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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6일 09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6일 14시 12분 KST

이번 설도 우리 엄마는 아들의 남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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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다. 예전에는 명절이라 하면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데 모여 웃고 떠들며 윷이라도 던지는 그림이 주로 떠오르는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안타깝게도 명절 친척들 오지랖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든지, 시댁에서 빨리 뛰쳐나오는 방법이라든지, 명절에도 싼 해외 비행기 표 값 구하는 방법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이 변한 걸까, 아니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회사 사람들만 봐도 모두들 제 몫의 명절 스트레스를 가슴에 품고 있는 듯했다. 옆 자리의 여자 선배 대리는 시댁 가서 기름에 음식 할 생각을 하면 욕지기가 솟을 것 같다고 하고, 근처 팀의 원래 착한 노총각 과장님은 며칠 전부터 히스테리 모드에 들어가 있었기에 일부러 말도 잘 안 걸었다. 앞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 선배 대리는 애까지 태우고 대구에 갔다가 광주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오는 코스로 운전을 해야 한다는데, 그 소리를 듣기만 해도 괜히 내가 오줌이 마렵고 멀미가 난다.

모두들처럼, 게이들도 참 전형적인 제 몫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내 나이 또래나 나보다 조금 더 형님인 게이들이라면 넌 여자친구 안 사귀냐? 형은 여자친구 안 사귀어? 오빠는 여자친구 안 사귀어요? 라는 식으로 거의 모든 친척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기 십상이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이런 오지랖을 피해 일부러 고향에 안 내려가는 게이들도 참 많다. 아예 한 마흔이 넘어간 형님들을 보면 집에서 포기를 해서 오히려 그런 말을 안 듣는다고는 하지만, 친지들의 불공평하고 불필요하고 무례하고 오만한 편견의 눈빛이 가득할 걸 상상해보면, (게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결혼 안 한 한국 사람은 이 나라에서 살기 참 고되구나 싶다.

한국에서 태어난 게이 주제에 양가의 축복을 받고 결혼식을 올린 우리는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일이 없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쳐도, 일가 친척이 모인 남편의 큰집에 함께 찾아가 차례상에 절을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형의 어머니는 형과 같이 내려오라고 하시지만, 고모들에게는 그냥 친한 후배라고 하면 된다고 하시지만,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갈 만한 용기는 아직 나지 않는다. 어머니, 그냥 학교 후배가 왜 설에 자기 집에 안 가고 선배네 집에 찾아가서 절을 하고 떡국을 먹고 있겠어요... 그것도 매년 명절마다...

그래서 형과 난 보통 명절의 절반 정도를 따로 보낸다. 형은 형의 고향집이 내려가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고, 친척들도 만나고 그러는데, 우리 집은 교회 다니는 집이다 보니 차례도 안 지내고 제사도 안 지내고 그래서, 보통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신다. 형이 고향에서 올라오면 차례도 안 지내는 독실한 우리 권사님은 게이 아들의 남편과 함께 남은 명절을 행복하게 보내다 내려가신다. 형의 어머니는 자주 서울에 올라 오시다 보니 그때 그때 자주 뵙지만, 명절 전후로는 그래도 고향에 내려가 따로 인사를 드리곤 한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지만, 식 없는 동거 때와는 다르게 결혼식 이후에 확실히 바뀐 것들이 있긴 있다. 특히 이런 명절에는 뭔가 며느리 같기도 하고 사위 같기도 하고 덤으로 생긴 아들 같기도 한 우리들이다 보니, 시어머니도 아닌 장모님도 아닌 서로의 어머니들에게 더 깍듯해진다. 아무리 게이바에서 올린 조촐한 식이었다고는 하지만, 양쪽 집안 사람들이 다 모이고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지금부터 부부 할 거니까 여러분이라도 인정을 좀 해주세요! 했으니, 우리 스스로도 부부로서의 마음가짐, 두 어머니의 덤 아들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사실 내가 형에게 결혼하자고 이야기하게 된 계기도 명절에 겪은, 어찌 보면 참 별 거 아닌 일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사소한 것이다 보니, 그 사소한 생각 하나가 우리를 이렇게 결혼식까지 올린 게이 커플, 게이 부부로 만들어버렸다.

그해 추석에도 그 전처럼 우리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셨기, 고향에서 명절을 절반을 보내고 올라온 형은 우리 가족이 있는 쪽으로 바로 와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큰누나와 첫째 매형, 작은누나와 둘째 매형, 그리고 나와 형이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우리 가족에게 이런 자리는 이미 익숙한 명절 식사 풍경이었다. 이미 우리 가족들은 형을 나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매형들이나 우리 형은 (내 생각엔) 어머니에게 똑같은 백년손님이리라 생각했었다.

웃고 떠들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제 자리를 일어날 때쯤, 매형들은 짠 것처럼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내려가시면 용돈 쓰세요, 하며 우리 어머니에게 봉투를 쥐어 주는 게 아닌가. 그런데 우리 형은. 우리 형은. 봉투 대신 뭐... 이십 만원...짜리 미소 정도?

매형들과 우리 형이 뭐가 다른 걸까. 왜 이 상황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엄마는 왜 우리 형에게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을까. 다른 둘이 용돈을 드리고 둘째 매형만 안 드렸다면, 뭔가 서로 민망한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심지어 우리가 만난 게 작은누나 커플보다 한참 더 오래 됐는데!

단순히 우리 어머니에게 줄 용돈을 드리고 안 드리고, 내 체면 생각을 하고 안 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심지어 잃을 체면도 없었으니까). 진짜로 이 상황이 왜 나만 이상하고 다 자연스러운지 궁금했다. 그때 우리는 이미 동거 2년이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결국 난 아, 이건 우리 커플이 이름을 짓지 않아서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때 형과 결혼을 해야겠다, 부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요즘도 가끔 이 이야기가 나오면 형은 그때 내가 밥 샀잖아 라고 말하지만, 난 그 사소한 마음 때문에, 혹은 덕분에 우리가 결혼하게 된 것 같다.

이번 설도 같은 패턴이다.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시고, 형은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 형이 서울에 올라오면 우리 엄마는 아들과 딸, 그리고 아들의 남편, 딸의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실 거다. 물론 요즘은 형도 우리 어머니에게 봉투를 드린다. 그 액수도 내가 정하고 어쩔 땐 돈도 내가 뽑아서 준비해 주지만, 어쨌든 형 주머니에서 꺼내서 드린다. 이제 형은 빼도 박도 못하고 내 남편이니까.

(www.snulife.com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