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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0일 10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1일 14시 12분 KST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이념이 없는 게 문제다

한국 정치의 지난 70년 동안 명실상부 이념이랄 만한 것이 과연 있었던가? 북한이 무슨 "이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체제인가? 남한의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무슨 "이념"을 가졌는가? 지금 새누리당에서 벌어지는 공천 다툼이 도대체 무슨 이념을 두고 벌어지는 것인가? 이와 같은 상황은 소위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 사이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보스를 모실 적에는 폭력 조직과 별 차이가 없었다. 구태정치를 청산한다는 둥, 정치를 개혁한다는 둥,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는 둥, 설레발을 친 사람들은 역대로 적지 않았지만, 아직 한국의 정당 중에 의사 결정 절차의 민주주의를 확립한 정당은 없다.

Gettyimage/이매진스

글 |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인들은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지만, 권력에 대한 관심도 대단히 높다. 『삼국지』 같은 권력 투쟁의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익히 들으며 자라고, 각종 무협지라든가 협객의 이야기를 만화나 드라마로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그러다가 진짜 군인이 되어 실제로 총도 쏘고 총검술도 배우는 것이 보통 한국 남성의 성장경로다. 언제나 어디선가 한두 편 정도는 방영되는 사극에서는 궁중의 암투가 빠지면 안 되는 소재고, 현대를 소재로 한 정치 드라마들도 권력을 둘러싼 모략과 배신과 좌절과 파괴를 주요 양념으로 섞어야 장사가 된다.

권력을 투쟁의 목표로 설정하는 이런 방식의 서사들은 자연스럽게 독자 또는 시청자의 마음 속에 권력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만든다. 야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권력을 차지하려면 (들키지 않는 한)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하겠다는 태도를 심고, 야심이 약한 사람에게는 권력에게는 대들지 말고 가급적 피하거나 아니면 순응하는 게 이롭겠다는 태도를 심는다. 주권을 가진 시민들 사이에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보니 실제 정치판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권력을 조금이라도 쥔 사람들은 권력을 포식자처럼 행사하고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초식동물처럼 운이 좋은 다수는 불운을 피하지만 운 나쁜 일부는 온갖 고초와 피해를 당하고도 어디에 호소할 길이 별로 없다.

이런 야만적인 현실 때문에 한국인들 사이에 정치가 광범위한 혐오의 대상이지만, 보통 한국인들이 권력을 대하는 이와 같은 태도가 원인임을 지적하는 이는 많지 않다. 권력을 장비나 이방원 같은 왈패의 개인적 능력으로 이해하는 한, 잔혹한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자일수록 오히려 떠받들고 두려워하는 심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심성에서는 알렉산드로스, 진시황, 징기스칸, 이세민, 수양대군,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모두 일세를 풍미한 영웅이자, "잘난 사람"들, 심지어 "하늘이 내린 인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모두 적을 죽이거나 억압하면서 자기 부하에게 뭔가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유지했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패거리 정치에서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뒀던 사람들이고, 그만큼 이들의 행태는 조직 폭력배 두목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한국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에게 불만의 원인은 한국 정치가 패거리 정치의 수준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 대다수가 정치권력의 본질을 폭력 조직의 권력과 다를 게 없다고 체념하며, 바로 그와 같은 체념 때문에 "민주공화국"을 세운 지 70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한국의 정치가 혐오스러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정치가 혐오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정치권력이 공동체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 바로 곁에서, "권력은 은폐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은폐한다"는 말도 항상 딱 들어맞는다. 수사 받지 않아도 되는 권력, "국가기밀"이라는 핑계로 성역 취급을 받는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패와 비리와 반역과 찬탈이 우글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랑스 인권선언 제15조는 "사회는 모든 공무원에 대해 행정행위를 소명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포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를 양극화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소명의 의무다. 어떤 사람은 그야말로 먼지털이식 또는 토끼몰이식 수사의 과녁이 돼서, 밝혀져야 할 잘못은 물론이고, 형사적으로나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도 세세한 사생활의 구석구석이 탈탈 털리고 망신을 당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엄중한 범죄가 의심되는 데도 불구하고 애당초 수사선상에 오르지조차 않고 넘어간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오히려 개인의 사적인 행위들은 범죄가 아닌 한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하고, 정부직책을 차지한 공무원의 행정작용은 고위직일수록 그야말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낱낱이 밝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것이 앞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개혁을 이끌어갈 이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 권력을 사회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사법제도와 의회제도와 선거제도와 지방자치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당장 절박한 한국 정치의 지도이념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일부러 "이념"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쓰고 있다. 일반적인 한국인들 사이에, 그리고 특히 피상적인 언론계의 어법 가운데, "이념"이라는 것이 하나의 금기처럼 여겨지는 풍토를 타박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국 정치의 지난 70년 동안 명실상부 이념이랄 만한 것이 과연 있었던가? 북한이 무슨 "이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체제인가? 남한의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무슨 "이념"을 가졌는가? 이명박은 "시장주의"라는 "이념"을 내걸고서 실제로는 정부 권력이 가격과 환율을 통제했다. 지금 새누리당에서 벌어지는 공천 다툼이 도대체 무슨 이념을 두고 벌어지는 것인가?

