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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5일 10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탄핵정국 돌파의 두 가지 원칙

gettyimage/이매진스

국민의제 시국특집 20회

대통령의 과오로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오늘의 우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되 나라의 미래를 밝히 열고자 국민의제가 탐조등을 비추는 기획특집을 마련합니다.

글 | 유초하(충북대학교 명예교수)

12월 3일의 6차 촛불이 230만명을 넘었고, 12월 9일에는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었으며, 10일의 7차 촛불도 전국적으로 60만이 넘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광화문광장과 청와대입구를 메울 촛불이 적어도 9차까지는, 다시 말해 12월 24일까지는, 이어질 모양이다. 국회에서의 탄핵가결로 식물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자발적으로 내려올 기회를 내팽개쳤다. 탄핵이 가결되고 직권정지가 발효되기 40분 전의 시점에 새 민정수석을 임명함으로써 박근혜여사는 주권국민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천명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곧 혜실게이트의 문제는 이제 제2라운드로 접어드는 듯하다. 그 해결을 위한 기본방향과 원론은 촛불민심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처리의 구체적 경로와 방식에 대한 논의는 훨씬 복잡한 모양새를 띨 것이다. 촛불광장에서의 토론은 물론이고 국회의 국정조사청문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 특별검사팀의 수사, 그리고 여야 각 정파의 개헌논의 등 앞으로 펼쳐질 논란은 여러 마당에서 여러 갈래로 펼쳐질 것이다. 얽히고설킨 이들 논란을 풀어가기 위해 나는 딱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2016년 광화문촛불은 동학농민혁명과 삼일운동 이래 한국의 민중운동이 보여준 근현대 인류사 발전의 선구적 사례를 다시 한 번 기록하게 되었다. 4.19혁명, 5.18민중항쟁, 6.10시민대행진에 이어 촛불광장은 대중의 반성적 성찰에 기초하여 불의에 저항하고 인권·평등·상생평화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직접민주주의적 정의실천의 지평을 넓히는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제도권 세력집단 사이에 빚어진 대립과 갈등을 시민일반이 자발적으로 주도하고 참여함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평화적 집단행동으로 중재해낸 이 소중한 혁명적 성과를 확대하여 미래건설의 전망을 확보하는 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의 전망과 한계

촛불민심의 다양한 요구를 압축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될 것이다. 국회의 탄핵을 기점으로 박근혜·최순실 집단을 철저히 응징하고, 선출직 공무원의 권한과 책임을 무자격 개인들에게 이양하거나 소수 개인·집단의 배타적 권익추구에 이용하는 기현상을 철저히 차단하며, 양극화를 해소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특권을 배제하는 기회균등의 사회기풍을 진작하며, 정치·문화의 전 영역과 대외관계에 이르는 모든 공적 사회과정과 체제를 전반적으로 개혁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며 비열한 비밀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깨어있는 양심적 집단지성의 힘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는 모든 사회과정을 일일이 챙길 수 없다. 재벌·검찰·경찰·정보기관·교육기관을 포함한 경제-정치-문화 권력기관들의 개혁을 광장의 촛불이 포괄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부정부패의 추방과 전반적 사회기풍의 쇄신은 사회시스템을 통해서만 진척될 수 있다. 법규제도의 개혁과 제도운영의 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행정집행의 기구들을 조직할 수는 없다. 4차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대에 국민주권을 상시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충실히 반영하는 대의제도와 견제-균형의 권력분립을 기초로 삼을 수밖에 없다.

광장의 촛불은 정의실현의 대원칙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향후 개혁의 구체적 작업을 직접 수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개혁-쇄신의 부작용 없는 진행을 위해 불가피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촛불민심으로 확인된 혁신과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광장과 제도권기관들이 협력하여 함께 나아가는 이른바 두 길(two track)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특히, 명령입법-사법 국가기관 종사자나 선출직 공직 진출 희망자, 그리고 여론을 형성하거나 선도하(고자 하)는 기관이나 개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대중의 일상생활이 평안하고 안락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시스템의 기본목표에 속한다. 시민대중으로 하여금 한겨울에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와 추위와 불편을 감내하며 촛불을 밝히고 토론을 펼치자고 하는 것은 주객전도 내지 가치계서 도착倒錯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치개혁은 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수단-방법이지 목표가 아니다. 시민대중의 지혜와 노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하려는 태도는 비겁한 일이다. 포퓰리즘을 넘어 벌가리즘에 해당한다 하겠다.

박근혜는 형사처벌과 함께 심리치료를 받아야

탄핵정국 돌파의 일차적 과제는 혜실게이트 주범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에 있다. 특히 강조할 것은 박근혜(와 최순실 일가)에 대해 형사처벌과 함께 정신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와 의의가 있다. 문제의 게이트가 발생한 원인인 병증을 치료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상행동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을 인간됨의 원천을 회복하도록 한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조치는 이차적으로, 해방 70년간 버티면서 쌓여온 근원적 병폐를 청산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죄를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 오랜 역사시기동안 인간사회의 정화를 위해 인용되어온 격언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하며 평생토록 희생적 삶을 살아간 옛 성인 묵자의 말씀이다. 묵가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도적을 미워하고 징벌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범법자를 처벌하고 범죄자를 징벌하는 것은 악을 처단하고 사회공동체의 선을 실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징치 받는 당사자의 인간됨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가난한 노숙자는 인간됨의 실현을 차단당하는 불행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노동의 몫을 착취하는 재벌 총수 역시 정당한 몫을 초과하는 부당한 향유로 인해 스스로의 인간됨을 파괴하거나 손상한다. 과잉행복으로 불행해진 사람을 평균행복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은 그의 인간됨을 살리는 일이 된다.

박근혜 등을 치료하는 일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하는 일이다. 과오를 깨닫고 징벌을 달게 받을 때 그 인간됨은 그만큼 되살아난다. 과오를 범한 사람이 진실을 인정하고 응징을 받을 때 공동체가 그를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혜실게이트 범죄자들에 대한 징벌과 치료의 조치를 취하면서 동시에 수행할 과업이 있다. 광주학살주범 전두환이나 친일분자 등 반민주범죄자와 민족반역자들의 행적에 대한 진실규명과 그에 상응하는 형사상 처벌 내지 도덕적 징벌이 그것이다.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징치가 이루어지면 그에 기초하여 그들 당사자와 후손에 대해 사회적 용서와 화해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 사회가 앓아온 묵은 상처와 체증을 치료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정치적 정당성의 전통을 제대로 확립함과 동시에 민족사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일인가.

글 | 유초하

유초하는 1948년에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2년부터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과 한국사상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작년부터는 파주에 작업장을 마련하여 <한국사상사산책>을 저술 중이며, 마로니에방송에서 대중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배경신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래를 개척하는 힘은 현재의 자신감에 있고, 그 자신감은 역사와 문화에 바탕한 긍지와 자부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