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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7일 12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8일 14시 12분 KST

'문화민주화' 시대를 향해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윌리암 모리스의 이상은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꿈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여전히 크다.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자율성에 기초한 삶의 보장을 의미한다.

글 | 정연택(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지난 대선 이후로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간주되어 오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의 진정한 번영과 안녕을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에 그 중요성을 새삼 논의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성취만으로 국민의 행복지수가 향상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은 개인의 내면에 달려있는 문제이기에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문화민주화' 또한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아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공정한 소득분배를 통해 경제적인 기본생활권을 보장하듯이 문화민주화는 공정한 문화향유의 기회확대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내면적 성장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성숙한 시민사회의 조성을 마련한다.

'문화민주화'란 용어가 다소 생소할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를 예로 들 수 있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당시 산업혁명의 과정을 통해 드러난 경제적 불평등과 이에 따른 빈곤의 가속화 그리고 노동의 윤리적 타락을 목격하고 지적 반성의 계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의 대응방식은 사회운동이 아닌 문화운동이었다. 한 국가의 사회적 문제가 그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과 무관하지 않으며, 반면에 문화예술의 문제 또한 그 나라의 사회적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는 유기론적 문화이론에 입각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의 문화운동은 이후 '예술 민주화 사상'과 '미술공예운동'으로 이어지는데 '예술 민주화 사상'이 운동의 이념적 토대였다면 '미술공예운동'은 구체적 실천의 과정이었다. 예술 민주화 사상의 기본개념은 예술이 어느 특정인에게만 소유되거나 향유되는 것을 거부하고 나아가 상업주의 극복을 통해 문화의 정직한 생산과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을 제시함으로서 문화향유의 방식이 소수의 전문예술가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문화를 강조하였다. 그가 특별히 '수공예'를 중요하게 다뤘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윌리암 모리스의 이상은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꿈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여전히 크다.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자율성에 기초한 삶의 보장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자본주의 시장과 의존적인 지배관계 속에 놓여 있다. 생산을 위한 노동은 물론이고 소비행위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노동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은 여가시간조차 상품과 화폐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돈이 아니면 의식주 중 어느 하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고, 자력과 자율성이 불가능한 가운데 국민 개개인의 내면적 성숙 또한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스스로 제작하고 사용하는 문화를 키워나가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공예가이거나 디자이너가 되고 또는 연주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화향유의 방식이 과거 소비적 문화향유에서 생산적 문화향유로 전환되어야 한다. 문화정책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수립되어야 하며 이것이 곧 '문화민주화'를 가리킨다. 문화의 불평등 구조를 없앤다는 것이 단순히 시장에서 양질의 문화상품을 많이 구입하게 하거나 고급한 예술의 관람 기회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원적으로 불평등의 문제는 문화소비의 양극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의 부재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민주화의 정책의 목적은 단지 문화소비의 시장을 늘리는데 있지 않고 국민 개개인을 문화생산자로 거듭나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문화공간조성을 지원하는데 있다.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이 같은 문화공간이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으로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주관으로 '생활문화센터 조성 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며, 현재 28개의 센터가 전국에 걸쳐 개관되었다. 올해까지 42개소가 추가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에서도 '마을문화예술창작센터'와 같은 유사 문화공간이 들어서고 있다. 공통점은 모두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율적 운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문화센터가 주민을 피교육자로 남게 하거나 문화 전문가의 역량에 의존해 왔다면 지금의 센터는 주민 스스로가 만들고 공유하는 가운데 공동체의식을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숙한 정착 단계에 이르기 위해 시행착오와 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바람직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이 같은 문화공간이 '문화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정연택

명지전문대학 도자전공 지도교수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시 문화관련 자문위원과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버금이전'등과 같은 문화기획을 통해 시민공예가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공예의 생활화와 자립공생사회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