이와 같은 상황은 소위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 사이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보스를 모실 적에는 폭력 조직과 별 차이가 없었다. 구태정치를 청산한다는 둥, 정치를 개혁한다는 둥,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는 둥, 설레발을 친 사람들은 역대로 적지 않았지만, 아직 한국의 정당 중에 의사 결정 절차의 민주주의를 확립한 정당은 없다. 당권을 쥐면 소수파를 무시하고, 소수파로 전락하면 주류의 "패권"을 공격하다가 여차하면 당을 깨고 나갈 뿐이다.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은 글 또는 말을 팔아먹기 위해, "이념보다 민생"이라는 따위 싸구려 도식을 지어내고 즐겨 사용해 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현대 정치에서 민생을 도모하려면 이념의 여과를 거쳐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세금을 얼마나 낼 것이며, 그렇게 걷힌 세금을 지출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야말로 민생 문제의 핵심인데, 바로 그 문제가 또한 이념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누진세를 얼마나 물릴 것인가, 세출에서 국방과 복지의 비중을 각각 어떻게 할 것인가가 바로 이념 논쟁을 대표하는 문제다.

해방 정국의 좌우 대립에서 한국 전쟁까지, 흔히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이념이 대립한 결과라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이념의 탈을 쓴 공허한 구호들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가장 무식한 형태의 패거리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 후의 남북대립도, 그 후의 남한 내부의 정치적 갈등도 이념을 흉내 낸 구호 뒤에서 벌어진 원초적인 형태의 패싸움에 가까웠다. 겉으로 내건 구호가 실천으로 뒷받침 되고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관심은 실종된 채, 순전히 선거 때 표를 끌어 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소리를 해도 그냥 넘어가는 풍조가 하나의 아비투스처럼 자리잡은 탓이다.

이 역시 소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언표와 행동이 언제든 사회적 공론에 의해서 엄격한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 야심이 클수록 그만큼 언행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심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그런 조사를 실행할 만한 사회적 공론이 제도화되지 못한 사회, 조사를 하는 척까지는 했다가 이내 흐지부지 물타기로 끝나버리는 사회에서는, 당연시 사기꾼과 선동꾼들이 자기 이익을 따라 별의 별 소리를 다 떠들게 된다. 이런 사회는 이념 때문에 갈등이 벌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이념이 없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원시적인 무력충돌에 이르고 나서야 결말이 나는 사회다.

한국 사회는 권력이 사회를 향해서 소명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권력에게 소명의 의무를 지우려면, 권력의 버릇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사법제도, 의회제도, 선거제도, 지방자치제도 등이 대표적으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다. 이 제도들을 통해 권력의 속살을 일반 시민들이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게끔 만드는 목표가 장차 한국 정치를 지도하는 이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민생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글 | 박동천

현재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로 재직중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IUC) 정치학 박사

저서: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외.

역서: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정치경제학 원리』,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사회과학의 빈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