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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3일 11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4일 14시 12분 KST

왕조문화를 청산하는 방법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글 | 강 경 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헌법학 교수)

지난 9일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해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주장했다. 이후에는 세종시의회가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대법원과 대검찰청의 이전까지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이 사항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주장하는 이들은 지난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관습헌법 논리로 위헌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수도이전을 위해선 개헌사항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청와대로부터 지역으로의 수도이전은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인다. 또 행정청들과 청와대 국회가 분리된 이후 너무 많은 불편과 낭비가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필자가 수도이전에 찬성하고 청와대시대의 종언을 주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래 지속되는 왕조문화의 고리를 끊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난 30년 군부독재를 청산한 뒤 경제와 민주주의에서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음에도, 그에 못지않게 우리 사회 곳곳에 부쩍 자라난 것이 왕조문화라 생각된다. 나날이 민주공화국의 시민문화가 자라나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오히려 왕조문화의 봉건적 질서가 더욱 판을 키워나가는 모습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류문화가 한 몫을 한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한류문화는 자타가 인정할 만큼 세계화에 크게 성공하였다. 한류문화는 젊은이들의 케이팝과 함께 고전 드라마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고전 드라마들은 정말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다. 이들 드라마를 통하여 쉽게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된 것도 너무 많다. 그런데 드라마의 병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선시대의 왕조국가를 배경으로 군신관계, 반상문화, 상하위계질서 등 봉건시대의 문화와 예절이 우리들의 의식과 행동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본다. 드라마에 나타난 봉건시대의 예법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스며든 부분이 적지 않다는 느낌이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우리 국민들의 경제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말(자동차)을 탈 정도의 부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진 사람으로서 종 부리는 지위를 누리고 싶어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개인주의의 발현단계에서는 이런 이기주의적인 인성발달과정도 거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억눌린 자아시기를 벗어나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 준 자유는 오직 자기중심적이고 쾌락중심의 행동을 뜻할 수 있다. 이때 사회는 불필요한 권위의식과 허세가 지배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고 이기주의가 판을 치며 인성이 사나와 지게 된다. 공공의식과 법질서에 대한 인식이 있을 수 없다. 고전드라마가 가져다준 역기능만 지적해서 드라마 제작자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하다. 그런데 결국 이런 폐단이 청와대의 궁궐문화로까지 등장했으니 이런 지적이 꼭 불필요하다고만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드러난 청와대 사건은 왕조시대에 여왕과 그의 권속, 신하들이 한 무리가 되어 놀아났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반대로 공화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도무지 설명과 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추하고 저급하다.

다행히도 일이 드러나 세상에 알려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여왕과 권속과 신하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이들의 머릿속 에는 여왕이 살아계신데 웬 검찰과 법관 같은 하급관리들이 자기들을 오라 가라 하느냐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듯싶다. 지난 40년을 군왕의 권세 아래서 거침없이 살아왔으니 그것이 설마 제동 걸리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검에 의해 구속되고, 국회 청문회로 소환당하고, 탄핵심판이 진행되어도 이들은 아직도 왕조문화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을 지지하는 대중들 또한 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화국 대통령으로 평가하지 않고 일국의 국왕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감히 국왕을 탄핵하는 여타의 무리들을 용납할 수 없는 듯한 격한 분위기다.

청와대가 북악산에 있으니 여기 들어가 침식과 집무를 행했던 대통령들은 아무리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이라도, 자신이 과거 조선의 왕통을 잇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청와대 터가 바로 왕궁의 터였던 관계로 민주적인 대통령조차 그렇게 될 터인데, 혹여라도 청와대를 바라보거나 직접 방문의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왕궁과 왕으로 바라보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하니 심지어 용안과 왕의 배후에 광휘가 빛나고, 그의 위엄에 눌려 왕권신수설을 받들게 되어 왕을 예수라 칭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벌어진다. 이제 왕조문화를 절단하고 공화국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현재의 터를 바꿀 때가 되었다. 동시에 대통령이나 총리나 국회의원들, 법관들 모두가 공무원이라는 것과 이들과 국민과는 사무적 관계로 보는 인식틀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급히 현대화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화폐를 보자. 화폐 속의 인물이 아직도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황, 이율곡, 이순신 등 모두 당대의 훌륭한 분들이었지만 이들은 조선왕조의 사람들이다. 왜 우리는 현대의 훌륭한 인물이나 문화를 발굴하지 못하는가? 광화문 사거리에도 세종대왕과 충무공 조각상뿐이 없다. 이들 외에 현대의 시민을 표상하는 조각이 필요하다. 시민상의 위치는 세종대왕보다 더 뒤편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왕과 장군이 섬겨야 할 상징적인 시민의 조각상이 있어야 시대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주군을 섬김으로써 충과 의를 행한다는 왕조문화는 법치문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윗사람 공경에 충실한 뜻의 royal 정신이 아니라 원칙과 규범에 충실한 뜻의 loyal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위아래 모두 법 앞에 평등하고 그래서 모두가 자유로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글 |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헌법학 교수이다. 영국과 미국의 노예제 폐지과정 연구를 통해서 시민들 한사람 한사람의 헌법정신이 중요함을 알았다. 헌법을 통한 민주시민교육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사회복지국가로의 본격적 진입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