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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0일 10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31일 14시 12분 KST

촛불민심의 과제와 정당의 깃발 가치

News1

국민의제 시국특집 최종회

2016년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따른 박근혜게이트에 직면하여 우리의 정치 현실을 성찰하면서 미래를 밝히 열고자 마련한 국민의제 시국특집은 촛불민심을 받든 국회의 탄핵 가결에 따라 일정하게 소임을 다하였다고 평가하여 종료하고자 합니다.

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2016년 올 한 해는 1987년 이후 맞이한 최대의 정치적 격변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87년의 민주화항쟁은 군부의 독재정권에 종지부를 찍는 일대 사건이었고, 그에 따른 개정 헌법은 오늘의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

1987년 이후 등장한 YS와 DJ의 정부는 사회개혁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일구는 데 이바지했으며, 노무현정부는 정치적 권위주의를 해체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지성인의 장을 넘어 저잣거리 장터로까지 확산되는 계기를 조성했다. 물론 문제점도 적지 않게 노출시켰는데, 산업화 포용의 민주주의와 사회 양극화 해소, 사회복지의 구축 등 여러 과제를 남겼다.

이어서 등장한 이명박 및 박근혜의 정부가 남은 과제를 푸는 데 한 단계씩 전진했더라면 우리는 성큼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국제사회의 위치로 발돋움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정부는 국민에게 과거 회기형의 정치적 시련을 안겨주기 시작하였는데, 급기야 박근혜 정부는 불통에 무능을 보이더니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까지 자초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우리사회는 글로법 금융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좌충우돌형의 미국 트럼프 정부까지 들어서는 대내외적 여건에 처함으로써 나라의 미래 운명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왜 전진할 수 있는 시기에 오히려 퇴보를 하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도 두 가지가 상정된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화 된 대립 풍토이고, 다른 하나는 사익 추구로 변질된 정치문화를 들 수 있다.

물론 우리 민족이 선진국 초입까지 도달하게 된 배경에는 유서 깊은 전통문화와 근면성, 교육열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우리사회가 수렁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려면 후진적인 사회문화를 쇄신하는 데서 찾아야 하며, 그것은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패러다임은 사회적 과제의 구체적 해법과 그 토대로서의 가치체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파산은 20세기 권위주의적 산업화 패러다임의 붕괴를 의미한다. 몰지성적인 한 인물이 국회의원과 공당의 대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생존하여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치문화가 신화 열광적이었고 공익을 위장한 사익 추구에 동조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박대통령의 당선을 도와 권력을 탐하고 이익을 누린 친박 정치인들은 적극적 공범자이다. 여기서 보듯이 보수 주류 정치권은 이익결사체의 모습에 불과했으니 사익 추구의 사기업과 다를 바가 없었고, 결국 공과 사가 불분명한 상태로 국정을 운영하다가 최순실 사태로 인해 그 야비한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파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진보 정치권은 다소 나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일반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보 정치세력이 국민의 건강한 신뢰를 받는 정치적 행보를 취했더라면, 그 상대편인 주류 보수가 이토록 부패한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보수와 진보의 정치권은 오십보백보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진보 역시 집단과 진영, 정파의 이익을 끊임없이 도모하면서 국가 권력을 거머쥐고자 노력했으며,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정치적 무능을 한껏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에 시작된 광장의 촛불민심은 직접 박근혜 정부와 친박 정치권을 향한 것이었다. 갈수록 고조된 열기는 야권은 물론 여권의 비박 정치인까지 움직여서 박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가결을 이끌어냈다. 불의에 대한 정의의 심판을 국민이 직접 내린 것이다.

국민 다수가 번번이 광장에 나와 일관된 목소리를 늘 낼 수는 없다. 일상의 고단한 삶을 사는 국민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결국 정치권이 국민의 지엄한 뜻을 살피어 이를 정치에 바르게 반영할 것이 요구된다. 장소와 규모, 시민생활의 제약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만큼 불가피하게 대의 민주주의가 작동되도록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국민의 뜻을 가능한 한 온전히 받들 수 있도록 숙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인터넷도 발달하였으니 보다 효과적으로 이를 반영토록 노력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더라도 직접 민주주의에 버금갈 정도로 정치를 펼칠 방도가 없지 않다. 바로 여기에 낡은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으로 이행할 단서가 있다. 그 비결은 간명하다. 공익 추구의 정치를 실제화하는 것이다. 국민은 누구나 경제적 행위를 비롯하여 사적인 활동을 하게 되지만,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공적인 것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받게 된다. 이때 사회 공동체나 국가의 일은 그 자체가 공익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당연한 애기지만 정치가 공익 추구의 지평에 이르도록 재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익 추구는 공적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단계에서는 상충되는 것끼리 충돌을 빚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때 도덕적 규범, 구체적으로 공동체의 선에 의해 그 시비를 가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공익과 공동선을 추구해야 마땅하다.

며칠 전 새누리당은 분당을 맞이했다. 국민의 심판을 받은 친박계 정치인은 새누리당에 남았고 상대적으로 국정농단의 책임이 덜한 비박계 인사들이 탈당하여 가칭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 교섭단체로 등록을 함으로써 더불어 민주당 및 국민의당을 포함하여 원내 4자 구도가 짜여졌다. 비교섭 단체인 정의당이 있고 또 제3지대 정치세력을 도모하는 결사체도 준비되고 있는 만큼 향후 이합집산이 이루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된다. 민주사회의 정당은 정책으로 국민의 표를 받도록 공정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때 박근혜 정부처럼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나 몰라라 하는 표리부동의 정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정당은 변화에 부응하는 정책적 일관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당은 토해내는 일련의 정책에 기본적 숨결을 불어넣는 정치적 가치, 즉 정치철학을 나름의 고유한 것으로 구축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파탄 사태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당이든 정치 세력이든 더 이상 사익 추구의 위장된 형태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공익이나 공동선을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되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각 정당은 자신들이 치켜 든 깃발에 스스로 구현코자 하는 핵심 가치를 새겨 넣고, 이를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선의의 정책적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2016년의 촛불민심을 받드는 길이라고 본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