지 강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청년실업 해소 및 청년복지 구현, 노동자, 농민의 권리실현, 사회적 취약계층이 갖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실질화, 재벌에 대한 규제 등을 얘기하는 것은 국가가 사회국가원칙에 기속되어 헌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기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용납되기 어려운 것으로서 현행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청년들은 자신의 권리들을 국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실현하려고 노력을 하기 보다는 '헬조선의 흙수저'식의 자조와 패배감에서 현실에 순응하거나 극단적인 거부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왜 한 목소리로 헌법규범의 최고성을 강조하면서도 헌법상 원칙인 민주주의원칙과 사회국가원칙에 국가권력이 기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독일의 예에서 우리나라의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헌법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이는 독일 기본법의 경우 사회국가원칙은 제20조에서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이며 사회적인 연방국가이다"라는 표현과 제28조 제1항의 '사회적 법치국가'라는 표현에서 도출되고 있으며 사회권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제14조 제2항에서 재산사용의 공공복리적합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경제헌법인 헌법 제9장과 같은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사회국가원칙이 모든 국가기관에 대하여 국가지도원리와 국가목적조항으로서 기속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사회국가원칙의 실현을 위한 연대에도 국민 전체의 합의가 존재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빈부의 격차와 이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답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광범위한 정치교육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시민정치교육의 역사는 길다. 이미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서부터 의회민주주의 교육을 위해 고국업무처(Zentralstelle für Heimatdienst)가 창립되어 1933년 나찌에 의해 해산되기까지 정치교육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시민 정치교육을 위하여 연방내무부 산하에 1952년 연방고국업무처(Bundeszentrale für Heimatdienst)가 설치되었으며 1963년 연방정치교육처(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치교육에서 대전제는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고로 이루어진 주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존재하며, 학생들은 충분한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고 합의를 도출한다고 하는 것이다. 헌법현실과 헌법규범력의 격차를 줄이는데 결정적인 힘을 제공하는 것은 시민이며 그러한 시민은 민주주의가 체화된 정치교육을 통해 길러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신옥주

현재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로 재직중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 졸, 독일 마부륵의 필립스대학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한국공법학회 연구이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사위원, 헌법재판소 발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