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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6일 09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대한민국에 레즈비언은 정말 많다

나는 현재 서른 한살이다. 20대 시절에 남자와의 실망스러운 연애를 몇 번 경험한 후(실망의 원천은 나일 수도 있고 상대방일 수도 있다), 2013년 한 친구를 통해 레즈비언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인정했다,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그 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와 사랑도 이별도 해봤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지난 10월, 인생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레즈비언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두 달 됐다. 두 달동안 내가 매일같이 느끼는 것은 "아, 정말 많구나."라는 것이다. 정말 많다.



대한민국에는 레즈비언은 정말 많다. 나이대도 다양하다. 물론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레즈비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인정하고 그렇게 확립된 성 정체성으로 계속 성장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동성애라는 것이 마치 하나의 유행인 듯, 몇몇의 10대들은 본인의 SNS에 여자와 연애하는 사진을 올리고 또 지우고, SNS 계정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한다. 아직 완전히성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성애를 장난처럼 여기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짧은 머리에 중성적인 패션 스타일을 떠올린다. (개인적으로는 "중성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중성적이다 하는 건 결국 여자인데 남자들처럼 옷을 입는다는 거니까. 남자가 여자들처럼 옷을 입는다고 해서 우리는 "중성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여성적"이라고 한다.) 그런 스타일의 레즈비언도 물론 많다. 그렇지 않은 스타일의 레즈비언도 많다. 직업도 다양하다. 선생님, 회사원, 변호사, 펀드매니저, 홍보 전문가, 미용사, 건축가 등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는, 우리가 매일 마주치고 만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내가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이들과 소통을 시작한 지 아까 말한 듯이 이제 두 달이 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녹음한 방송에서 고민이나 사연을 받겠다고 하니 하루에도 거의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있다. 겨우 10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굉장한 숫자이다. 레즈비언 방송을 듣고, 그리고 사연을 보내기까지의 행동을 다 따져봤을 땐 적지 않은 숫자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처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어서"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들의 고민거리를 듣고 있다 보면, 남자를 사귀는 내 친구들이 나에게 연애에 대한 고민거리를털어놓을 때와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레즈비언도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담아듣고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조언을 해주면, 그들은 나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한다.

"고마워요." 전파를 타고 전해져오는 짧은 텍스트지만, 나는 그 네 글자가 가지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들과 소통하기로 결심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레즈비언을 포함한 성 소수자들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성 대수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하겠다.

대한민국에 레즈비언은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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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기무상과 손을 맞잡은 또 다른 한 여인


* 기무상의 팟캐스트는 이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