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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7일 11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08일 14시 12분 KST

철학계의 노벨상 첫 수상자 찰스 테일러와 한국의 촛불민심

gettyimage/이매진스

국민의제 시국특집 18회

대통령의 과오로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오늘의 우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되 나라의 미래를 밝히 열고자 국민의제가 탐조등을 비추는 기획특집을 마련합니다.

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철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베르그루엔 철학상의 첫 수상자가 12월1일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뉴욕서 날아들었다. 심사위원단은 후보자로 추천된 500여 명 가운데 첫 수상의 영광을 캐나다 맥길대의 명예교수 찰스 테일러에게 안겨주었다.

인류의 정신사를 이끄는 분야가 사상이고, 물질적 삶을 직접 구현하는 분야가 물리학과 의학, 경제학 등이다. 노벨상은 물질적 삶에 기여한 인물을 영역별로 선정하여 매년 연말에 이를 수상해왔는데, 정작 물질생활에 영혼의 양식을 제공하는 분야인 철학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집 없는 억만장자 자선사업가'로 알려진 베르그루엔은 인간의 정신적 삶을 중시하여 이 분야의 상을 제정하여 재원을 출연하기로 결단했다고 한다.

첫 수상자인 찰스 테일러는 한국인에게 익히 알려진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의 스승으로도 소개할 수 있다. 그는 샌델과 왈쩌, 매킨타이어 등과 더불어 근대 이후의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대안적 사상인 공동체주의를 새롭게 부각시킨 핵심 인물이다.

테일러는 현대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근원적인 불안 요인 세 가지가 드리워져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 요인으로는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이해에 관심을 갖거나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추동하는 개인주의 사조를 꼽았다. 두 번째로는 인간이 이성을 갈수록 영악지게 구사하는 과정서 타자를 수단으로 활용하게 만드는 도구적 이성의 팽배를 들었다. 세 번째로는 앞의 두 요인이 사회적 결과로써 초래하는 공적인 삶의 소외를 거론했다.

테일러의 문제 제기는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 직면한 현실 사태와 더욱 잘 결부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일정하게 성취하였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는 숱한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기에 고단한 지경이어서 형제와 이웃에게 조차 마음을 쓸 여유가 없도록 내몰리고 있다. 사회제도와 경제시장의 나쁜 운영이 국민을 개인주의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현실 정치의 주도권을 쥔 강자들은 국민 알기를 장기판의 졸로 여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정책적 견해를 제시했다는 이유로 유승민 의원을 배신자로 찍어서 원내대표 직에서 물러나게 했고, 지난 총선의 공천심사위원장 이한구 의원은 마침내 그를 공천서 배제했으며, 친박계 돌격대장인 윤상현 의원은 당시 당 대표를 찍어내려는 음모를 자행했었다. 정부와 정치권, 고위관료의 비호를 받는 재벌의 오너는 황제로 군림하듯이 기업 경영을 하고 있고, 이에 따른 갑질의 폐해를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다. 모두가 권력과 돈을 매개로 한 강자들이 도구적 이성을 영악지게 구사함으로써 나타나는 현대사회의 단면들이다.

박대통령의 비호 속에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의 사태는 국민을 공적인 삶에서 소외시켜왔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딸 정유라는 삼성이 사준 값비싼 말을 타고 나가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따고 또 특혜를 받아서 공개적 경쟁이 이루어지는 이화여대에 합격하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위급한 시간에 박대통령은 무엇인지 모를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결국 안타깝게도 어린 청춘 300여 명이 속절없이 수장되고 말았다. 역대 정권이 남북간 평화정착의 마지막 보루로 삼았던 개성공단을 진지한 토론 없이 폐쇄함으로써 투자 기업의 재산권을 뭉개버렸으며, 전쟁 위기감을 한층 북돋아버렸다. 우리 민족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으로 수치를 당한 위안부 사건과 관련해서는 그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부단히 요구만 해도 될 터인데, 그 잘난 돈 10억 엔을 받고 덥석 면죄부를 발급해준 행태에 대해서는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이 정도면 박대통령과 친박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강자를 제외하고는 국민 대다수가 공적인 정치적 삶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음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촛불 민심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출현하였고, 갈수록 소외감에 따른 분노는 커져 갔다. 다수 국민이 잘난 자들의 간교한 이성적 농간에 희생을 당하면서 공적인 삶에서 배제되고 급기야 제 한 몸과 자기 식구 건사하는 데 안간힘을 쓰도록 내몰리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최순실 사태는 화산 폭발로 작용하고야 말았다. 국민의 반응은 단지 한 마디, "도대체 이게 나라냐?"는 반문에서 잘 드러난다고 본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이와 같이 진단한다면, 향후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찰스 테일러의 대안적 해법 역시 우리에게 일정하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그는 두 가지를 추스르는 방향으로 사회제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나는 개인주의의 폐해와 공적인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 공동체성의 회복이 요청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도구로써 유린당하지 않을 자기 진실성의 회복이다.

박대통령은 이미 식물 상태와 진배없다. 그 대통령 직에 결부된 모든 권위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고한 뒤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죄인의 자세로 국민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현대 공동체주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까닭에 먼저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에게 형제애로써 기꺼이 관용을 베풀 줄 알지만, 끝까지 노림수로 반격을 가하고자 시도할 때는 불가피하게 정의의 심판을 단호하게 내릴 수밖에 없다. 박대통령과 청와대는 모두를 불행으로 내모는 길로 나아가지 않기를 기대한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